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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벽 방어시절 일종인 '해자'를 '垓字' 혹은 '垓子'로 쓰기고 하거니와, 간단히 정리하면 성벽을 따라 낸 도랑 겸 방어시설이다. 이는 동서양 성곽에서는 거의 공통으로 나타난다. 한데 특이하게도 한반도 성곽에서는 해자를 구경하기가 쉽지는 않다. 그렇다고 없는 것도 아니지만, 이는 아무래도 한반도 지형 때문과 민족성 때문인듯 하다. 


한민족 특징은 국가가 누란의 위기에 처하면 일단 들고 튀자! 이것이 기본 전법이다. 어디로 튀는가? 높은 곳 후미진 곳을 찾아 일단 튄다. 이른바 농성(壟城)전법이라는 건데, 맞서 싸울 생각은 아니하고, 일단 독안으로 숨어들어 깔짝깔짝대는 전법이다. 난리가 나면 예외없이 들고 튀느라 정신이 없었다. 청군이 쳐들어오자 인조를 필두로 하는 군신은 남한산성으로 기어들었고, 그 청군을 막겠다고 호언장담한 임경업도 백마산성으로 기어들어가서는 "오라! 오면 내가 상대해 주겠다" 큰소리 뻥뻥 쳤지만, 이 전법을 모를 리 없는 청군은 유유히 백마산성 향해 빠이빠이 외치며 전속력으로 한양으로 내달았던 것이다. 



강화 고려중성 성벽과 이중 외황. 한백문화재연구원 제공.



전국토 산이 70%인 한반도는 방어력을 갖춘 평지성이 없다. 경복궁? 한양도성? 이게 무슨 방어력이 있단 말인가? 읍성? 이게 무슨 방어력이 있는가? 방어력 제로인 그냥 집에 지나지 않는다. 고구려 왕국 이래 죽어나사나 한민족은 난리만 나면 산속으로 기어들어갔으니, 뭐 안시성에서 고구려가 당군 백만을 물리쳤다 한들, 그 전과가 과대포장되었다. 


그러니 난리만 났다 하면, 정작 지켜야 하는 평지와 농토와 도시와 읍내는 쑥대밭이 되었으니, 뭐, 적군을 고립화하겠다며 채택한 수법이 고작 청야(淸野)전술이라 해서, 적군한테 이득이 될 만한 것들을 모조리 자기네 손으로 다 태워버리는 것이었으니, 이러니 정작 난리가 끝나고 적군이 물러나면 헐벗고 주려 죽은이가 지천에 깔리게 된다. 


해자는 다면성이 있다. 성벽이 흙이나 벽돌 같은 건축자재를 높이 쌓아 구축한 방어선이라면, 해자는 그 반대로 그 한 쪽 혹은 양쪽에다가 그 성벽을 따라 움푹 판 도랑이다. 해자는 그 성벽을 쌓는데 들어간 돌과 흙을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이른바 꿩먹고 알먹기인 셈인데, 거기다가 물을 채우는 일이 보통이다. 물을 채우려면 물을 끌어와야 하는데, 이에서 배수 관련 치수 기술이 필수적이다. 그 방어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똥물만큼 좋은 물이 없다. 한데 이리 되면 정작 그 안팎에 사는 사람들이 견뎌내지를 못한다. 


강화 고려중성 외황과 목책렬. 한백문화재연구원 제공



한반도 평지성은 군사적 방어성이 거의 없는 까닭에 해자가 없는 일이 다반사이니, 경복궁이니 창덕궁이니 하는 조선시대 궁궐에는 아예 해자가 없는 이유를 설명한다. 기타 있다 해도, 그 꼬락서니를 보면, 처참하기 짝이 없어, 있으나마나한 일이 대부분이다. 


