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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중국의 미라

[조선시대 미라-1] 원이 엄마가 국제적으로 유명해 진 사연 (상)

by 초야잠필 2018. 12.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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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훈 (서울대 체질인류학 및 고병리연구실)

블로그 쥔장께서 부탁하신 대로 스핀오프 격으로 미라 이야기를 하나 써서 올린다.  

아마 조선시대 무덤에서 나온 편지-원이 엄마 이야기는 독자분들도 한번은 들어 보셨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야기 인 즉, 안동에서 발견된 조선시대 무덤에서 편지가 하나 나왔는데 이 편지를 해석해 보니 사연이 정말 구구한-아내의 죽은 남편에 대한 사모의 정이 한글로 애절하게 적힌 내용이라 그 내용이 역사스페셜에서도 다루어 졌었고 이후에도 메스컴에서 자주 다루어져 이제는 일반인들도 어느 정도 내용에 익숙할 것이다 (아닌가?)

 

 

"원이엄마"의 편지. 조선시대. 16세기 말.

 

 

이 무덤과 편지는 잘 알려진 대로 안동대 임세권-이은주 두 분 교수 작업으로 발견되었고 수습, 분석된 것이다.  이 무덤이 발굴되었던 해가 1998년인데 이 때 나는 의과대학 대학원 박사과정생이었다. 그러니까 이 무덤 발굴 자체는 나와 아무런 직접적 인연이 없는 셈이다. 내가 미라에 별 관심이 없을때 이미 이 무덤과 원이 엄마 편지에 대해서는 두 분 교수에 의해 충분한 연구가 이루어져 마무리가 된 상태로 안다. 

내가 이 편지와 처음 인연이 맺어 진것은 2006년 우연찮게 조선시대 미라를 접하면서 이 분야 연구에 뛰어 들게 되면서 부터이다. 이 당시 나는 도대체 우리나라에서 왜 미라가 발견되는지 그 동안 발견 양상은 어떠한지 제대로 아는 정보란 정말 하나도 없었다.

따라서 이에 관련된 자료를 이리 저리 찾다 보니 자연스럽게 "원이엄마 이야기"와 마추치게 되었다. 원이 엄마 편지 역시 잘 보존된 미라가 발견된 회곽묘에서 출토된 것이어서 크게 보아 내가 관심을 갖던 조선시대 미라의 범주 안에서 다루어져야 하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처음 "원이엄마 이야기"를 접한것은 KBS 장영주 PD가 만든 역사스페셜 "400년전의 편지 이야기"였다. 

이 다큐를 보고 비로소 나도 이 편지에 얽힌 전체 스토리를 알게 되었다. 

다행히 유튜브에는 아직 당시 동영상이 남아 있어 아래 링크한다. 

혹시 원이 엄마 이야기가 기억이 안나시는 분들은 아래 동영상을 보시고 기억을 되살리시기 바란다. 

 

 

 

 

 

2007년. 이스라엘의 스피겔만 선생이란 양반이 있다. 

원래 의사출신이고 런던대 고고학부 대학원을 졸업하고 세계 각지의 미라를 찾아 조사하는 분이었는데 이 양반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나를 만나 우연찮게 이 이야기가 나오게 되었다. 이 분은 원이엄마에 얽힌 이야기에 크게 감동했는데 자기는 지금까지 이런 비슷한 이야기는 들어본적도 없다는 것이다. 그의 흥분된 얼굴에서 "아 이 스토리는 한국에 머물만한 이야기가 아니구나" 하는 것을 직감하였다.  

한국을 방문했을때 나는 스피겔만 선생과 함께 안동대를 방문했다. 

당시 이은주 교수께서 박물관장을 하고 계셨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선생의 배려 덕분에 우리가 편지를 마침내 실견할 수 있었다. 

 

 

이스라엘 스피겔만 선생과 안동대 박물관을 방문했을때. 앞에 문제의 편지가 보인다. 2007년.

 

 

스피겔만 선생은 귀국하면서 괜찮다면 이 편지 이야기를 국제학회에 보고하자고 했다. 

어떤학회에? 2007년 스페인령 카나리아 군도에서 World Congress on Mummy Studies가 열린다고 했다. 

이 학회가 괜찮다면 여기서 보고하자. 여기는 미라 연구를 하는 과학자, 고고학자, 박물관 큐레이터 모두 모이기 때문에 반응을 보기 좋다. 여기서 보고하자. 

이것이 스피겔만 선생의 제안이었고 나는 이 제안을 안동대 측에 전했다. 안동대 측도 OK. 

우리는 발표를 위해 준비를 서둘렀다. 

 

 

학회가 열린 카나리 군도. 2007년.

 

오른쪽 건물이 학회장. 작아 보이는데 들어가면 넓다.

 

 

우리가 이 학회에서 발표한 결과는 그야말로 센셔이서널 자체였다. 학회장이 발칵 뒤집힐 정도의 반응이었다. 현지 신문이 우리 발표를 받아 기사를 썼다.  

 

 

 

우리 원이 엄마 이야기를 다룬 현지 신문. 이응태의 이름이 보인다.

 

학회장 현장의 센세이셔널한 반응은 현지신문만이 아니었다. 이 학회는 이 관련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나름 유명한 학회인지라 내셔널 지오그래픽이 항상 주시하는 학회였다. 이번 학회에도 예외가 아니어서 현지에는 내셔널지오그래픽의 director인 Chris Sloan씨가 와 있었다. 발표 다음날 그는 내게 따로 면담을 요청했다. 그의 말인 즉슨, 내용이 아주 센세이셔널하니 내셔널지오그래픽에서 기사로 다루자는 것이었다. 나는 안동대 측에 의사를 타진했고 또 다시 OK. 

Sloan씨에게 우리는 동의하니 그렇게 하자고 전해주고 귀국했다. 

결과적으로 이야기 하자면 내셔널지오그래픽은 처음에는 전면 full coverage 기사로 낼 생각이 있었던 것 같지만 그렇게 되지는 못했다. 이 케이스가 98년에 발굴되어 너무 오래된 내용이라 전면 기사화하는데 저항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 

결국 출판 자체는 원래 계획과는 달리 용두사미격으로 한장짜리 단신으로 그쳐버렸다. 무척 아쉬운 결과였다. 

만약 내셔널지오그래픽이 전면 기사로 다뤄 줬다면 아마 그 단계에서 나는 중재자로서의 일을 더 이상 진행하지 않고 만족하고 마무리 했을 것이다. 

하지만 원이엄마 이야기가 겨우 한장짜리 기사라니!!!! 그런 수백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한 스토리가!!! 저 기사를 보면 저게 무슨 소리인지나 알까? 사람들이? 

전 세계 사람들이 이 스토리에 감동하는 것이 분명한 이상 뭔가 다른 매체를 통해서 그들에서 이 스토리 전체를 알려주고 반응을 듣고 싶었다. 

뭔가 다른 방법이 이제 필요했다. (계속)

 

내셔널 지오그래픽 2007년 11월호에 실린 원이엄마 이야기 기사. 원래 대형 기사로 기획되었던 것이 한장짜리 기사로 마무리가 되어 안타까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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