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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sWho in Ancient Korea

모도(牟都)

by taeshik.kim 2018. 3.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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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 권 제26(백제본기 제4) 동성왕본기 : 23년(501) 겨울 10월에 왕이 사비(泗)의 동쪽 벌판에서 사냥했다. 11월에 웅천(熊川)의 북쪽 벌판에서 사냥했고, 또 사비 서쪽 벌판에서 사냥하다가 큰 눈에 막혀 마포촌(馬浦村)에서 묵었다. 이보다 앞서 왕이 백가(苩加)에게 가림성을 지키게 했으나 백가(苩加)는 가지 않으려고 병을 핑계 삼아 사양하고자 했으나 왕이 허락치 않으니 이 때문에 왕을 원망하다가 이 때 사람을 시켜 왕을 칼로 찔렀다. 12월에 이르러 훙하니 시호(諡號)를 동성왕(東城王)이라 했다. <책부원귀(冊府元龜)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남제(南齊) 건원(建元) 2년(480)에 백제 왕 모도(牟都)가 사신을 보내 공물을 바치니 조서(詔書)를 내려 말했다. 「보배로운 명령이 새로와 은택이 먼 지역에까지 미쳤다. 모도는 대대로 동쪽 변경의 번국(蕃國)이 되어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직분을 지켰으니 곧 사지절(使持節) 도독백제제군사(都督百濟諸軍事) 진동대장군(鎭東大將軍)을 수여하노라.」 또 영명(永明) 8년(490)에 백제왕 모대(牟大)가 사신을 보내 표(表)를 올렸다. [남제는] 알자복야(謁者僕射) 손부(孫副)를 보내 모대를 책명(冊命)하여 돌아가신 조부 모도의 작호를 잇도록 하고 백제왕으로 삼아 말하였다. 「아아 그대는 대대로 충성과 근면을 이어받아 정성(精誠)이 먼 지역에서도 드러났고, 바다 길이 조용하게 되어 조공을 바침에 변함이 없었다. 떳떳한 법전[彛典]에 따라 천명을 이어가도록 하니 경계하고 조심할지어다[往敬]. 아름다운 위업을 받는 것이니 가히 삼가지 않으랴. 행도독백제제군사(行都督百濟諸軍事) 진동대장군(鎭東大將軍) 백제왕(百濟王)을 삼는다.」』그러나 삼한고기(三韓古記)에는 모도가 왕이 되었다는 사실이 없었다. 또 살펴보니 모대는 개로왕(蓋鹵王) 손자요, 개로왕 둘째 아들인 곤지(昆支)의 아들로서 그 할아버지를 모도라고 하지 않았으니 제서(齊書)에 실린 것은 의심스럽다고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동성왕(東城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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