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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호철의 잡동산이雜同散異/자료고資料庫

정호(鄭澔, 1648~1736) 〈식영정 중수기(息影亭重修記)〉 장성 獨居翁 기호철이 교열하고, 해제하며 옮기다. 지금은 전남 담양군 광주호 변 경승을 자랑하는 곳에 자리한 누정樓亭인 식영정은 앞선 자료들을 봤듯이 임진왜란 발발 이전인 1560년 무렵에 지었다가 이후 언제인지 폐허가 된다. 이런 상태가 언제까지 지속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 시공업자이면서 땅 주인인 김성원(金成遠, 1525~1597)과 그가 이를 지어 짜웅한 그의 장인 임억령(林億齡, 1496~1568)이 죽으면서 이내 폐허 상태로 방..
김성원(金成遠, 1525~1597) 〈식영정 18영( 息影亭十八詠)〉 장성 獨居翁 기호철 해제하고 번역하고 해설함 이번에 소개하는  〈식영정 18영( 息影亭十八詠)〉은 식영정이라는 정자를 지어 그의 장인 석천(石川) 임억령(林億齡, 1496~1568)이 쉬도록 제공한 서하당(棲霞堂)  김성원(金成遠, 1525∼1597)이 지은 연작시다. 임억령이 쓴 〈식영정기〉에 따르면, 김성원은 1563년에 정자를 지어 식영정이란 이름을 짓고 그 기문을 지었다 했다. 하지만 김성원 행장에..
임억령(林億齡, 1496~1568) 〈식영정제영(息影亭題詠)〉 임억령(林億齡, 1496~1568) 〈식영정제영(息影亭題詠)〉원문息影亭題咏 石川林億齡溶溶嶺上雲,纔出而還斂。無事孰如雲?相看兩不厭。右瑞石閑雲。古峽斜陽裡,蒼龍噴水銀。囊中如可拾,欲寄熱中人。右蒼溪白波。吾方憑水檻,鷺亦立沙灘。白髮雖相似,吾閒鷺不閒。右水檻觀魚。有陰皆可息,何地不宜苽?細雨荷鋤立,蕭蕭沾綠蓑。右陽坡種苽。秋山吐凉月,中夜掛庭梧。鳳鳥何時至?吾今命矣夫。右碧梧凉月。萬逕人皆絶,蒼松盖盡傾。無風時落片,孤鶴夢初驚。右蒼松晴雪。雨洗石無垢,霜侵松有聲。此翁猶取適,不是釣周人。右釣..
임억령(林億齡, 1496~1568) 〈식영정기(息影亭記)〉 기호철 원문 교정하고 번역하며 해설함 임억령(林億齡, 1496~1568) 〈식영정기(息影亭記)〉1. 원문 息影亭記金君剛叔吾友也,乃於蒼溪之上,寒松之下,得一麓,構小亭,柱其隅,空其中,苫以白茅,翼以凉簟,望之如羽盖畫舫,以爲吾休息之所,請名於先生。先生曰:“汝聞莊氏之言乎?周之言曰‘昔者畏影者,走日下,其走愈急而影終不息,及就樹陰下,影忽不見。’夫影之爲物,一隨人形,人俯則俯,人仰則仰,其他往來行止,惟形之爲。然陰與夜則無,火與晝則生,人之處世亦此類也。古語有之曰‘夢..
정민하(鄭敏河, 1671~1754)〈식영정기(息影亭記)〉 번역 및 해제 : 기호철 ( 독학하는 장성 독거노인 )해제 : 담양 식영정기는 그간 임억령(林億齡, 1496~1568)이 쓴 기문만 언급되는 일이 많다. 임억령이 사위인 김성원(金成遠)의 정자를 빌려 몇 년 사용하다 고향 해남으로 돌아가 쓴  〈식영정기(息影亭記)〉는 그 나름으로 식영정 역사를 논할 때 매우 중요한 자료임에 틀림없지만, 실은 그것이 말하는 식영정은 오늘날 우리가 보는 식영정과는 무관하다고 보아도 좋을 정도로 풍모가 크게 변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