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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김춘추의 여인들(2) 그의 세 딸

by taeshik.kim 2018. 3.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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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추 사위 김품석 부부가 전몰한 합천 대야성, 구글 어스 캡쳐.


김춘추는 진덕왕을 이어 655년 즉위하고는 그 이듬해를 기해 새로운 시대가 열렸음을 보여주는 인사 조치를 취한다. 삼국사기 권제5 신라본기 제5 태종무열왕 2년(655) 조를 보면 이해 봄 3월에 자식들을 분봉하니, 맏아들 법민(法敏)은 다음 보위를 점지한 태자로 삼는 한편 나머지 여러 아들 중 문왕(文王)은 이찬, 노차(老且)는 해찬(海飡), 인태(仁泰)는 각찬角飡, 그리고 지경(智鏡)과 개원(愷元)은 각각 이찬으로 삼았다. 둘째아들 인문(仁問)이 빠진 까닭은 아마도 당에 가 있었기 때문인 듯하다. 


그렇다면 이들은 각각 누구 소생인가? 삼국유사 기이(紀異) 2가 '태종춘추공(太宗春秋公)'이라는 제하로 수록한 이야기를 보면 "태자 법민(法敏)·각간(角干) 인문(仁問)·각간 문왕(文王)·각간 노차(老且)·각간 지경(智鏡)·각간 개원(愷元) 등은 모두 문희가 낳은 아들이니 전날에 꿈을 산 징조가 여기에 나타난 것이다"고 하면서, "서자(庶子)는 개지문(皆知文) 급간(級干)과 거득령공(車得令公)·마득(馬得) 아간(俄間)이다. 딸까지 합치면 모두 다섯 명이다"이라고 했다. 


이를 액면 그대로 취신하면, 법민(法敏)·인문(仁問)·문왕(文王)·노차(老且)·지경(智鏡)·개원(愷元)이 문희 소생이다. 예서 관건은 삼국사기가 말한 인태(仁泰)다. 그는 도대체 누구 소생이기에 삼국유사에서는 빠졌을까? 실수에 따른 누락인가? 아니면 어머니가 달랐을까? 


나아가 개지문(皆知文)과 거득령공(車得令公)과 마득(馬得)과 같은 서자들은 후궁 소생임이 분명하거니와, 그들은 어머니가 누구인가? 더불어 딸까지 합치면 모두 다섯이라 했거니와, 이것이 무슨 말인가? 서자 서녀를 합쳐서 다섯이란 말인가? 또 한 가지 정비 문희는 아들만 낳았은가도 관건이 된다. 


대야성 원경, 문화재청 홈페이지.


하긴 요새도 보면, 이게 무슨 유전학 조화옹인지, 딸만 주구장창 낳는 어머니가 있는가 하면, 반대로 아들만 줄줄이 사탕처럼 부화하는 엄마도 심심찮게 본다. 여담이나, 내 마누라의 생물학적 어머니, 그러니깐 장모님을 볼짝시면 이 양반은 딸만 다섯을 두었다. 한데 더 요상한 점은 개중 일찍 사고사한 한 명을 제외한 딸 넷이 시집가서는 각기 자식 1명씩을 오늘 현재 둔 상태인데, 모조리 아들이다. 뭐 이것도 격세유전을 하는지는 모르겠다만, 아무튼 문희가 아들만 낳았다 해서 요새로 미루어도 하등 이상할 점은 없다는 점을 말해두고자 한다. 


우선 이 단계에서 우리는 김춘추 자식 관계를 이리 정리한다. 정부인이자 정비인 문희에게서 법민(法敏)·인문(仁問)·문왕(文王)·노차(老且)·지경(智鏡)·개원(愷元)의 다섯 아들을 두었으니 이들은 말할 것도 없이 적자(嫡子)라 요직을 차지한다. 나아가 문희 소생은 아닐 가능성이 크나, 인태(仁泰)라는 또 다른 아들이 있으니, 인태 역시 적자와 같은 취급을 받았다. 서자는 아니었던 것이며, 나아가 그런 까닭에 그 어미 역시 후궁 취급은 아니받았을 가능성이 크다. 


나아가 서자들이 있었으니, 후궁이 있었음은 말할 나위가 없다. 


한데 예서 두 가지 문제가 돌발한다. 바로 적녀(嫡女) 문제다. 적녀란 정식 부인과의 사이에서 난 딸로서 첩 혹은 후궁 소생인 서녀(庶女)와는 신분 지위가 왕청나게 다르다. 


대야성 성벽, 문화재청 제공.


김춘추에게는 적어도 적녀 셋을 우리는 확인한다. 첫째, 대야성전투에서 죽임을 당한 고타소이며 둘째, 김유신에게 하가(下嫁)한 지소이고 셋째, 이 대목은 아무도 생각한 적이 없는데 영휘(永徽) 6년, 무열왕 2년(655), 백제와의 조천성(助川城) 전투에서 장렬히 산화한 김흠운(金欽運)의 부인이 있다. 


** 이 외에도 파계한 승려 원효와 관계해 설총을 낳은 요성궁 공주가 있거니와, 이 여인을 나는 미쳐 고려에 넣지 못했다. 흔히 요석공주라 부르는 이 여인이 김춘추 딸임이 확실하고, 나아가 설총 활동 연대를 고려할 적에, 그가 앞으로 말하게 될 김흠운의 부인으로 본다는 주장이 있다고 경주학연구원 이채경 선생이 말한다. 이를 부기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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