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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

도이가하마 유적(土井ヶ浜遺跡)과 도래계(渡來系) 야요이인(弥生人) (1)

by 초야잠필 2019. 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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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훈 (申東勳·서울대 체질인류학 및 고병리연구실)



지난 주말 일본 야마구치 현(山口県)에서 "일본고병리연구회(日本古病病理硏究會) 정기학회"가 있어 다녀왔다. 우리나라도 옛 질병을 연구하는 고병리학자들의 모임인 "한국고병리연구회"가 있는데 비슷한 조직이 일본에도 있다. 


고병리라는 연구 분야는 유럽과 북남미를 중심으로 상당한 숫자의 연구자가 활동하는데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지역에는 그 숫자가 아직 미미하기만 하다. 우리처럼 일본도 아직 소수 연구자가 정기적으로 모여 의견을 주고 받는 정도 수준이라 할 수 있는데 상호간 드문 연구 주제를 다룬다는 동류의식이 흐르는 듯도 하다. 


지난 주말 그들 학회는 사실 국제학회는 아니었지만, 학회가 열리는 장소가 마침 "도이가하마 유적 박물관(土井ヶ浜遺跡博物館)이라, 나로서는 언젠가 한번 보고 싶었던 터라 연구실 동료와 함께 현지로 향했다. 우리 연구실에서는 고기생충 DNA에 대한 연구를 발표하기로 했다. 


서울에서 일본 키타큐슈 공항으로 들어갔다. 비행기는 진에어. 후쿠오카로 들어갈 수도 있었지만 목적지가 도이가하마라 조금이라도 가깝게 들어가는것이 나을 듯해서 기타큐슈(北九州) 공항으로 입국. 아침 7시에 departure하고 비행기 기내 좌석이 매우 좁다는 점만 빼면 어차피 비행시간이 1시간여 남짓이라 크게 불편하지는 않았다. 


기타큐슈로 들어가건 후쿠오카(福岡)로 들어가건 어디로 들어가건 간에 도이가하마 유적으로 가려면 무조건 차는 렌트해야 한다. 대중교통으로는 어렵다. 일단 기차역이 가 닿을 만한 곳이 아닌 까닭이다. 


바닷가 구릉지대 외진 농촌 마을에 유적이 위치하는 까닭에 차를 몰고 들어가야 한다. 이번 방문을 위해 우리는 키타큐슈 공항에서 렌트카를 댔다. 


기타큐슈에서 도이가하마 유적까지 구글맵으로는 1시간 반 정도 걸린다고 하는데 우리와 반대쪽으로 차가 달리는 일본 도로 속성상 한국 사람이 렌트를 해서 간다면 조금 더 걸릴 듯하다. 그래도 2시간 이내에는 도착할 수 있다고 본다.  



도이가하마 인류학 박물관의 위치. 키타큐슈 공항에서 차를 타고 들어가면 어렵지 않게 도달 가능하다. 하지만 박물관으로 들어가는 길에 눈에 띄는 표지가 없어 자칫 잘못하면 놓치고 지나칠수 있어 네비게이션을 잘 보고 가야한다. 



왜 도이가하마 유적을 보려했는가? 그 배경 이야기를 좀 하자면 일본 야요이시대(弥生時代)에 대한 설명을 먼저 해야겠다. 


잘 아시겠지만 일본 선사시대는 크게 두 시대로 나눈다. 하나는 조몬시대(縄文時代). 그리고 이 시대를 뒤이은 야요이시대다. 


조몽시대가 초보적인 농경, 수렵, 채집으로 바탕으로 한 문화라면 야요이시대는 본격적인 쌀농사, 금속기 사용 등 대륙으로부터 영향이 완연한 문화다. 야요이시대 문화가 발전하여 야마토 정권 수립까지 이어졌다고 생각하면 고대 일본 정치 권력의 선구를 이루는 문화라 할 수 있을 것이다. 


2019년 현재, 일본 야마가와 출판사의 "상설 일본사 연구"라는 책에 의하면, 


조몽시대는 지금으로부터 약 1만3천년 전에 시작해서 2500년 전에 야요이시대로 이행하면서 끝났다고 하고, 야요이시대는 기원전 5세기에 시작해 기원 3세기에 걸친다고 하지만, 세밀한 연대에 대해서는 이론이 없지는 않은 모양이다.  


자세한 것은 전공자분들의 첨언을 기대하며 일단 여기서는 일본학계 통설-교과서적 정보에 의존해 이야기를 풀어가고자 한다. 



도이가하마 인류학 박물관. 야마구치현 어마어마한 시골에 있다. 



일본의 인류학자들에게 조몽-야요이 인골은 영원한 떡밥이다. 


무슨 이야기일까? 긴 이야기를 짧게 풀어써 본다면, 


일본 고고학계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고인골을 만지는 일본 인류학자들 사이에 널리 받아들여지는 통설에 따르면, 조몽인과 야요이인은 종족적 계통이 다르다-. 이 둘 중 야요이인은 대륙에서 이주해 온 결과 형성된 사람들인데 선주 종족인 조몽인을 구축(毆逐), 혹은 동화하면서 고유한 야요이 문화를 성립시켰고 이것이 뒷날 일본 고대 국가의 성립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일본 인류학자들 사이에서는 이 가설을 일본 사회의 이중구조이론 (dual structure theory)이라고 한다. 


