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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중국의 미라

[조선시대 미라-2] 원이 엄마가 국제적으로 유명해 진 사연 (중)

by 초야잠필 2019. 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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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훈 (서울대 체질인류학 및 고병리연구실)

 

안동대 이은주, 임세권 교수와 나는 내셔널 지오그래픽에 만족스러운 분량의 소개가 이루어지지 않았으니, 원이 엄마 편지 내용을 제대로 된 해외 영문 잡지에 소개하자고 의견을 모았다. 이미 연구는 이은주, 임세권 두분 교수께서 다 해 놓으신 터라 영문화만 진행하면 되는 상태였다. 

두 분이 2000년, 안동대학교박물관에서 간행한 보고서를 바탕으로 논문을 쓰기 시작했는데, 막상 써 보니 전체적으로 큰 문제는 없었지만 한가지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한 부분이 나왔다. 

이 무덤에서 나온 문서는 사실 원이 엄마 편지만이 아니라 두 종류가 더 있다. 하나는 원이 엄마 남편인 이응태의 형인 이몽태가 동생한테 남긴 편지가 개중 하나다. 이 편지도 내용이 구구절절 애통한데 자세한 내용은 더 다루지 않겠다. 내가 연구한 부분이 아니므로.. 

문제는 다른 하나의 문서인데 이것은 짚신을 싼 종이였다. 

이응태 무덤에서는 짚신 한 켤레가 나왔는데, 이 짚신은 머리카락을 섞어 짠 희귀한 케이스였다. 그리고 그 짚신을 싼 종이에는 "내 머리카락을 가지고.."던가 하는 이야기가 적혀 사람 머리카락임은 분명한데 "내 머리카락"이 누구 머리카락이냐, 이것이 문제였다. 이 짚신 머리카락 주인공은 다름 아닌 이응태의 부인일 것이라는 심증은 다들 있었지만 확신이 어려웠다. 이 문제를 해결해야 논문 내용이 부드럽게 전개될 것 같았다. 

이 부분 해결을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양후열 선생을 모셨다. 양 선생은 필적 감정 후 짚신을 둘러싼 종이 필적은 원이 엄마 필적과 동일한 것 같다는 의견을 내 주었다. 

 

 

필적 감정시. 왼쪽부터 안동대 이은주 교수, 국과수 양후열 선생, 안동대박물관 조규복 학예연구사.

 

논문을 써가는 과정에서 또 한 가지 기록해야 할 일은 원이 엄마 편지의 번역이다. 

원래 원이 엄마 편지는 조선시대 국문이라 우리는 이 편지의 현대 한글본을 영역했다. 편지의 한글 번역본은 내가 알기로 여러 버전이 있는데 우리는 장영주 PD가 역사스페셜 제작 당시 번역한 버전을 썼다. 무엇보다 알기 쉽고 뭔가 좀 대중적인 부분이 더 많은 것 같고.. 아무튼 그랬다. 

영역은 서울의대를 졸업하고 지금은 텍사스주립대 병원에서 진단검사의학과 교수로 있는 김재협 박사, 임세권 교수, 그리고 내가 함께 했다. 

그 내용이 다음과 같다. 

To Father of Won;

You always said we would be living together to die on the same day.

However, why did you go to heaven alone?

Why did you go alone, leaving me and our child behind?

Whenever we slept together at night, I always said to you:

Dear, do the other couples love each other like us? Love each other as we do?

If you remembered my words, how could you go alone, leaving me behind?

I can’t live without you any longer. I hope I can be with you.

Please let me go with you.

My love for you, it’s unforgettable in this world.

And my sorrow, it’s without end.

I can’t live alone with our child, missing you from now on.

Please read my letter, and give me your answer in my dream.

Since I hope to hear your words in my dream, I placed this letter in your coffin,

to send with you.

Please read my letter, and give me your answer in my dream.

You said you had a message for our nascent child, after his birth.

How can you go alone without a word for him?

My child in my pregnancy, to whom could he say daddy after his birth?

Can I tell all my sorrow in this letter?

Is there any more sorrowful thing in this world?

You are now living in heaven.

However, you should not be sorrowful as I am.

Only a bit of my love for you can I write down here, in my letter.

Please read my letter, and come into my dream.

Please show your face in my dream, and say your words to me.

I believe you must come into my dream.

Please come into my dream and show your face, my dear.

I have endless words for you, though this letter must be ended.

From home

June 1, 1586

 

뭐 영역을 업으로 삼는 분들이 보시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그 당시 우리는 최선을 다했다는 점만 말씀 드리고자 한다. 

아무튼 영역 자체는 크게 문제가 없는지 이후 논문 게재 때도 별로 고치지 않았고 요즘도 가끔 인터넷 웹 서칭을 하면 이 영어 번역 구절이 눈에 띄기도 하니 성공적 번역이었다고 자평하고 싶다. 

이 논문은 최종적으로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고고학 잡지 "Antiquity"에 투고되었다. 

 

 

 

 

이 논문은 당시 이 잡지 편집자에게도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편집자가 이 논문에 남긴 editorial을 보면 다음과 같다. 

 

"Readers for whom the recession and the drubbing of the past are proving too much are invited to turn to pages 145-56 of this issue, where they will find Eun-Joo Lee’s account of the tomb of a medieval Korean and the letters that were buried with him; perhaps the saddest, sweetest excavation report we’ve ever published." Martin Carver York, 1 March 2009 

 

이 정도의 editorial 내용이면 원이 엄마 케이스에 대한 극찬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위에 보는 것처럼 이 논문은 실린 호 표지로 선정되어 원이 엄마의 편지 사진이 실렸다. 

이 논문은 내가 알기로 당시까지 Antiquity에 실린 몇 안 되는 우리나라 논문 중 하나였다. 지금은 어떤지 잘 모르겠다. 

아래는 당시 논문의 첫페이지이며 논문 전문은 아래에서 다운로드 받을 수 있다. 

 

https://www.cambridge.org/core/journals/antiquity/article/eung-taes-tomb-a-joseon-ancestor-and-the-letters-of-those-that-loved-him/2A9400FCCD8ADF772B6854AB30D5682E

 

원이 엄마 편지는 인류 공통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보편성을 갖춘 사례의 극치라고 할 수 있다. 원이 엄마가 국제적으로 유명해진 것은 이게 전부인가? 그건 아니고 아직 몇 가지 더 남았다 다음편에서 그 이야기를 마저하고 이 연재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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