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본문 바로가기

유춘동의 도서문화와 세책

세책 고소설 독자를 실증으로 밝혀낸 정명기(鄭明基)

유춘동 선문대 역사콘텐츠학과 교수



정명기(鄭明基, 1955∼2018). 선생은 나손의 제자로서, 야담(野談) 연구 개척자이자 세책(貰冊) 고소설 연구 개척자로 알려졌다. 그는 철저한 자료 조사 및 수집, 자료 입력과 활용에서 학계에서는 거의 독보적인 인물이었다. 



고 정명기



그의 선도적인 연구는 여러 가지가 있다. 세책과 관련된 중요한 성과를 말하면 다음과 같다. 

 


 - 고소설 후기(後記) 성격고(1979)

 - 세책 필사본 고소설에 대한 서설적 이해(2001)

 - 세책본 소설의 유통 양상: 동양문고 소장 세책본 소설에 나타난 세책장부를 중심으로(2003)

 - 세책본 소설에 대한 새 자료의 성격 연구(2005)





소설을 읽은 조선시대 독자들은 책 여백에다가 자신의 소회를 적은 다양한 필사기를 남겼다. 1979년 발표한 이 글은 이에 대한 체계적인 정리이자, 이 자료들의 의미를 학계에서 어떻게 부여할 것인가를 밝힌 것이다. 보다시피 석사과정 2학기에 쓴 글이라는 점에서 놀랍다. 


그의 논문 중에서 압권은 “세책본 소설의 유통 양상: 동양문고 소장 세책본 소설에 나타난 세책장부를 중심으로”. 


세책은 여러 사람이 빌려보는 특성상, 파손 위험이 컸다. 따라서 그 위험성을 줄이고자 여러 가지 방안을 고려했으니, 폐지로 책을 두껍게 만든 까닭도 그 때문이었다. 






이때 폐지는 용도 폐기된 여러 종이를 썼는데, 이 종이는 대체로 세책점에서 운용하던 장부(帳簿)나 훼손된 세책본이었다. 언젠가세책점에서 대여한 세책 장부가 언젠가는 온전한 형태로 발견될지 모르겠지만 현재로서는 남은 장부는 없고 거의 이런 모습으로, 조각조각 상태로 책 이면에 남았을 뿐이다. 



배접지로 쓴 세책장부



일본 동양문고에서 이 자료를 찾기 위해 자료를 뒤적뒤적 거리고, 찾아내면 손으로 하나하나 베껴서 다시 정리하고 작성한 논문이 바로 “세책본 소설의 유통 양상: 동양문고 소장 세책본 소설에 나타난 세책장부를 중심으로”다.


이 논문은 세책본을 향한 시각을 180도로 바꾼 중요한 성과였다. 기존에는 여성독자가 주로 세책, 세책점을 이용했다고 했지만, 자료 확인 결과 이와는 반대로 남성독자가 많았다는 새로운 사실을 밝혔고, 책을 대여하기 위해 담보한 다양한 물건, 세책 대여 기간, 1인당 대출 책수, 최다 대여자와 같은 세책 대여점 실제 운영 상황을 실증적으로 보여주었다. 

 

정명기 선생은 이러한 결과를 단행본으로 준비하는 과정에서, 2018년 3월, 갑자기 영면하고 말았다. 세책 연구 활성화를 위해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공부한 선생의 갑작스런 죽음이 지금도 믿기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선생은 논문이나 책이 나오면 꼭 전화를 주셨다. “유선생...”으로 시작하던 선생 목소리를 다시 듣고 싶다. 



**** 편집자 김태식 補 **** 



고 정명기



정명기(鄭明基)가 연합뉴스 DB에서 검색된다. 영문은 CHUNG Myung Kee라 적는다.  

1955년 03월 29일(양력) 서울 태생이며, 원광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교수로 나온다. 


1979년 연세대 국어국문학과졸

1981년 同대학원 국어국문학과졸

1989년 문학박사(연세대)


이며, 


1982년 원광대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조교수ㆍ부교수ㆍ교수(현)


라 했다. 그의 타계가 전해지지 않은 듯, 이 글을 쓰는 오늘 현재 생존 현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