해자는 물을 채우느냐 아니냐에 따라 여러 명칭으로 일컫거니와, 《설문해자》에서 일컫기를 황(隍)이라는 글자를 풀기를 "城池也,有水曰池,無水曰隍"이라 했으니, 이는 곧 "성을 두른 연못을 말한다. 물이 있으면 지池라 하고, 물이 없으면 隍이라 한다"는 뜻이다. 더불어 해자를 지칭하는 용어가 제법이거니와 濠(호)라는 글자도 있다. 대별하면 물채움을 한 해자는 거의 예외없이 뜻을 함유하는 부수자로 水를 간략화한 '氵'를 쓰거니와, 말할 것도 없이 물이 특징인 까닭이다. 



일본 마쓰모토성 물채움 해자



그에 견주어 왜 물채움 없는 소위 빈깡통 해자를 황(隍)이라 하는가? 《정자통正字通》이라는 옛날 한자사전을 보면 '阝'라는 글자를 설명하기를 "편방부자(偏傍阜字)"라고 하거니와, 阜라는 글자를 쪼개서 간략화한 것이 바로 阝라는 글자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그 본래 글자 '阜(부)'는 무슨 뜻인가? 이를 흔히 한글 옥편 같은 데서는 '언덕 부' 정도로 해설하거니와, 크게 틀리지는 않다. 


다만, 이를 그것이 등장하는 맥락으로써 살피면, 그리 간단치는 않다. 이 글자를 古文(고문)에서는 '𠻰'라 썼거니와, 《당운唐韻》이나 《집운集韻》에서는 그 발음을 "房과 九의 반절(房九切)"이라 하고, 《운회韻會》에서는 "扶와 缶의 반절(扶缶切)이라 했는가 하면, 《정운正韻》에서는 "房과 缶의 반절(房缶切)"이라 하면서 덧붙이기를 "𠀤音䘀"라 했다. 


그렇다면 그 의미는 무엇인가? 《爾雅·釋地》에서는 "큰 땅을 阜라 한다(大陸曰阜)하고, 《說文》에서는 "산에 돌이 없다는 뜻이다(山無石者)라 했으며, 《釋名》에서는 "흙산을 阜라 하니, 높고 두터움을 말한다(土山曰阜,言高厚也)고 했으니, 실은 언덕보다는 산이라 새기는 편이 좋고, 개중에서도 바위 덩어리가 아닌 흙이 쌓인 곳을 말함을 안다. 그것이 실제 사용된 맥락을 보면 《詩·小雅》에서는 "如山如阜"라 했으니, 이에서는 아예 山과 동의어로 이 글자를 썼음을 본다. 


요컨대 阜는 흙산이다. 이에서 우리는 이를 부수로 쓴 隍이 왜 하필 물을 채우지 않는 해자를 지칭하는지 실마리로 삼는다. 


물채움을 한 해자건, 그렇지 않은 맨땅 해자건, 해자가 무엇인지 그 생생한 면모가 가장 잘 드러나는 곳이 실은 중세 일본의 성곽들이다. 오사카성이며 하는 곳들을 보면 예외없이 이 친구들은 해자가 우람하기만 하다. 더구나 그런 해자 중에서도 물을 채우지 않은 곳도 많음을 본다. 그들 해자는 규모도 압도적이니, 해자가 적어도 이 정도는 되어야 방어성을 갖는 것이다. 그래서 일본의 전투는 이런 평지성 쟁탈전이라, 그렇지 않고 쥐새끼 숨듯 산속으로만 기어들어가 제 살길을 모색한 한반도 산성과는 확연히 갈 길을 달리한다. 


최근 소규모 주택 예정지인 강화도 어느 지역을 팠더니, 고려시대 성벽 외곽 방어시설인 해자 중에서도 물채움을 하지 않은 隍이 발견됐다고 하며, 더구나 그것을 이중으로 둘러친 사실이 드러났다 한다. 몽골 침략에 맞설 생각은 하지 못한 채 바리바리 짐 싸서 바닷길 넘어 섬속으로 숨어들기 바쁜 고려 지배층이 제 살길 도모하겠다며 마른해자까지 팠으니, 가소롭다. 



해자 개념



강화 주택부지서 고려 중성 방어시설 치(雉) 첫 발견(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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