요약하자면, 오늘날 일본인을 구성하는 것은 조몽인과 야요이인, 두 계통으로 이 두 종족의 결합에 의해 일본인이 탄생했다는 것이다. 



도이가하마 박물관에 있는 그림 설명. 


2300년 전, 대륙에서 일본열도로 사람들의 이동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그림. 

소위 말하는 대륙계 야요이인이 일본열도로 이동하는 장면이다. 


이 가설이 일본 학계에 받아들여지는 과정을 이야기하자면 무척 긴데 이를 줄여 간단히 이야기해 보겠다. 


이 가설은 처음 일본 인류학계에서 제출된 이후 수많은 떡밥을 학계와 일반 대중 사이에 낳았다. 이중 구조 자체에 대해 회의적인 사람들도 있었고 이를 적극 지지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우리나라에도 70-80년대 이 이야기가 소개되어 "일본인은 우리 후예"라던가 "우리 조상님들이 일본을 만들었다" 등등의 스토리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적이 있다 (지금도 이런 자극적 멘트는 자주 보이지만). 


이 열풍이 그 동안 워낙 뜨겁다 보니 일각에서는 이에 대한 반감도 강해서 이런 이론 따위는 일본에서는 주류도 아니고 우리나라에서나 떠드는 소위 말하는 "국뽕" 이야기다, 라는 주장도 보인다. 


나로서는 내 전공도 아닌 고고학쪽 주장을 여기서 요약할 생각은 없다. 다만 적어도 일본인류학계 동향을 10년 넘게 지켜본 내 개인의 소견을 이야기 해보자면 "야요이인이 대륙 (혹은 한반도)에서 건너왔고 이 사람들에 의해 야요이시대가 열렸으며, 이 야요이 문화가 후대에 야마토정권의 수립까지 이어진다"는 주장 자체는 오늘날 일본학자들 사이에 상당히 폭넓게 받아들여진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에 대해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는 듯 하지만 내가 그동안 만나본 인류학자은 대부분 이 주장에 동의하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 이 주장 자체는 그동안 인골, DNA등 다양한 분야 연구자들에 의해서 상당히 오랫동안 신중하게 검토되었는데 그 결과 일본사회의 dual structure 자체는 부정하기 어렵고 대륙으로부터 야요이인의 이동이 바로 이런 점에 대해 큰 영향을 주었다는 주장이 현재 일본에서 대다수 인류학자가 지지하고 교과서에도 채택된 소위 "통설"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도이가하마 박물관에 전시된 그림. 큐슈지역에서 발견된 야요이시대 인골을 분석하면 뚜렷한 형태학 상의 차이가 보인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한반도 쪽에 가까운 북부큐슈 지역과 야마구치현 북부 (우리가 이번에 방문한 도이가하마 유적이 위치한) 에서 발견된 야요이 인골과 서부 및 남부 큐슈 지역에서 발견된 야요이시대 인골이 형태학상 차이가 있다고 한다. 


요약하면 전자는 한반도계에 가깝고 후자는 야요이인 이전에 일본열도에 살던 조몽인에 더 가까운 형태라는 것이다. 이 두 종류의 서로 다른 종족이 합쳐져서 지금의 일본인이 형성되었다는 것이 dual structure theory이다. 위 그림에서 한반도 쪽에 가까운 얼굴형을 이 인골이 발견된 지역의 에도시대 번명을 따라서 "죠슈형", 조몽인에 가까운 인골을 "사쓰마형"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지만 요즘은 자주 쓰지 않는 용어인것 같다. 



도이가하마 유적지 박물관 앞 정원에 세워진 기념물 (아마 남방쪽 조개인듯 한데 이름이...?)과 우리 연구실 홍종하 군



유적지 옆에 세워진 도이가하마 박물관은 1층짜리 건물이다. 내부에는 도이가하마 유적지에서 나온 유물이 전시되어 있고 관련 정보가 요약설명되어 있다. 처음 박물관에 들어가면 도이가하마 유적외에도 한반도계 유물이 발견되어 대륙과의 연관성을 갖고 있다고 인정된 유적지에 대한 전시를 해놓았다. 사진은 그 중 하나로 나가사키현 잇키섬에 있는 카라카미 유적지 발굴 유물 진열창. 모두 복사품으로 진품은 별로 없다고 한다. 



도이가하마 유적은 야요이 인골 중 대륙계 (한반도계) 야요이인골이 가장 풍부하게 발견된 유적지의 가장 대표적인 전형이라고 할 수 있어 이 유적을 이전부터 한 번 제대로 방문할 기회가 있었으면 했다. 그러다가 마침 나와 관련된 학회가 이 유적지에 세운 박물관에서 열린다기에, 나로서는 드문 기회를 잡은 셈이라 할 수 있겠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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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이가하마 유적(土井ヶ浜遺跡)과 도래계(渡來系) 야요이인(弥生人)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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