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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송설당, 좌협시 여운형 우협시 송진우를 거느린 시대의 절대 대모大母 1935년 사진이다. 서울역사박물관이 막 개막한 망우동 특별전 낙이망우樂以忘憂 전에 망우리묘지와 관련한 인물 고하 송진우를 소개하는 코너에 출연했다. 저때는 이미 송설당이 사재를 전부 희사해 송설학원을 만들고 고향 경북 김천에 김천고보를 개교(1931)한 뒤다. 조선총독부와 쟁투를 벌여 마침내 학교를 개교한 송설당이다. 남성 중심으로 기술한 역사를 배신하는 한 장면이다. 개교식인가 초대된 몽양은 김천고보를 영남의 오아시스라 칭했다. 고하 송진우. 그 역시 몽양과 더불어 한 시대를 풍미하고 해방정국에서는 몽양과 마찬가지로 테러에 암살당한 비운의 인물이다. 그들을 좌우협시로 거느린 송설당을 어찌 자리매김할 것인가? 단순히 나이가 제일 많은 연장자라서? 아님 그냥 돈 많은 여성 갑부라서? 아니다. 그는 선각자.. 2023. 12. 11.
문외한이 보는 마한론 문외한이라도 듣고 읽고 이해가 안 가는 이야기에 대해 언급할 자격은 있을 것이다. 소위 마한론이란 스토리에 대해 문외한으로서 듣고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을 써 본다. 1. 마한론이 입론된 지역에 독립적 정치체가 있었다는 문헌적 근거로 장화전과 일본서기 침미다례기사, 그리고 삼국지 동이전 마한조를 드는데, 이 중 삼국지 마한전의 신지 중 하나가 이 지역의 정치체와 연관이 있다는 것은 그야말로 추정에 불과하므로 이야기 할 필요도 없다. 첫글자 같다고 비정이 가능하다면 삼국지 동이전 소국은 우리나라 어디에도 비정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장화전과 일본서기 침미다례기사는 5말6초의 상황을 전하는것이 아니다. 이 기사는 지금 마한론이 입전된 지역의 이야기임은 분명한데, 이런 독립적 세력의 징후가 5말6초까지도 .. 2023. 12. 11.
서기 4세기 고구려 서기 4세기 초반에 고구려는 낙랑을 멸망시키고 대동강 유역을 접수한다. 그러면-. 서기 4세기에 고구려 수도인 국내성지역과 대동강유역이 같은 무덤양식, 같은 문화양상으로 바로 통일되던가? 그렇지 않았다면 서기 4세기 대동강유역은 고구려 땅이 아니라 거기에는 독자적 정치세력이 있었다고 이제부터 이해해도 되는건가? 이게 소위 "5-6세기 마한론"하고 뭐가 다른 건지 설명 좀 들어봤으면 한다. 2023. 12. 11.
[그리스] 아이가이 Aigai (베르기나 Vergina) 왕릉군, 고대 마케도니아의 영혼 앞에서 '대왕'이라는 수식어가 익숙한 몇몇 왕이 있는데, 그 중 한 명이 동서양 교류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알렉산더 대왕'이다. 알렉산더 대왕 치세의 기반을 마련했다고 평가받는 그의 아버지 '필리포스(필리피) 2세'의 무덤을 포함한 고대 마케도니아 왕릉군이 모여있는, 그리스 북부 도시 베르기나를 찾았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1996년 등재. 1977~78년, 무덤 2기가 도굴되지 않은 상태로 발견되어 세계적인 반향을 일으켰다. 그간 무덤의 주인을 추정만 해 왔으나, 그 중 1기에서 출토된 유골을 2015년에 분석한 결과 알렉산더 대왕의 아버지인 필리포스 2세의 무덤임이 확인되었다. '무덤' 과 '출토유물' 전시로 구성되어 있다. https://maps.app.goo.gl/kPfnjACQGcWpMERr9 아이가.. 2023. 12. 11.
6세기 마한 이 정치체를 마한이라고 부를지 뭐라고 부를지 모르겠지만 6세기초의 전방후원분의 존재도 보고해 놓고는 백제의 영향력이 뚜렷하지 않으니 여기는 6세기까지도 독립적 세력이 있었다고 하는 설명이 가능한가? 아예 전방후원분이 없었다면 모를까. 필자 생각으로는 도대체 어떻게 설명하면 전방후원분이 나오는 상태에서 백제의 영향력이 안 보인다고 여기가 독립적 세력이 있었다고 바로 결론이 나오는건지 모르겠다. 상식적으로 6세기 초에 전방후원분이 나오는데 백제 영향력이 뚜렷하지 않다면 어떤 결론을 내리게 될까? 내 머리로는 도저히 독립적 마한 세력의 존재로 바로 결론이 나지를 않는데, 도대체 어떻게 하면 이런 상황에서 독자적 세력이 6세기초까지 존재하여 백제도 아니고 왜도 아닌 세력이 삼국시대 후기까지도 존재했다고 결론을 .. 2023. 12. 11.
6세기까지 남았다는 마한의 독립성 필자는 6세기까지 백제와 구별되는 마한의 독립성이 고고학적으로 보인다 아니다 이런 이야기를 여기에다 하려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그런 것을 고고학적으로 구별할 능력이 필자에겐 없다. 다만 한 가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지금 이야기처럼 6세기까지 마한의 독립성이 유지되었다고 본다면, 그것은 단순히 마한 스스로의 힘으로 그 독립성이 유지되었다고 판단하지 않을 사람들이 바다 건너편에는 바글바글하다는 점. 그 점 하나만 좀 이야기 하고자 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엄연히 있었던 마한의 독립성을 우리가 바다 건너편의 반응이 싫어서 부정해야 한다. 그런 뜻은 아니고. 문외한의 입장에서 볼 때 일본쪽 이야기들까지 함께 시야에 넣어 최근의 마한사 기술동향을 보면 아무래도 바다 건너편에서는 그렇게 정리가 들어갈 것 같다.. 2023. 1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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