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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중국해(South China Sea)와 자바해(Java Sea) 사이 경계 해역에 위치하는 벨리퉁 섬(Belitung Island). 말레이반도와 수마트라 섬, 보루네오 섬, 그리고 자바섬이 사방을 에워싼 해역 중앙을 차지한다. 탄중판단(Tanjung Pandan)은 이 섬 중앙부 서쪽 지점 해변 마을이다. 건너편에는 수마트라 섬에서 떨어져나온 방카섬이 있다. 해안은 고요해 보이나 그 아래 해저에는 암초가 빼곡하다. 오죽했으면 1820년에 작성된 어떤 프랑스 해도에서는 이 구역을 “방심할 수 없는 만(Treacherous Bay)”이라 표시했을까? 하긴 위성으로 보면, 암초보다 정작 두려운 것은 급류라는 느낌을 강하게 준다. 두 섬 사이를 관통하는 해류를 그만큼 빠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동아시아와 서남아시아를 오가는 배는 이곳을 관통해야 한다. 급류가 무섭다 해서 돌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만큼 위험부담이 더 크고 무엇보다 그랬다간 그에 따르는 물류 비용을 견딜 수가 없다. 이런 사실을 천년 전 이 일대를 무대로 살아간 사람들이 몰랐다고 할 수는 없다. 반드시 이곳을 통과해야 했다. 이런 곳이 해저발굴에는 보고寶庫다. 풍랑을 만나 좌초할 가능성이 그만큼 컸고, 실제 그랬기 때문이다. 


이곳 탄중판단 인근 해저 암초 중에 ‘바투 히탐(Batu Hitam)’ 또는 ‘검은 암초(Black Rock)’라고 일컫는 곳이 있다. 이 지역 어부들은 이 암초 주변에서 해삼을 채취하는 일로 생업을 삼는다. 1998년, 그런 어부 중 한 명이 평소보다는 좀 더 먼 바다까가 나가 해삼 채취를 하다가 산호로 범벅인 도자기 더미를 발견한다. 개중 사발과 주자(注子) 몇 점을 건져서 가져와서는 지역 골동품한테 의뢰한다. 채색이 뚜렷한 도자기. 골동상은 단박에 알았다. 당나라 시대(618-906) 중국 장사요(長沙窯)에서 생산한 도자임을 한눈에 알아본 것이다. 난파선에서 몇 점을 건져올린 것이다. 





어부들은 이들 도자기를 수습한 위치를 인도네시아 정부가 허가한 탐사 및 발굴 면허 독일 업체 ‘Seabed Explorations GBR’에 팔았다.  인도네시아 정부 요청에 따라 시베드(Seabed)는 즉각 해저 조사에 즉각 착수했다. 그것만이 해저 약탈을 막는 최선의 방법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발굴은 1998년 9~10월에 진행됐다. 현장이 거센 육지 바람에 노출된 까닭에 북서계절풍이 부는 기간에는 중단해야 했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이미 소문이 삽시간에 퍼지는 바람에 이곳 어부들이 주로 야음을 틈타 약탈을 벌인 것이다. 이 과정에서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큰 항아리는 너무 무거워 들어올리지 못하는 까닭에, 약탈자들은 그것을 깨뜨린 다음 그 안에 보존된 사발류들을 몽땅 꺼내기도 했다. 그나마 다행이랄까? 약탈자들한테는 에어리프트(airlift)나 준설선(dredge) 같은 최신 인양장비가 없었다는 사실이었다. 이어 2차 발굴조사가 이듬해 4월부터 6월까지 있었다. 


당시 발굴 사정은 열악하기 짝이 없었다. 낡은 낚시배 한 척에 십여 명이나 되는 조사단원과 잠수반원들이 타고는 수심 17미터에 위치한 난파선을 후카다이빙(hookah diving, 표면공급식 다이빙)을 하는 방식으로 유물을 인양했다. 잠수부 한 명당 하루 두 번 긴 잠수를 해서는 작업에 임했다. 잠수부들은 수면에 올라 그리드를 그린 화이트보드에 발굴한 지점과 유물 분포양상을 표시했다. 이들이 찾은 유물은 바구니에 담겨 수면 위로 떠올랐다. 하루 종일 낚싯배에서 잠수, 감독, 메모, 기록, 드로잉, 사진기록을 하는 고된 나날이 이어졌다. 





1차 발굴에서 도자 화물 2/3 가량을 수습하는 한편, 이 과정에서 선체 일부가 드러났다. 다만 굳어버린 거대한 산호더미(coral conglomerates)와 석회질 응결물질(concreations) 때문에 전체 선체(hull)를 기록할 수는 없었다. 다만, ‘유네스코 수중문화유산 보호 협약(UNESCO Convention on the Protection of Underwater Cultural Heritage)’을 나중에 알고는 선체는 완전한 인양 대신 미래 세대를 위해 현장에 두었다. 

  

2차 발굴에서 핵심은 이 난파선과 도자기 연대를 확정하는 일이었다. 나아가 난파선 국적도 알아내야 했다. 선박은 조사 결과 밧줄고정식선박(lashed-lug ship)이었다. 천만다행으로 선박은 보존상태가 아주 좋았다. 적재한 물건은 잔뜩 중국 도자기인데, 선박은 아무리 봐도 중국산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동남아시아산도 아니었다. 동남아시아 선박을 특징짓는 나무 맞춤못(dowels)도 없고, 중국 선박에는 예외없이 발견되는 철제 죔쇠(fastenings)도 발견되지 않았다. 





