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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랑세기 7세 풍월주 설원공전 한 대목은 그와 그의 베아트리체 미실의 '이상한' 죽음을 다음과 같이 전한다. 


(설원)공은 건원(建元) 14년(549)에 나서 건복(建福) 23년(606) 7월에 卒했다. 그때 미실궁주가 이상한 병에 걸려 여러 달 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공이 밤낮으로 옆에서 모셨다. 미실의 병을 자신이 대신하겠다고 밤에는 반드시 기도하였다. 마침내 그 병을 대신하였다. 미실이 일어나 슬퍼하며 자신의 속옷을 함께 넣어 장사를 지내며, ‘나 또한 오래지 않아 그대를 따라 하늘에 갈 것이다’고 하니 그때 나이 58세였다.


당시 58세는 장수까지는 아니라 해도, 그런대로 천수天壽를 누렸다 할 만하다. 그럼에도 이 대목이 허심하지 아니하게 보이는 까닭은 혹 돌림병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사기도 하는 까닭이다. 



드라마 선덕여왕 한 장면. 설원랑(왼쪽)과 미실(오른쪽)이다.



이 대목은 말할 것도 없이 주공(周公)의 고사를 본딴 언급이다. 군사 쿠데타를 통해 걸(桀)을 축출하고 하(夏) 왕조를 붕괴하면서 은상(隱商) 왕조 천하를 만든 문왕(文王)한테 주공은 둘째아들이라, 아비가 죽자 제위는 장자 무왕(武王)에게 갔다. 무왕이 죽자, 보위는 어린 아들 성왕(成王)한테 갔으니, 그의 재위 초반기 한동안은 숙부인 주공이 섭정으로 나라를 다스렸다. 그러자 주공을 시기하는 자들이 들고 일어났다. 


그 움직임이 집요했던 듯하니, 이런 움직임을 문왕의 다른 아들들, 그러니깐 무왕과 주공의 동생들이 주도했다. 음모론의 요체는 주공이 어린 조카를 몰아내고, 제위를 찬탈하려 한다는 것이었다. 결국 주공은 섭정 자리를 내어놓게 되는데, 그러고는 찬탈 음모에 대한 특수부 조사까지 받기에 이른다. 이 와중에 금등지서(金縢之書)가 공개되기에 이른다. 무왕이 죽을 병에 걸렸을 적에, 하늘에 대고 빌기를 "형은 못 났고, 나는 잘 잤으니, 잘난 나를 대신 데리고 가라"는 골자였다. 이리해서 결국 그 병을 주공이 대신 앓고, 무왕이 살아났다는 것인데, 이 금등지서가 공개됨으로써 주공의 충성심은 충분히 증명되었다는 것이다. 


설원공이 미실을 간병하다, 그 역시 그 병에 걸렸다는 것으로 보아, 혹 돌림병이 아닌가 충분히 의심할 만하다.  


아울러 저 인용문에서는 설원이 죽자, 미실이 자신의 속옷을 함께 넣어 장사를 지냈다 하거니와, 신라시대 매장 양식의 일면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무척이나 흥미롭다. 이 무렵이면, 신라에서는 저 우람한 경주분지 적석목곽분이 거의 자취를 감추고, 석실분으로 갈 무렵이라, 무덤 양식이야 어찌 변해가건, 발굴조사를 통해 드러난 이른바 부장품 중 상당품은 조의품이라는 내 주장을 기억한다면, 참고가 되리라 본다. 





  1. M. Cassandra 2018.12.06 16:06 신고

    드라마 선덕여왕이 생각나네요 ㅎㅎ 흥미로운 글 잘 읽었습니다~^^

  2. 국선화랑 2018.12.06 20:08 신고

    미실궁주의 나이가 58세란 말이 아니고, 설원의 나이가 58세(549~606)란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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