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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sWho in Ancient Korea

구수왕(仇首王)

by taeshik.kim 2018. 3.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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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 권 제24(백제본기 제2) 구수왕 : 구수왕(仇首王)<혹은 귀수(貴須)라고도 하였다.>은 초고왕(肖古王)의 맏아들이다. 키가 일곱 자[尺]요 위엄과 거동이 빼어났다. 초고가 재위 49년에 죽자 왕위에 올랐다.3년(216) 가을 8월에 말갈이 와서 적현성(赤峴城)을 포위하였다. 성주가 굳게 막으니 적이 퇴각하여 돌아갔다. 왕이 굳센 기병 800명을 거느리고 추격하였는데, 사도성(沙道城) 아래에서 싸워 이를 격파하여 죽이거나 사로잡은 것이 매우 많았다. 4년(217) 봄 2월에 사도성 옆에 두 개의 목책을 설치하였는데 동서로 서로 떨어진 거리가 10리였다. 적현성의 군졸을 나누어 [보내] 지키게 하였다. 5년(218) 왕이 군사를 보내 신라의 장산성(獐山城)을 포위하였다. 신라 왕이 친히 군사를 거느리고 공격하니 아군이 패배하였다. 7년(220) 겨울 10월에 왕성(王城) 서문에 불이 났다. 말갈이 북쪽 변경을 노략질하므로 군사를 보내 막았다. 8년(221) 여름 5월에 나라의 동쪽 지방에 홍수가 나서 산 40여 곳이 무너졌다. 6월 그믐 무진에 일식이 있었다. 가을 8월에 한수(漢水) 서쪽에서 크게 사열(査閱)하였다. 9년(222) 봄 2월에 담당 관청[有司]에 명령하여 제방을 수축하게 하였다. 3월에 영을 내려 농사를 권장하였다. 여름 6월에 서울[王都]에 물고기가 비와 함께 떨어졌다. 겨울 10월에 군사를 보내 신라의 우두진(牛頭鎭)에 들어가 민호(民戶)를 약탈하였다. 신라 장수 충훤(忠萱)이 군사 5천 명을 거느리고 웅곡(熊谷)에서 맞아 싸웠으나 크게 패배하여 한 필의 말을 타고 혼자 도망하였다. 11월 그믐 경신에 일식이 있었다. 11년(224) 가을 7월에 신라의 일길찬(一吉) 연진(連珍)이 쳐들어 왔다. 우리 군사가 봉산(烽山) 아래에서 맞아 싸웠으나 이기지 못하였다. 겨울 10월에 금성[太白]이 낮에 나타났다. 14년(227) 봄 3월에 우박이 내렸다. 여름 4월에 크게 가물자 왕이 동명묘(東明廟)에 빌었더니 곧 비가 내렸다. 16년(229) 겨울 10월에 왕이 한천(寒川)에서 사냥하였다. 11월에 전염병이 크게 번졌다. 말갈이 우곡(牛谷)의 경계에 들어와 사람과 재물을 약탈하였다. 왕이 정예 군사 300명을 보내 막게 하였는데 적의 복병(伏兵)이 양쪽에서 쳐서 우리 군사가 크게 패하였다. 18년(231) 여름 4월에 우박이 내렸는데 크기가 밤[栗]만 하여 참새같이 작은 새들[鳥雀]이 맞으면 죽었다. 21년(234)에 왕이 죽었다.


삼국유사 권제1 왕력 :  제6대 구수왕(仇首王)은 귀수(貴須)라고도 하는데 (..)아들이다. 갑오년에 즉위해 21년을 다스렸다.


삼국사기 권제24(백제본기 제2) 고이왕 즉위년 : 고이왕(古尒王)은 개루왕(蓋婁王) 둘째 아들이다. 구수왕이 재위 21년에 죽자, 맏아들 사반(沙伴)이 왕위를 이었으나 어려서 정치를 할 수가 없었으므로, 초고왕의 동복 아우[母弟] 고이가 왕위에 올랐다.


삼국유사 권제1 왕력 : 제7대 사반왕(沙泮王)은 沙□□라도도 하는데 구수(仇首)의 아들이다. 즉위와 더불어 폐위됐다


삼국유사 제2권 기이 2 남부여(南扶餘) 전백제(前百濟) 북부여(北扶餘) : 시조(始祖) 온조왕은 동명왕(東明王)의 셋째아들로서 몸이 장대하고 효도와 우애가 지극하고, 말 타기와 활 쏘기를 잘했다.  또 다루왕(多婁王)은 너그럽고 관후했으며 위엄과 인망이 있었다.  또 사비왕(沙沸王; 혹은 사이왕沙伊王)은 구수왕(仇首王)이 죽은 뒤에 왕위를 계승했으나 나이가 어려서 정사를 보살필 수가 없었기 때문에 즉시 이를 폐하고 고이왕(古爾王)을 세웠다.  혹은 말하기를, 낙초(樂初) 2년 기미(己未)에 사비왕(沙沸王)이 죽고 고이왕이 왕위에 올랐다고 한다.


삼국사기 권제24(백제본기 제2) 고이왕 즉위년 : 고이왕(古尒王)은 개루왕(蓋婁王) 둘째 아들이다. 구수왕이 재위 21년에 죽자, 맏아들 사반(沙伴)이 왕위를 이었으나 어려서 정치를 할 수가 없었으므로, 초고왕의 동복 아우[母弟] 고이가 왕위에 올랐다.


삼국사기 권제24(백제본기 제2) 비류왕 즉위년 : 비류왕(比流王)은 구수왕 둘째 아들이다. 성품이 너그럽고 인자하여 남을 사랑하였고 또 힘이 세어 활을 잘 쏘았다. 오랫동안 백성들 사이[民間]에 있었지만 명성은 널리 퍼졌다. 분서왕이 죽자[終] 비록 아들이 있었으나 모두 어려서 왕위에 오를 수 없었다. 이로써 신하와 백성들의 추대를 받아 왕위에 올랐다.


삼국유사 권제1 왕력 : 제11대 비류왕(比流王)은 구수(仇首)의 둘째 아들인데 사반(沙泮)의 동생이다. 갑자년에 즉위해 40년을 다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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