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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사전

공후(箜篌) “空侯”(공후) 또는 “坎侯”(감후)라고도 표기한다. 고대의 撥弦 악기 중 하나로 分臥式과 豎式 두 종류가 있다. 臥箜篌는 전하기를 漢 武帝 때 樂人인 侯調가 제작했다고 한다. 唐代 杜佑가 편찬한 《통전(通典)》에 이르기를 “漢武帝가 使 樂人侯調하여 所造케 하고는 以祀太一하게 했다. 或云하기를 侯暉가 所作한 것은 其聲이 坎坎 應節하여 謂之하기를 坎侯했다. 聲이 訛하여 爲 箜篌했다, 篌란 樂工人의 姓에서 말미암았을 뿐이다”고 했다. 나아가 《통전》은 ..
강적(羌笛) 고대 羌族의 민간에서 광범위하게 유포된 吹管 악기의 일종으로 강관(羌管)이라고도 한다. 그 역사는 유구해 漢代 이래 역사문헌에서 그에 관한 기록이 적지 않다. 《풍속통(風俗通)》에 이르기를 “漢武帝時에 丘仲이 笛을 作하니 그 후에 또 강적(羌笛)이 있었다”고 했다. 陳暘의 《樂書》에는 또 이르기를 “羌笛은 구멍이 다섯이다. 馬融이 賦笛에서 이르기를 羌中에서 왔으며 舊制에는 구멍이 4개였을 뿐이다. 京房에서는 구멍 하나를 더하니 그리하여 五音을 갖춘다..
삼도(三都) 東漢 시대에 “三都”란 東都인 낙양(雒陽. 지금의 洛陽市 東北), 西都인 장안(長安), 南都인 宛(河南 南陽市)을 지칭한다. 晉나라 때 左思가 읊은 《삼도부三都賦》의 “三都”란 삼국시대 蜀都인 성도(成都) 吳都인 건업(建業. 南京), 魏都인 업(鄴. 河北 臨漳縣 西南 鄴鎭 동쪽 1.5㎞)을 말한다. 唐代에 “三都”란 東都 洛陽, 北都 진양(晉陽. 太原市), 京都인 長安이다.
《대대례기(大戴禮記)》 《大戴禮記》는 전하는 기록에 의하면 西漢 대덕(戴德) 撰이다. 공영달(孔穎達) 撰 《예기정의(禮記正義)》 大題下에 인용된 鄭玄의  《六藝論》에서 이르기를 “戴德이 《記》85篇을 전하니 《大戴禮》가 곧 이것이다. 대성(戴聖)이 《禮》49篇을 전하니 이것이 곧 《禮記》라는 것이다”(戴德傳《記》八十五篇,則《大戴禮》是也;戴聖傳《禮》四十九篇,則此《禮記》是也)라고 했다.또, 육덕명(陸德明)이 撰한 《경전석문(經典釋文)》 ‘敍錄’에 인용된 晉나라 때 사..
우세남(虞世南. 558~638) 字가 백시(伯施)다. 남북조시대 남조(六朝)의 하나인 진(陳)의 무제(武帝) 2년(558)에 지금의 절강(浙江)에 속하는 월주(越州) 여요(餘姚)라는 곳에서 태어났다. 陳朝에서는 고야왕(顧野王)에게 배워 10년 동안 게을리 함이 없으니 그의 문장은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수(隋)가 천하통일을 이룬 뒤에는 양제(煬帝)를 섬겨 근신이 되었으나 그다지 중용되진 못했다. 당이 건국하고는 환갑이 넘어 그에 합류했으나 고조(高祖) 이연(李淵) 시대에도 그다..
《직재서록해제直齋書錄解題》 중국 남송(南宋)시대 국자감사업(國子監司業)을 지냈으며 대장서가(大藏書家)이며 목록학자(目錄學家)인 진진손(陳振孫)이 가희(嘉熙) 2년(1238)에 임안(臨安. 今 杭州)에서 편찬을 시작해 완성한 사인장서(私人藏書) 해제목록(解題目錄)이다. 陳振孫은 號를 직재(直齋)라 하며, 절강(浙江) 안길(安吉) 사람이다. 영가학파(永嘉學派) 학자인 주행기(周行己)의 外孫이다.  어릴 때는 강서(江西) 남성(南城)과 복건(福建) 보전(莆田)에 있었으며,..
《경적찬고(經籍纂詁)》 중국 청대(淸代) 가경(嘉慶) 연간에 완원(阮元)이 편찬을 총지휘해 완성한 자전(字典)으로 총 106권이다. 당대(唐代) 이전 古書에 출현하는 文字를 휘집(彙輯)하여 훈석(訓釋)한 훈고학의 금자탑 중 하나이다.阮元이 撰集하는 가운데 장용당(臧鏞堂)․장예당(臧禮堂) 형제를 비롯한 40여 명을 동원, 찬교(纂校)해 가경(嘉慶) 3年(1798)에 간행됐다. 이 때 완원은 독학절강학정(督學浙江學政)이었으니 지금으로 보면 절강성이라는 지방자치단체의 교육부 장..
피석서(皮錫瑞. 1850~1908. PiXirui) 字를 녹문(鹿門)이라 하며 녹운(麓雲)이라고도 한다. 호남(湖南) 선화(善化) 사람이다. 서한(西漢) 초기에 《尙書》를 전했다는 유자(儒者) 복생(伏生)을 흠모하여 그 서재 이름 또한 ‘사복당’(師伏堂)이라 했으며 그런 까닭에 그를 일컬어 ‘사복선생’(師伏先生)이라 한다. 청말 광서(光緖) 5년, 30세가 된 피석서는 경학 연구를 개시했다. 복생은 금문학파에 속하며, 나아가 그가 전한 尙書 판본을 서한 당시에 통용되던 예서체로 된 텍스트라 해서 금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