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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S & MISCELLANIES

세한도에서 생각하는 문화재 ‘원형’

by taeshik.kim 2018. 4.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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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한도와 그 추사 발문>

 

아래는 《서울아트가이드 Seoul Art Guide》 2018. 04(통권 196호) 48쪽에 실린 기고문이다. 지면 혹은 교정 단계에서 일부 덜어내기나 교정이 있을 수는 있지만, 전체 대의에는 변함이 없다. 이 문제는 내가 더러 말한 적이 있으나, 이 자세는 우리 문화재 현장에서 이 문제가 교정되지 않는 한 언제나 문제삼으려 한다. 

 

 

 

세한도에서 생각하는 문화재 ‘원형’ 

                                                                 김태식 연합뉴스 기자 

 

세한도(歲寒圖)는 국보(180호) 지정 명칭이 ‘김정희필 세한도(金正喜筆歲寒圖)’다. 1974년 12월 31일, 국보 고시를 할 적에 저런 명패를 부여했다. 글자 그대로는 김정희가 글을 붙인 세한 그림이라는 뜻이다. 언뜻 그림과 글씨 주체가 다른 듯한 인상을 준다. 다른 사람 그림에다 김정희가 발문(跋文)을 써준 듯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림도, 글씨도 추사 작품이다. 

 

제목처럼 그림 구도를 보면, 집 한 채를 중심으로 그 좌우에 소나무와 잣나무를 대칭으로 배치했다. 수묵화 특유의 여백이 많은 가운데 오른쪽 위에다가 ‘세한도’라는 제목과 함께 ‘우선시상(藕船是賞)’과 ‘완당(阮堂)’이라 쓰고, 관지(款識)라는 도장을 찍어놓았다. 우선(藕船)은 추사가 이 그림과 글씨를 만들어 선물로 준 이상적(李尙迪·1804~1865)의 호이고, 완당은 말할 것도 없이 그 자신의 당호다. 

 

<세한도의 발문들>

 

이 그림을 문화재청 소개 글에서는 “거칠고 메마른 붓질을 통하여 한 채의 집과 고목이 풍기는 스산한 분위기가 추운 겨울의 분위기를 맑고 청절하게 표현하고 있다. 마른 붓질과 묵의 농담, 간결한 구성 등은 지조 높은 작가의 내면세계를 보여 주고 있다”고 평가한다. 글쎄, 그런지 아니 그런지, 나는 솔직히 모르겠다. 한데 그에 등장하는 집을 보면, 사람이 일상으로 거주하는 당대 집과는 거리가 좀 있다. 초가도 아니요, 기와집도 아니다. 맛배지붕 형식이지만, 창고 같은 느낌도 난다.  

 

각종 자료마다 수치가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문화재청 공식 자료에는 그림은 규격이 가로 69.2㎝, 세로 23㎝다. 그에 붙은 추사 발문은 세로 크기는 같고 가로 38㎝가량이다. 그러니 그림과 발문을 합친 ‘김정희필 세한도’는 전체 크기가 세로 23㎝에 가로(길이) 107㎝ 남짓하다. 이를 국보로 지정한 것이다. 

 

이는 개인 소유다. 보관 관리 문제로 최근 국립중앙박물관에 관리가 위탁됐는데, 지금도 이 상태인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실물이 가끔 전시회에 등장하기도 하는데, 이 몸체만이 아니라, 세한도에는 김정희 당대 중국어 전문 통역사인 이상적이 중국에 가서 중국 문인 16명에게서 받은 발문에다가, 나중에 오세창과 이시영, 그리고 정인보가 붙인 감상평까지 ‘덕지덕지’ 붙어있다. 그 전체를 펼치면 총길이가 장장 10m를 넘는다. 

 

 

세한도란 무엇인가? 작금 우리네 문화재 관념에 의하면, 세한도라는 그림과 그에 붙인 김정희 발문만이 ‘원형’이고 그에 덕지덕지 붙은 후인들 글은 원형 훼손이니 떼어버려야 한다. 하지만덕지덕지한 저들 글이야말로 세한도가 유전한 역사이며, 시대에 따라 세한도가 다르게 걸친 옷들이며, 그것을 시대가 소비한 고스라한 증언이요 흔적이다. 그 뭉치 전체가 세한도지, 추사가 애초에 그려 제자한테 던져주었다는 종이조각 달랑 한 장과 그에 추사가 붙인 글 한 편만이 세한도가 아닌 것이다. 

 

작금 문화재 현장에 난무하는 ‘문화재 원형’은 근본적인 재성찰이 필요하다. 원형에 집착하는 지금의 문화재 정책이 작금 어떤 부작용을 낳는지도 새삼 돌아보아야 한다. 국보 지정 이후 세한도는 더는 ‘꼬리’를 달지 못하게 되었다. 그것이 원형 훼손이라 해서 그에 또 다른 발문을 붙이는 일은 불가능해졌다. 국보로 지정된 순간, 더는 시대 변화와 유행을 반영하지 못하고 그 상태로 변태(變態)를 멈추고 말았다. 박제화하고 만 것이다. 이젠 세한도에 새 생명을 불어넣을 때가 된 듯하다. 

 

 

김태식. 연합뉴스 기자. 연세대 영어영문학과. 『풍납토성 500년 백제를 깨우다』, 『화랑세기 또 하나의 신라』, 『직설 무령왕릉』, 『부여 능산리 고분·사지, 지난 100년의 일기』 등 지음. 연합뉴스 문화재 전문기자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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