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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현장

국립중앙박물관 <대고려, 그 찬란한 도전> 특별전 단상(1)

by taeshik.kim 2018. 1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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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다. 몇 점이나 되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전시품이 많다. 지나치게 많은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도 없지는 않다. 전시품이 지나치게 많으면 그에 따른 피로감도 없지는 않다. 고려 건국 1100주년을 기념하고, 나아가 최근 남북 화해 분위기 조성과 그에 따른 '민족통합'의 당위성을 선전 홍보하는 도구로 역사에서 고려만한 안성맞춤한 소재가 있었던가? 그런 시대 정신에 부응하고자 했음인지, 이번 전시는 '대고려전'이라는 타이틀을 내걸었으니 말이다. '大'한 고려전이라 했으니, 그에 걸맞는 전시품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음인지, 그와 직접 관련하거나 그럴 법한 명품으로 참으로 많은 것을 가져다 놓았으니, 이를 어찌 소비할지는 순전히 관람객 몫이리라.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시실 입구.


 

그래서 한편에서는 이 '대고려전' 특별전시실은 특별전이 아니라, 상설전시실 고려 코너를 그대로 옮겨온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실제로도 그렇다. 상설전시실 고려실이나 고려청자실, 혹은 불교미술실에서 고려라고 딱지가 붙은 것으로 이른바 괜찮다 싶은 것들은 모조리 빼어다고 이곳에다 모아놨으니 말이다. 



기린 장식 청자 향로. 상설전시품을 옮겨온 경우다.



중앙박물관 자체 소장품과 외부 대여품 비중이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얼추 보니 3대 1 내지 3대 2 정도가 되지 않을까 한다. 대여품은 다시 국경을 기준으로 나누건대, 물건너온 것이 제법이다. 특히 보스턴미술관(보스턴박물관)이니 메트박물관이니 하는 미국 쪽에서 대여한 것이 생각보다 많다는 점이 의외이거니와, 일본 쪽은 의외로 적으니, 이는 이미 알려졌듯이 대한민국 국적을 지닌 도둑넘들이 대마도로 쳐들어가 한반도에서 유래한 불상 2점을 훔쳐들여왔으나, 말도 안 되는 내셔널리즘 논리로 한국정부와 한국 사법부가 개중 1점만 달랑 돌려보내고 나머지 한 점은 포로로 잡은 박제상마냥 그 반환을 거부하는 데 따른 반작용이라, 대여가 쉽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일본 헤이안시대 아미타(왼)와 대일여래(오른). 도교국립박물관 소장.




주최 측에 의하면, 이번 특별전 출품작 총수량은 450여 점이라 한다. 특별전은 그것을 준비하는 사람들한테는 언제나 갈림길에 서게 한다. 양으로 승부할 것이냐 질을 내세울 것이냐 하는 선택의 기로에 서기 마련이다. 물론 막상 현장에서 이를 준비하는 사람들은 그런 선택에 강요받지 않는다고 주장할지도 모른다. 언제나 양으로 승부한다는 말이 그들한테는 치욕으로 들리는 까닭이다. 


하지만 이번 특별전은 그들이 의도했던 하지 않았건 말할 것도 없이 수량으로 겁박하고자 한다. 상다리 부러지도록 음식 차려놓았으니 골라서 드십시오, 맘껏 드십시오, 배 터지도록 드십시오. 이에 초점이 간 전시라고 나는 본다. 그래서 나쁘다? 그런 말은 하고 싶지도 않다. 때로는, 아니, 상당히 많은 경우에 이 양으로 압도하는 전시가 의외로 효과는 큰 법이다. 




나란히 앉은 고려 불상님들.


그런 점에서 단순히 이번 전시가 수량이 많다고 비판적으로 내가 바라보고 싶지는 않다. 다만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요리했는지, 포장을 잘 했는지, 홍동백서는 맞는지, 그런 점에서는 하고 싶은 말이 적지 않다. 이 측면에서 분명 이번 전시는 아쉬움이 많을 수밖에 없다. 비단 이번만이 아니라 국박 전시에서 나타나는 공통적인 현상인데, 나는 국박 사람들이 전시를 할 줄 모른다고 본다. 그네들은 적어도 국내에선 최고라 자부할지 모르나, 그 전시기법을 보면, 답답하기 짝이 없을 때가 많거니와, 이번 전시에서도 이 전시기법이라는 측면에서 결코 후한 점수를 주고 싶지는 않다. 국박은 배워야 한다. 전시가 무엇인지를 배워야 한다. 처절히 배워야 한다. 


전시품이 많은 까닭에 질은 당연히 묻힐 수밖에 없다. 나는 좋은 전시란 보물찾기 혹은 편식이 아니라 본다. 아무리 하찮게 보이는 유물이라 해도, 그 전체에서 그것이 빛나게 하는 그런 전시야말로 최고의 전시로 꼽는다. 어느 하나 버릴 것 없는 전시, 모든 전시품이 전체의 완결품에서는 없어서는 아니 되는 필수품으로서 빛을 발하는 그런 전시를 최고의 전시로 꼽는다. 그런 점에서 이번 전시는 버리는 것이 너무나 많다. 편식이 너무나 많다. 전시 자체가 편식을 유도한 까닭이다. 



문공유 묘 출토 유물.



