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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훈과 함께하는 paleopathology

서울 사대문 안 지하 4미터의 비밀 (2)

신동훈 (서울대 체질인류학 및 고병리연구실)


앞에서 회충·편충을 비롯한 토양매개성 기생충은 사람 사이에 감염률이 높을수록 토양에서 기생충란이 발견 될 가능성은 높아질 수 밖에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가 급격한 산업화·선진화 길을 걷기 이전, 즉 19세기보다 이른 시기 지층에서는 기생충란이 많이 발견될까? 

그래야 할 것 같은데 그렇지는 않았다. 


고고학 발굴 현장 지층 토양 샘플을 얻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녔다.  수가리 패총 2013년. 한국문물연구원 김하나 선생 배려 덕에 시료를 내가 채취할 수 있었다-. 



부여 지역 기생충 시료 채취에 아직도 힘을 실어주시는 고마운 두분. 정훈진 샘. 그리고 심상육 샘. 



샘플링 중인 단국대 김명주 박사. 경주 노동동. 2012년. 신라문화유산연구원. 


2010년대 초반, 나와 우리 연구실 식구들은 전국의 발굴 현장을 몇년간 돌아다니며 기생충 분석용 토양 시료를 노출된 지층에서 채취했다. 

이 작업은 약 3-4년간 지속되었는데 이 당시 우리 연구실과 공동연구를 한 연구자들이 있었으니 그 사람은 바로...



단국대 김명주 박사와 서민 박사. 2009년. 몽골 울란바토르 학회에서. 


단국대 김명주 박사와 서민 박사였다. 

김명주 박사는 해부학 전공자로 서울대 대학원에서 박사를 받은 후 단국대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며, 서 박사는 방송 출연으로 요즘 굉장히 유명해 졌지만 내 의대 입학 동기이기도 하다. 

의대 졸업 후 기생충학을 공부했고 1999년부터 지금까지 줄곧 단국대 기생충학 교실에서 근무한다. 우리 고기생충학 연구가 탄탄한 과학적 토대를 가지게 된 것은 전적으로 서민 박사 덕분이다. 사람들은 서 박사를 쾌활한 반개그맨, 엉뚱한 작가, 이상한 정치 평론가로 기억할지 모르지만 적어도 내게 있어서는 든든한 고기생충학 연구 동반자다. 

이렇게 몇 년을 발굴 현장을 쫒아가며 조사를 한 결과는 무엇이었을까? 


결론은 의외로 우리나라 발굴 현장에서는 기생충란 찾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었다


20세기 이전에 해당하는 발굴장 지층에서는 기생충란이 수두룩하게 관찰되어야 할 것 같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수도 없는 시료를 뒤졌지만 기생충란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아예 확인이 불가능한 것인가? 

그렇지는 않았고 매우 특이한 유적지에서만 옛 기생충란이 집중적으로 발견되었다. 

그곳이 어디인고 하면, 그 시대에 많은 사람들이 집중적으로 모여 살았다고 생각되는 지역이었다. 인구밀도가 높았다고 생각되는 지역은 그렇지 않았다고 생각되는 지역보다 확실히 옛 기생충란이 지층에서 쉽게 발견되었다. 

이런 예를 우리는 부여 지역에 대한 고(古)기생충란 조사에서 여실히 볼 수 있었다. 



부여 쌍북리 지역 발굴 현장 조사. 정훈진 선생께서 샘플링을 도와주었다. 현장 샘플링은 나와 김명주 박사가 진행하였고 현미경 검경은 서민박사가 수행하였다. 부여 시내에서 채취한 시료에서는 거의 전부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많은 기생충란이 발견되었다. 사진의 기생충란 들은 발굴현장 지층에서 발견된 것들로서 회충, 편충란이다. 



부여 시내, 옛날 사비성 안쪽에 해당하는, 아마도 인구 밀도가 엄청나게 높았으리라 생각되던 곳에서는 위에 보듯이 많은 기생충란이 확인되었다. 하지만 부여 시내를 벗어나 옛 백제 수도인 사비성 바깥에 해당하는 지역에서는 기생충란을 발견하기 정말 힘들었다. 

이는 고고학발굴 현장에서 기생충란 밀집도가 당시 그 지역 인구밀도와 밀접히 관련됐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인데, 비단 부여지역 뿐 아니라 고고학적으로 많은 사람이 모여 살아 인구밀도가 상당했을 것이라 추정되는 곳이면 다른 지역에서도 우리는 고기생충란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나중에 말할 기회를 따로 갖게 될 것 같다. (계속) 



사비성 안쪽에서는 기생충란이 많이 발견되었지만 바깥으로 벗어나면 거의 충란을 찾기 어려웠다. "a"가 사비성 지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