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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불대산에 있을 때 절구 한편을 완성한 적이 있었으나 진즉 잊었는데 느닷없이 기억이 나기에 빙그레 웃으며 적는다[去歲在佛臺山 嘗得一絶 既已忘之 率然記憶 一笑以識]〉


  기대승(奇大升, 1527~1572) 

 

홀로 산봉우리에서 넓은 하늘 바라보니,   孤倚巉峯望海天,

미인은 대부분 저녁 구름 곁에 있었구나.  美人庶在暮雲邊。

편지 보내 평안한단 소식 알려 주셨거늘,  書來為報平安信,

깨알 같은 몇 줄 글에 구슬픔 적혔어라.    細字踈行記可憐。


출전 : 《고봉집(高峯集)》 권1 


해제 : 이 시는 그간 주목을 받지 못하였는데, 자세히 음미하면 퇴계와 서신으로 사칠논쟁을 벌이면서 느끼는 고봉의 감정을 담은 시다. 1, 2행은 진원현 불대산 가파른 산봉우리에 올라 해 저무는 하늘의 붉고 곱게 물든 구름을 보며 저물녘 경치가 더욱 아름답듯 덕망이 빼어난 사람도 대부분 인생을 마무리하는 노인이라고 생각한다. 3, 4행은 아마도 퇴계(退溪) 이황(李滉, 1501~1570)의 편지를 받고서 연로한 퇴계를 생각하며 구슬픈 마음을 금치 못한다는 뜻을 담은 듯하다.  


지금의 전북 고창군 성송면 출신으로 영조~정조 연간에 할동한 이재(頥齋) 황윤석(黃胤錫·1729~1791)이 그의 방대한 일기 《이재난고(頤齋亂藁)》에 수록한 글 중 이런 것이 있다.  


하서 감나무에 대한 설[河西枾說]


송찬욱(宋贊旭) 군 말에 따르면 "하서(河西) 선생께서 옥과 현감(玉果縣監)으로 계실 때, 두 밭 경계에 있는 감나무 한 그루 때문에 서로 다투다가 송사(訟事)를 벌인 자들이 있었다. 선생께서 갑(甲)쪽 가지에 열린 감은 갑이 주인이고, 을(乙)쪽 가지에 열린 감은 을이 주인이라고 명령[판결]하니, 두 사람이 그 명령대로 하되, 중간에 열린 감은 내버려두니 주인이 없었다. 선생께서 임기를 마치고 돌아가니 두 사람이 이 일을 떠올리고는 각기 가지 하나라도 주인이 될 수 없다고 하고는 이 감나무를 '하서 감나무[河西枾]'라고 불렀다. 근세에 옥과 현에서 과거를 보여 시사(試士)할 때 '하서 감나무'라는 제목으로 출제(出題)했다"고 했다. 이는 하서의 후손들도 알지 못하므로 적어둔다. 


河西枾說

宋君贊旭言: "河西先生監玉果也, 有以二界上一枾木相爭而訟者. 先生令甲邊枝結子則甲主之, 乙邊枝結子則乙主之. 二人如其令, 中枝結子者, 任其無主. 先生旣遞歸, 二人思之, 雖其各一邊枝, 亦不主名之曰河西枾. 近世本縣設場試士, 以河西枾命題". 此本孫所未及知者, 故錄之. 

<전남 장성 奇氏네 대봉>


[해설]

이에서 말하는 하서(河西)란 조선 중기 저명한 학자요 정치가인 김인후(金麟厚·1510~1560)의 號다. 전라도 장성 출신으로, 본관은 울산(蔚山)이며, 자가 후지(厚之)이며 담재(湛齋)라는 다른 호를 사용하기도 했다. 시호는 문정(文正)이다. 


황윤석이 적은 이 기록은 이후 순조 때 하서의 시문을 모은 《하서집(河西集)》을 인간(印刊)할 때 《하서전집(河西全集)》 부록 권之2 <敍述>에 축약해 수록하고는 "옥과에서 들은 것을 기록[玉果記聞]"한 것이라 했다. 황윤석에게 이 이야기를 해준 송찬욱(宋贊旭)은 담양에 살던 신평 송씨(新平宋氏)로, 면앙정 송순의 후손인 듯하며, 선달(先達)로 불렸으나 자세한 행적은 확인키 어렵다. 

갈재를 넘으며[渡蘆嶺]


      백광훈(白光勳·1537-1582)

 

새벽 기러기 따라 관문넘어 고향가는데

마구 쏘다닌 여정 말하자면 꿈결만 같소

강남풍토와 흡사하여 반갑기 그지없고 

인가는 어디든 대숲에 싸인 마을이라오


還隨曉雁度關門

欲說經行似夢魂
却喜江南風土近

人家處處竹林村


출전 : 백광훈伯光勳) 《옥봉시집(玉峯詩集)》3 도노령(渡蘆嶺)

오산곡 장성(鰲山曲 長城) - 임제(林悌)


금오산 산자락 아래에는 흘러가는 황룡천

버들가지 한들한들 집마다 밥 짓는 연기

꽃 한 송이 꺾어 역로로 임께 보내렸더니

갈재 겹겹 관문에 새 한 마리 얼쩡거리네


金鰲山下黃龍川

緑柳依依千戶煙

折花官道送君去

荻嶺单關孤鳥邊


출전 : 임제(林悌·1549~1587) 《임백호집(林自湖集)》2  오산곡(鰲山曲)


[해설]

오산(鰲山)은 전라도 장성(長城)의 별호(別號)다. 장성현이 지원현과 병합되어 장성읍 성산리 성자산(聖子山) 아래로 치소(治所)를 옮기기 전까지 장성군 북이면 오산리에 치소가 있었다. 오산리 뒷산이 금오산으로 장성현 진산이었다. 


1행과 2행은 봄날 장성현 모습을 정감 있게 그렸다. 3행과 4행은 임금님께 정성을 바치려 해도 갈재 험한 관문에 막혀 그 정성이 이르지 못하는 신세를 한탄한다. 미쳐 갈재를 넘지 못하고 얼쩡대는 새와 신세가 흡사하다.


관도(官道)를 벼슬길로 보기도 하지만 여기서는 청암역(靑巖驛)을 지나 미륵원(彌勒院)을 거쳐 갈재를 넘어가는 역로(驛路)를 이른다. 적령(荻嶺)은 장성과 정읍 경계에 있는 갈재를 지칭하니, 위령(草嶺) 혹은 노령(蘆嶺) 등으로 쓴다. 오늘날은 노령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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