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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

서울 사대문 안 지하 4미터의 비밀 (1)

by 초야잠필 2019. 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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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훈 (서울대 체질인류학 및 고병리연구실)


가끔 모임 등에서 내가 뭘 하는지 소개할 때 "미라 연구하는 사람"이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하지만 나는 사실 미라 자체를 연구하는 것이 아니고 내가 관심을 갖는 연구 주제를 파다 보니 미라까지 연구하게 되었다는 편이 옳다.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우리 연구실 관심사는 "옛날 사람들의 건강과 질병에 대한 연구를 과학적 방법에 입각해서 수행하는" 그런 류의 연구다. 미라 연구가 우리 연구실 목적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것을 다른 말로 체질인류학 (physical anthropology), 그리고 고병리학 (paleopathology)이라 하는데 이 분야 자체는 인간 신동훈이라는 사람이 만든 것도 아니고 나름 해당 분야 역사가 백년을 훨씬 넘는다. 


최초에는 그 당시 유럽 전역에 수집 붐이 인 이집트 미라에 대한 연구의 스핀 오프로 고대 이집트 사람들의 건강과 질병상태를 규명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시도되었지만 곧 이어 다양한 시대와 지역에 대한 연구로 점차 확대되어 오늘날에는 고고과학에서 빠질 수 없는 분야의 연구가 되었다.




1970년대 맨체스터 대학의 로잘리 데이비드 (Rosalie David) 박사의 이집트 미라에 대한 조사. 고대 이집트 사람의 건강과 질병상태에 대해서도 많은 자료가 얻어졌다  



이 분야는 의대 기초 연구의 한 가지로 유럽과 미국에는 이런 연구에 종사하는 사람이 꽤 있다. 이런 양반들에 대한 소개는 나중에 혹 기회가 있다면 이야기를 조금 풀어 놓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최근까지 우리 연구실 작업에 대해서는 아래 동영상에 요약되어 있는데 내 영어 발음이 나빠서 알아듣기가 힘들어 죄송할 뿐이다. 금명간 제대로 된 우리말 동영상을 하나 새로 제작할 생각이다.  




Molecular Paleontology / Paleogenomics - Dong Hoon Shin, Seoul National University School of Medicine from Kavli Frontiers of Science on Vimeo.


우리 연구실이 자체적으로 수행한 "고병리학" 연구에 대한 요약 강의. 내가 Kavli Frontiers of Science라는 심포지움에서 발표한 내용을 미국 National Academy of Science가 녹화하여 Vimeo에 올려 놓은 동영상인데 내 나름 우리 연구실 연구를 요약한다고 하긴 했는데 발음이 안좋아서.. 미안할 뿐이다. (하지만 슬라이드만 보면 볼 만 할지도?)   



우리 연구실이 시도하는 연구 기법 중에 고기생충학이라는 것이 있다. 영어로는 paleoparasitology 혹은 archaeoparasitology라고 하는데 고고학 발굴 현장에서 나온 여러가지 시료를 이용하여 과거 사람들이 어떤 질병을 앓았는지를 주로 기생충 연구를 통해 과학적으로 규명하고자 하는 학문이다. 


이 분야 자체는 1970년대 미국과 남미에서 처음 시작되었다. 




고기생충학을 만든 세 사람. 왼쪽부터 미국의 Karl Reinhard, 브라질의 Luiz Fernando Ferreira 및 Aduato Araújo 박사.  

오른쪽 두 분은 이미 세상을 뜨셨고 Reinhard 교수는 아직도 활발히 연구 활동을 하고 있다. 



70년대 일군의 미국과 브라질 고고학자와 기생충학자들이 의기 투합하여 고고학 시료에 대해 의학적으로 확립된 기생충 검사 기법을 적용하여 과거 사람들의 기생충 감염실태를 규명하고자 했던 시도가 바로 이 분야 연구의 시작이다. 


그 후 이 연구 흐름은 일본에도 수입되었는데 (일본 "화장실 고고학"의 기원은 영국 요크대학이다) 이때 일본의 누군가에 의해 "화장실 고고학"이라는 이름을 낳았다 . 


그리고 이 "화장실 고고학"이라는 이름이 재차 우리나라에 다시 수입되었다. 지금도 이 명칭을 사용하는 분이 많은것으로 아는데 사실 내가 틈만 나면 지적하는 것이지만 "화장실 고고학"이라는 이름을 쓰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 외에는 없다. 




1992년. 일본 후지와라쿄 발굴 도중 확인된 화장실을 조사하고 있는 모습.



(사실 "화장실 고고학" 보다는 고기생충학 (paleoparasitology 혹은 archaeoparasitology)라는 명칭이 국제적으로 볼 때 더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명칭이다. 사실 이런 국적 불명의 명칭을 우리가 계속 사용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다를수 있겠지만 나는 일단 이 명칭에 대해서는 앞으로 사용을 재고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발굴현장 지층에서 시료를 채취하기 위해서는 발굴을 수행한 고고학자의 긴밀한 협조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서울 세종로 발굴현장에서. 현 서울문화유산 연구원 박준범 선생과 함께 




고기생충학에서 사용하는 연구 기법은 의과대학 기생충학자들이 사용하는 기법과 완전히 동일하다. 시료를 수화한 후 이를 현미경으로 관찰하며 기생충 감염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다. 


