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Who'sWho in Ancient Korea

김응렴金膺廉

by taeshik.kim 2018. 3. 21.
반응형

신라 제48대 경문왕 본명이다. 

삼국사기 권제11(신라본기 제11) 헌안왕 : 4년(860) 가을 9월에 왕이 임해전에서 여러 신하들을 모아 잔치를 베풀었는데, 왕족 응렴(膺廉)이 15세의 나이로 그 자리에 참석하였다. 왕이 그의 마음을 알아보려고 갑자기 물었다. “너는 한동안 돌아다니면서 공부했는데, 착한 사람을 본 일이 없는가?” [응렴]이 대답하였다. “저는 일찍이 세 사람을 보았는데, 착한 행실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왕이 “어떤 것인가?” 하니,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한 사람은 귀한 집 자제이면서 남과 사귐에 있어서는 자기를 먼저 하지 않고 남의 아래에 처하였으며, 또 한 사람은 집에 재물이 넉넉하여 사치스러운 옷을 입을 수 있는데도 항상 삼베와 모시옷으로 스스로 즐거워했습니다. 그리고 한 사람은 권세와 영화를 누리고 있었으나 일찍이 한번도 다른 사람에게 위세를 부리지 않았습니다. 제가 본 것은 이와 같습니다.” 왕이 듣고서 잠자코 있다가 왕비에게 귀엣말로 말하기를 “내가 많은 사람을 보아 왔지만 응렴같은 사람은 없었다.” 하고는 딸을 그의 아내로 삼게 할 마음을 가지게 되어, 응렴을 돌아보고 말하였다. “바라건대 그대는 자중자애 하라. 나에게 딸자식이 있는데 그로 하여금 잠자리를 모시도록 하겠다.” 다시 술자리를 베풀고 같이 마시다가 조용히 말하였다. “내게는 두 딸이 있는데 언니는 지금 20세이고 동생은 19세이다. 오직 그대가 장가들고자 하는 대로 하라!” 응렴이 사양하였으나 어쩔 수 없어 일어나 절하여 감사하고는 집에 돌아와 부모에게 알렸다. 부모가 말하였다. “듣건대 왕의 두 딸의 용모는 언니가 동생만 못하다고 한다. 만약 어쩔 수 없다면 마땅히 그 동생에게 장가드는 것이 좋겠다.” 그러나 여전히 주저하며 결정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흥륜사(興輪寺) 승려에게 물으니, 승려가 말하였다. “언니에게 장가들면 유익한 것이 세 가지 있고, 동생에게 장가들면 반대로 손해되는 것이 세 가지 있습니다.” 응렴은 이에 [왕에게] 아뢰었다. “저는 감히 스스로 결정할 수가 없습니다. 오직 왕께서 명하시는 대로 따르겠습니다.” 이에 왕은 맏딸을 [응렴에게] 시집보냈다. 5년(861) 봄 정월에 왕이 병으로 자리에 누워 오랫동안 낫지 않았으므로 좌우의 신하들에게 일렀다. “과인은 불행히도 아들은 없고 딸만 있다. 우리나라의 옛일에 비록 선덕(善德)과 진덕(眞德) 두 여자 임금이 있었으나, 이는 암탉이 새벽을 알리는 것과 비슷하므로 본받을 일이 못된다. 사위 응렴은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노련하고 성숙한 덕을 가지고 있다. 경들은 그를 왕으로 세워 섬기면 반드시 선조로부터 이어 온 훌륭한 왕업을 떨어뜨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과인은 죽어도 또한 썩지 않을 것이다.” 이달 29일에 [왕이] 죽었다. 시호를 헌안(憲安)이라 하고 공작지(孔雀趾)에 장사지냈다.

삼국사기 권제11(신라본기 제11) 경문왕 : 경문왕景文王이 왕위에 올랐다. 이름은 응렴膺廉(응膺을 의疑라도고 한다)이고 희강왕 아들인 아찬 계명啓明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광화부인光和夫人이고, 왕비는 김씨 녕화부인寧花夫人이다.

삼국유사 권제1 왕력 : 제48대 경문왕景文王은 김씨다. 이름이 응렴膺廉이다. 아버지는 계명啓明 각간이니 추봉된 의일義一, 혹은 의공대왕懿恭大王이니 희강왕僖康王 아들이다. 어머니는 신호왕神虎王 딸 광화부인光和夫人이다. 비는 문자황후文資皇后이니 헌안왕憲安王 딸이다. 신사년에 즉위해 14년을 다스렸다.

삼국사기 권제11(신라본기 제11) 진성왕 : 진성왕眞聖王이 왕위에 올랐다. 이름은 만曼으로, 헌강왕 여동생이다.<최치원문집崔致遠文集 제2권 사추증표謝追贈表에 말하였다. 『신臣 탄坦은 말씀을 올립니다. 엎드려 칙지勅旨를 받음에, 죽은 아버지 신 응凝[경문왕]을 추증하여 태사太師로 삼고 죽은 형 신 정晸을 태부太傅로 삼았습니다.』 또 납정절표納旌節表에서 말하였다. 『신의 큰 형인 국왕 정晸[헌강왕]은 지난 광계(光啓) 3년 7월 5일에 갑자기 성스러운 시대를 버렸고, 신의 사내 조카 요(嶢)는 아직 돐도 되지 않았으므로 신의 둘째 형 황(晃)[정강왕]이 임시로 이 변방의 나라를 다스리게 되었으나 또한 1년이 지나지 않아서 밝은 시대를 마다하고 멀리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로써 말하면 경문왕 이름은 응凝인데 본기本紀에서는 경응膺廉이라 하고, 진성왕 이름은 탄坦인데 본기에서는 만曼이라 하였다. 또한 정강왕 황晃은 광계光啓 3년에 죽었는데 본기에는 2년에 죽었다고 말하니 어느 것이 옳은지 모두 모르겠다>

삼국유사 왕력 : 제48대 경문대왕景文大王 : 왕은 이름이 응렴膺廉이니 나이 18세에 국선國仙이 되었다.

☞경문왕(景文王) 

반응형

'Who'sWho in Ancient Korea'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진성여왕(眞聖女王)  (0) 2018.03.21
응렴(膺廉)  (0) 2018.03.21
만(曼)  (0) 2018.03.21
만헌(曼憲)  (0) 2018.03.21
김만(金曼)  (0) 2018.03.21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