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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sWho in Ancient Korea

거련(巨璉)

by taeshik.kim 2018. 3.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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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 권 제18(고구려본기 제6) 광개토왕본기 : 18년(408) 여름 4월에 왕자 거련(巨連)을 태자로 삼았다. 

 

삼국사기 권 제18(고구려본기 제6) 장수왕본기 즉위년 : 장수왕(長壽王)의 이름은 거련(巨連)<또는 련(璉)이라고도 썼다>이고 광개토왕 맏아들이다.


삼국사기 권 제25(백제본기 제3) 개로왕본기 : 18년(472)에 사신을 위(魏)에 보내 조공하고 다음과 같은 표(表)를 올렸다. …중략…또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금 련(璉)은 죄가 있어 나라가 스스로 으깨어지고[魚肉], 대신(大臣)과 힘센 귀족들을 죽이고 살해하기[戮殺]를 마지않아, 죄가 차고 악이 쌓여 백성들은 무너지고 흩어졌습니다. 이는 멸망시킬 수 있는 시기요 손을 쓸[假手] 때입니다. …현조(顯祖)는 [백제가] 궁벽하고 먼 곳에서 험난을 무릅쓰고 조공하였으므로 예우를 더욱 후하게 하고, 사자 소안(邵安)을 보내 백제의 사신과 함께 돌아가게 하면서 조서(詔書)를 내려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중략...또 련(璉)에게 조서를 내려 소안(邵安) 등을 [백제로] 호송케 하였다. [그러나] 안(安) 등이 고구려에 이르니 연(璉)은 이전에 여경(餘慶)과 원수진 일이 있다고 하면서 동쪽으로 지나가지 못하게 하였다. 안 등이 이에 모두 돌아오자 곧 조서를 내려 준절히 책망하였다. 뒤에 [소]안(安) 등으로 하여금 동래(東萊)로부터 바다를 건너가서 여경에게 조서[璽書]를 내리고 그의 정성과 절조를 포상하게 하였다. 안 등이 바닷가에 이르렀으나 바람을 만나 떠다니다가 끝내 도달하지 못하고 돌아갔다. 왕은 고구려 사람이 누차 변경을 침범하므로 표를 올려 군사를 청하였는데 [위나라가] 듣지 않았다. 왕은 이를 원망하여 드디어 조공을 끊었다. 


삼국사기 권 제25(백제본기 제3) 개로왕본기 : 21년(475) 가을 9월에 고구려왕 거련(巨璉)[장수왕]이 군사 3만 명을 거느리고 와서 서울[王都] 한성(漢城)을 포위하였다.


삼국사기 권제 3(신라본기 제3) 자비마립간본기 : 17년(474) 일모성(一牟城), 사시성(沙尸城), 광석성(廣石城), 답달성(沓達城), 구례성(仇禮城), 좌라성(坐羅城) 등을 쌓았다. 가을 7월에 고구려왕 거련(巨連)[장수왕]이 몸소 군사를 거느리고 백제를 공격하였다. 백제왕 경(慶)[개로왕]이 아들 문주(文周)를 보내 도움을 요청하였으므로 왕이 군사를 내어 구원하였으나, 구원병이 이르기도 전에 백제는 이미 함락되고 경(慶)[개로왕] 역시 살해당하였다. 

 

삼국사기 권 제26(백제본기 제4) 동성왕본기 :  6년(484) 봄 2월에 왕은 남제(南齊)의 태조[祖] 소도성(蕭道成)이 고구려 왕 거련(巨璉)[장수왕]을 책봉(冊封)하여 표기대장군(驃騎大將軍)으로 삼았다는 것을 듣고 사신을 보내 표(表)를 올리고 복속[內附]되기를 청하니 허락했다.


☞장수왕(長壽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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