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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서연호 선생이 말하는 조지훈의 마지막

by taeshik.kim 2018. 1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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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국립고궁박물관에서는 올해 마지막 무형문화재위원회가 있었다. 회의는 당연히 위원장인 서연호(徐淵昊) 고려대학교 명예교수가 진행하는데, 회의 시작 전 연말이라 해서 조촐한 문화재위원 점심자리가 있었다. 어찌하다가 시인 조지훈 얘기가 나오게 되었다. 그 말을 듣던 서 위원장이 대뜸 "제 선생님이세요" 하는 것이 아닌가? 엥? 그러시냐고 하면서 가만 생각하니, 그럴 만도 한 것이 선생이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출신이고 다름 아닌 그곳에서 오랜 기간 교수로 봉직한 까닭이다. 



서연호 무형문화재위원회 위원장



서연호 선생 약력을 우리 공장 인물DB에서 찾아보니, 1941년 8월 22일생인 선생은 1961년 속초고를 졸업하고, 1966년 고려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1982년 모교에서 문학박사를 받은 선생은 서울시립대 교수를 거쳐 1981년 마침내 모교에 부임해 2006년에 정년퇴임했다. 


이른바 청록파 시인 중 한 명인 조지훈(趙芝薰)은 1920년 12월 3일, 경북 영양에서 태어나 1947년 10월에 고려대 국문학 교수가 되어 시 창작과 국학 연구에서 왕성한 활동을 펼치다가 1968년 5월 17일에 사망한다. 어린 시절엔 시인으로만 기억하는 조지훈은 나중에 보니 시인보다는 이른바 국학 연구로 더 평가받아야 한다고 생각을 많이 했다. 


그런 까닭에 나는 그의 이른 죽음을 언제나 안타까워한다. 지금의 나보다 어린 만 48살에 갔으니 말이다. 그가 예컨대 70을 살았더래도 적지 않은 업적을 남겼으리라 본다. 



지훈 조동탁



약력을 대입하면, 서연호 선생은 아마도 1961년 무렵 고려대 국문학과에 입학하면서 조지훈과 연을 맺었을 것이다. 대학원 재학 때 조지훈이 타계하고 말았으니, 선생 말에 따르면 지도교수였다고 한다. 직계 제자였던 것이다. 


자신은 없지만 조지훈은 술을 좋아했다고 읽은 기억이 있는 듯하다. 그러면서도 그 술 때문에 고생했다는 그런 자신의 증언도 본 듯 했다. 그래서 막연히 그가 술독으로 일찍 세상을 가지 않았겠느냐 생각하던 차, 서 선생께 이렇게 말씀드리니, 아니란다. 


서 선생이 전한 바에 의하면, 조지훈은 한약을 잘못 써서 갔단다. 이야기인즉슨 조지훈은 아버지가 한의사였다. 그런 까닭에 한약에 대한 믿음이 강했다. 그가 떠날 무렵 건강이 안 좋았던 건 사실이나, "돌아가실 정도는 아니었다"고 한다. 한데 몸이 안 좋은 상태에서 한약을 잘못 복용하는 바람에 그렇게 갔다고 한다. 이로 볼 때 약물 부작용이었던 듯하다.  


그때는 제자들이 술을 마시러 선생 집을 찾아갈 때라, 조지훈 집 역시 그랬단다. 제자들이 술을 사들고 가거나 해서 선생과 같이 마셨으니, 그걸 몸도 좋지 않은 분이 싫다 못 하시고 다 받아주었단다. 그때는 통금이 있을 때라, 술이 다 떨어지고 통금시간이 되니 조지훈이 부인을 시켜 마당에 가서 물을 떠오라 한 다음에 그걸 술처럼 나누어 마시면서 "술도 물이다. 술이라 생각하고 마시자" 하기도 했단다. 


혜화전문학교 재학시절 조지훈. 왼쪽에서 두번째



조지훈의 씻을 수 없는 업적은 고려대 민족연구소 소장 재직 시절, 이 연구소가 이룩한 각종 사업성과물이다. 그의 생애를 훑어보니 그가 이 연구소 소장으로 취임한 것이 1963년이다. 나에겐 민연이라면 조지훈으로 각인한 까닭에 막연히 이 연구소를 동탁 지훈이 만들었느냐 여쭈었더니, 선생은 "그걸 만든 분은 정재각 선생이시고, 민연은 조지훈 선생이 소장이 되시면서 컸다"고 한다. 


국민대 교수로 오래 봉직한 저명한 근현대사 연구자 조동걸 선생은 조지훈과 같은 고향이며, 친척이다. 지훈은 본명이 동탁이라, 같은 東을 돌림자로 쓰는 형제 항렬이다. 이들과 촌수는 멀지만 저명한 국문학도 조동일 선생도 이쪽 출신 한양조씨 명문벌족 출신이다. 생전에 조동걸 선생한테 들으니 그가 처음 상경했을 적에 집안 형님 조지훈 집에 신세를 졌었다고 한다. 이런 인연을 서연호 선생도 기억하고 있었다. 


조지훈 자식 중에 조태열(趙兌烈 1955~) 씨라고 있다. 정통 외교관료로 외교부 제2차관을 역임하고 지금은 주유엔 대한민국 대표부 대사로 재직 중이다. 이 조태열씨는 나랑 직접 인연이 딱 한 번이었으니, 201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가 그것이다. 당시 일본 메이지시대 산업유산의 세계유산 등재 문제로 오죽이나 한일 관계가 시끄러웠는가? 


그런 까닭에 당시 외교부에선 조 차관을 단장으로 하는 대규모 부대가 대회장인 독일 본으로 파견되었던 것인데, 내가 바로 그때 외교부 초청(겉모양은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초청이었다) 형식으로 현지 취재를 하게 되었으며, 그때 며칠 동안 조 차관을 지켜본 적이 있다. 보니 철저한 외교 관료였다. 풍모는 역시 아버지의 그것을 빼다박았다. 


***


어느 야유회에서...오른쪽부터 이한직, 조지훈, 마해송, 최인욱, 최정희, 방기환



1920년 생인 지훈 조동탁이 올해로 탄생 100주년을 맞았다. 


사상으로 볼 것 같으면 우파 성향이 다대하나, 불의와 독재는 거부한 사람이다. 


마흔여덞...요즘 같으면 요절에 가까운 나이게 세상을 등진 지훈은 시인으로서는 그리 대성했다 하기 힘들지만, 이른바 국학연구에 초석을 다진 인물로 대서특필해아 한다. 그의 탄생 100주년을 맞은 기념이 있나 보다. 코로나19 아니었으면 더 풍성한 생일상 받았어야 하는 인물이다. 


조지훈·이범선·김형석…실존 고민한 학병세대 문인들

송고시간 2020-06-08 16:07

이승우 기자

대산문화재단-작가회의, 탄생100주년 문인 11인 기념문학제 18~19일 개최


(2020. 6. 9 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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