이 외에도 수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난파선에서 살아남은 화물은 거의 전부가 중국 도자기였다. 수습한 것만 6만여 점. 파손 정도는 상대적으로 낮은 20퍼센트 정도였다.  따라서 원래 도자 적재 화물은 약 7만여 점으로 추정됐다. 전체 도자 화물은 총무게 약 25톤으로 추산된다. 이들 도자기는 창사요(長沙窯)에서 드러나는 동화 및 철화 장식 유하채도자기가 압도적이다. 사발이 절대 다수인 가운데 주자, 단지도 보인다. 


사발류는 선체 횡방향과 종방향 양방향으로 적재됐다. 원래는 밀짚으로 만든 ‘원통’에 포장됐다고 추정된다. 일부 사발은 큰 녹유항아리 안에서 발견됐다. 나선형으로 쌓으면 130점에 달하는 사발이 항아리 하나에 들어갔다. 




  

선미부에서는 극소량 절강성(浙江省) 월요(越窯) 도자기도 발견됐다. 이들은 대체로 올리브그린색 유약에다가 화려한 꽃문양 장식을 넣은 원형 및 사각 접시였다. 그런 녹유항아리 중 한 점에서는 납덩어리 9점이 담긴 상태로 발견됐고, 다른 몇 점에는 팔각회향(Illicium verum)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나아가 백색 도자(white wares)는 발견됐다. 
 
수습품 중에는 놀랍게도 청화도자(blue-and-white) 3점이 발견됐다. 청와도자는 언제 등장했는지 논란이 있었다. 현재까지 발견된 가장 이른 시기 중국 도자제품이다.    





수습품 중 납괴는 선박 전체에 걸쳐 고루 적재됐으니 그 총무게는 대략 10톤 가까웠다고 추정된다. 주철용기, 구리합금 사발, 숫돌, 석회가 비교적 적게 발견됐다. 기타 사사로운 교역품 또는 조공품, 개인 소집품, 선박 장비 및 식료품도 발견됐다.  삼발이솥, 손잡이 없는 삼발이솥, 구연부가 외반하고 다리가 없는 솥, 웍(wok)처럼 생긴 용기, 손잡이가 달린 웍(wok)처럼 생긴 용기 등이 그렇다. 

선체 중앙부 뒤쪽에서 숫돌 몇 점이 발견되고, 더 많은 숫자가 우현 선미 쪽에서 드러났다. 온전한 한 쌍은 화강암 재질이고 다른 숫돌은 현무암제다. 숫돌은 지름 37센티미터로 거의 동일하다.(이런 기술 내용으로 보아 '숫돌'이란 번역은 혹 '닻돌' 아닌가 한다)  

중국 청동거울도 29점이 수습됐으니 개중 2점은 사자포도문양을 장식했다. 

녹유항아리 안에서 상당한 양이 발견된 팔각회향은 수출품목으로 추정한다. 남중국과 베트남 원산이다. 커리에 사용하는 향신료이자 약물 아닐까 한다. 정체 모를 작은 방향(芳香)수지 덩어리도 몇 점 수습됐다. 

이 난파선에는 중국 동전이 다량으로 발견됐다. ‘개원통보(開元通寶)’가 있고 ‘건원중보(乾元重寶)’가 있다. 이를 통해 이 난파선은 아무리 빨라도 건원중보가 제조된 758년 이전을 넘어서기 힘듦을 알 수 있다. 나아가 창사요 도자기는 9세기가 주된 제작시기다. 이에서 수습한 창사요 사발 중 1점에서는 ‘寶曆二年七月十六日’이라는 글자를 음각했다. 826년이다. 
 
이에서 수습한 유기물에 대한 방사성탄소연대 또한 선박 목재가 710~890년임을 보여준다. 이로써 이 난파선은 9세기 무렵임이 확실해졌다. 





그렇다면 이 선박은 도대체 어디서 만들었을까? 


선박에서 드러난 특징, 예컨대 톱으로 자른 목재, 안팎으로 충전재를 넣고 십자모양으로 꿰맨 이음매, 맞춤못을 사용하지 않은 모서리 접합, 경사가 거의 없는 날렵한 선수, 꿰맨 늑골, 선체에 꿰매어진 관통보, 철과 나무로 된 네갈고리형 닻, 탈착할 수 있는 내장판재, 내용골과 종통재. 이는 결코 이 선박이 중국 또는 동남아시아산이 아님을 보여준다. 

이런 배는 인도양(Indian Ocean) 서부 지역 선박 특징이다. 이제 아랍 선박인지 인도 선박인지가 남는다. 선갑재 수종을 분석한 결과 아프리카산 마호가니를 비롯해 아프리카에서만 자라는 고유종이 발견됐다.  

결국 이 배는 아라비아산이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 배는 어떻게 이곳에서 난파했을까? 

9세기 무렵 아랍 상인들은 지금의 광동성 광주를 들락거렸다. 아마도 아라비아 상선은 엄청난 화물을 싣고 중동 어느 지역을 향해 항해에 올랐을 것이다. 이 배가 목표한 종착항은 마스라(Masra)나 시라프(Siraf), 소하르(Sohar) 중 하나였을 것이다. 

이 흥미진진한 무역선 이야기를 목포 소재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가 풀어놓는다. 그에서 건진 다양한 유물이 한국을 찾았다.  아래 기사를 참조하라. (이상은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에 요청해 받은 관련 도록 원고를 축약해 내 나름대로 정리했음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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