이번 전시가 끝나면 이번 전시품 중 적어도 '본관 소장'이라 붙은 것들은 도로 제자리를 찾아갈 것이다. 그 도로 제자리는 상설전시실을 말한다. 특별전이 꼭 수장고에 쳐박힌 유물, 혹은 평소에는 구경이 쉽지 않은 전시품만을 선보이는 자리가 아니라는 사실은 잘 안다. 하지만 이번 특별전 출품작에는 비단 이 자리가 아니라 해도 언제나, 같은 박물관 상설전시실을 채우는 유물이 너무나 많은 점은 분명 흠결이라 할 만하다. 이런 흠결은 자칫 왜 이런 자리를 굳이 특별전이라 해서 이름 붙였는가 하는 반론을 부를 수 있다는 점에서 심각한 성찰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우리가 특히 주목해야 할 대목은 대여품이다. 왕건상 논란에 참 가오가 상하게 되긴 했지만, 희랑대사상 같은 전시품은 그 자체로도 빛을 보아야 한다. 나는 왜 희랑대사상을 북한에 있는 왕건상과 짝지으려 했는지, 그 까닭을 지금도 이해할 수는 없다. 물론 왜 이렇게 하고자 했는지, 나아가 이를 통해 국박이 무엇을 선전하고 홍보하며 무엇을 노리고자 했는지는 내가 잘 안다. 기록에 의하면 희랑은 왕건이 스승으로 섬긴 신라말 고려 초 고승이라 하거니와, 그에 착목해 남쪽 해인사에 계신 희랑대사와 북쪽 개성 왕건 무덤 현릉에서 파낸 왕건을 짝지워 줌으로써, 남북 화해 혹은 남북통일의 당위성을 선전하고자 했을 터이지만, 나는 이런 정치성의 연출에는 생득적인 반감이 있는 사람이다. 



비운 왕건상, 머쓱한 희랑대사.



희랑대사상 그 자체로도 얼마든 많은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데 왜 굳이 왕건인가? 그에 대한 반발이 나로서는 있다. 물론 국박이 기획한 대로 왕건상이 왔더래면 금상첨화였을지 모르나, 그렇다고 해서 왕건 보위를 비워두고, 그 자리에 부러 연꽃 종이작품 덩그러니 놓아야 했는지, 그 취지엔 동의하고픈 생각이 없다. 희랑대사만 우습게 만들지 않았나 하기 때문이다.  


국립박물관의 과거 고려를 기억하는 사람들한테 이번 전시는 오버랩의 잔영이 있을 수밖에 없다. 내가 알기로 국박이 소장한 자체 회화는 거의 없다. 그런 까닭에 수월관음도를 비롯한 이번 전시작 대부분은 국내외 대여품으로 채웠거니와, 개중 상당수가 실은 국박기 개최해 국내외적인 센세이션을 일으킨 '고려불화대전' 찬조출연품이다. 어제 전시장을 둘러보다가 보스턴박물관 소장 치성광여래강림도를 맞닥뜨리고는 "이 불화가 또 왔네" 했더랬지만, 이런 것이 좀 많다. 



897년 제작 치성광여래와 오성도. 돈황 천불동. 브리티시 뮤지엄.



마침 전시장에서 우연히 맞닥뜨린 이수미 국박 미술부장이 하는 말을 들으니, "좀처럼 만나기 힘든 전시품이 많으니 유의해 달라"면서 "이들 외국 대여품 대부분은 12월까지만 전시하고는 돌려줄 예정"이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그런 작품이 제법 된다. 고려시대에 고려사람들이 직접 제작한 것은 아니라 해도, 그 시대 불교미술과의 비교라는 측면에서 영국에서 대여한 돈황 미술품도 그런 보기 중 하나다. 브리티시 뮤지엄에서 대여한 이런 불교회화 중 수월관음도는 돈황 천불동 수거품이라, 10세기 무렵 작품으로 평가되거니와, 나로서는 관음 손에 든 양류, 즉 버드나무 가지가 무척이나 뚜렷해서 인상으로 남는다. 



10세기 양류관음(서월관음). 돈황 천불동. 브리티시 뮤지엄.



나아가 몇년 전인가? 이탈리아 어느 미술관이 고려불화가 소장되었다 해서 한바탕 화제가 된 적이 있거니와, 이번에 보니 이 작품이 덩그러니 와 있더라. 이걸 기억하는 국박 사람들이 이것만은 빌려와야 한다 해서 대여했을 것이다. 


고려문화와 동시대 다른 문화권 비교라는 측면에서 동원한 전시품들도 충분히 눈길을 줄 만하거니와, 예컨대 미국 메트박물관 소장 11-12세기 대리국 천수관음상은 동시대 고려 천수관음상 같은 데가 이에 해당한다. 천수관음은 그것이 설파하는 불교 정신이야 같겠지만, 그것이 추상을 헤치고 구상으로 해체될 적에는 그 시대 니즈needs에 부합할 수밖에 없거니와, 그 다른 점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이질이 되고, 그 저변에 도도히 흐르는 그랜드 디자인을 보면, 문화의 구현 양상이라는 측면에서 많은 생각할 거리를 준다. 



11-12세기 대리국 천수관음. 브리티시 뮤지엄.

 



차후 더 기회를 엿보아 이 특별전 이야기를 해 볼까 한다. 이 기획전에 대한 소개는 아래 기사를 클릭하라. 


세계에 흩어진 문화재 450여점으로 고려를 조명하다(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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