고기생충학에서 이용하는 시료는 몇 가지가 있는데 모두 발굴현장에서 고고학자와 협조하에 얻는 것은 물론이다. 


우리나라를 예로 들자면 미라에서 얻는 분변 (coprolite), 발굴현장의 지층 토양시료 등이 있다. 




우리나라 미라 중 한 분에서 얻어진 수백년된 분변. 이 정도로 잘 보존된 분변이면 탁월하게 보존 된 기생충란이 확인되는 것이 보통이다.



미라 분변 시료는 미라에 대한 인류학적 조사를 수행할 때 내장에서 얻어 조사한다. 우리나라 조선시대 미라는 그 보존상태가 탁월해 내장에 담긴 분변도 놀라울 정도로 보관상태가 좋고 그 안에 남은 기생충란도 탁월하게 보존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만약 미라가 아니라 인골이 무덤에서 발견되는 경우, 골반뼈 위에 유기물이 남아 있다면 그것은 사망자의 내장이 부패하여 남긴 유기물일 가능성이 높으므로 그것을 채취하여 검사에 이용한다. 


마지막으로 발굴현장 지층 토양시료는 아래와 같은 방법 (그림 B) 으로 채취한다. 고고학자가 발굴 현장에서 노출시킨 지층이 몇 세기 것이라고 특정해 주면 그 해당 지층 토양 시료를 우리가 채취하여 사용하는 것이다.  앞에서 우리 연구실 오창석 선생이 방호복을 입고 서 있는 사진을 예고편에서 보았었는데 바로 그 장면이 지층 토양 시료를 채취하기 전의 장면이다. 


무덤에서 발견된 인골 골반위에서 채취하기도 하며 (A), 발굴현장에 노출된 지층 단면에서 채취할 수도 있다 (B). 이렇게 채취된 시료를 기생충 검사 기법으로 검사하면 수백 혹은 수천년 된 기생충란을 찾을 수 있다. 사진은 간흡충란 사진. 물론 요즘 것이 아니고 옛날 기생충란이다. 




이렇게 설명하면 항상 나오는 질문 중 하나가 그런 기생충란은 토양 아무데서나 나오는것은 아닌가라는 질문이다. 


물론 기생충 감염률이 아주 높은 나라에서는 지금도 토양에서 기생충란이 많이 발견된다. 


왜 기생충 감염률이 높으면 토양에서 충란이 많이 나오게 될까?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이 그림은 회충의 "생활사"다. 


"생활사"라는 것이 뭔고 하니 사람이 태어나서 자라고 활발히 활동하다 2세를 낳고 죽는 것 처럼 회충도 그런 일생이 있다. 그런데 사람처럼 큰 변화 없이 일생을 마치는 것이 아니라 회충은 사람 몸속에 들어갔다가 나중에 배출되어 흙속에 들어가는 등 매우 복잡한 "생활사"를 가지고 있다. 


사람에 많이 감염되는 기생충 중에는 "토양매개성 기생충"이란 것이 있는데 회충, 편충 등이 이에 속한다. 

왜 "토양매개성"이라는 이름이 붙었을까? 그 이유는 이 기생충들은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토양속에서 생활해야 하는" 기간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위 그림을 보자. 위쪽 절반은 사람 몸속, 그리고 아래쪽 절반은 토양이 되겠다.

 

이 그림을 보고 회충의 생활사를 다시 말하면, 


(1) 사람 몸속에서 무럭 무럭 자란 회충이 알을 낳으면 이 알은 대변과 함께 몸 밖으로 나가 흙속에서 살게 된다. (아래쪽 절반)


(2) 그러다 일정 단계가 되면 다시 사람 입을 통해서 감염되어 몸 속으로 다시 들어가 성체로 자라게 된다. (위쪽 절반)


회충은 세대가 거듭할 수록 이런 사이클을 무한히 반복하는것이다. 


만약 이 사이클이 어떤 이유에서든지 끊어지게 되면 회충은 다음 세대로 넘어가지 못하며 사람을 감염시킬수 있는 회충란은 토양속에서 발견하기 점점 어려워 질 것이다. 


저개발국 경우를 보자. 이런 나라 사람들은 회충에 많이 감염되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대변을 통해 배출되는 충란 수가 그만큼 많을 수 밖에 없다. 이 막대한 양의 토양속 충란이 사람 입에 다시 들어갈 가능성은 따라서 그만큼 더 많아진다. 흙을 만지고 제대로 안씻은 손을 통해서 감염될 수도 있고 또 다른 방식-음식물을 통해서 입으로 다시 들어갈 수도 있다. 이런 기회를 통해 저개발국 회충 감염률은 좀체로 떨어지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선진국이 되면 상황은 급변한다. 회충 감염률이 낮아지므로 토양안에서도 회충란을 거의 발견할 수 없고 사람들도 회충이 입을 통해 감염될 가능성이 점점 낮아진다. 회충의 "생활사"가 끊어지고 회충 감염률이 급감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가 바로 그렇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이제 선진국 대열에 합류한 국가답게 토양을 검사해도 이제는 회충란이 거의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산업화/근대화가 진행되기 이전이라면 다르다. 이 시기는 사람들사이에 회충 감염률이 높았고 따라서 회충란이 토양에서 발견될 가능성도 더 높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렇다면 19세기 이전 지층을 검사하면 기생충란은 반드시 나올까? 


우리 연구실이 우리나라에서 지금까지 축적한 조사 경험을 보면 그렇지 않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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