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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산 두 수(秋山二首) 중 둘째


[宋] 양만리(楊萬里·1127~1206) / 김영문 選譯評 


창덕궁 속 가을



오구나무는 평소에

노련한 염색공이라


서둘러 검푸른 색을

선홍빛으로 바꿔놓네


어린 단풍 하루 밤새

하늘 술을 훔쳐 먹고


취한 모습 가려 달라고

고송(孤松)에 간청하네


烏桕平生老染工, 錯將鐵皂作猩紅. 小楓一夜偷天酒, 却倩孤松掩醉容.


어릴 적 가을 시골 앞산 뒷산에서 가장 붉게 물드는 나무는 뿔나무와 옻나무였다. 뿔나무의 표준말은 붉나무인데 나무 이름 그대로 가을 산을 붉게 장식하는 대표적인 가을나무다. 옻나무 단풍도 뿔나무에 못지 않다. 이 두 나무는 생긴 모양도 비슷해서 초보자는 구분하기 힘들 정도다. 선홍빛에서 검붉은색으로 물드는 옻나무와 뿔나무 단풍은 가을산을 불태우는 주인공이지만 단풍나무나 고로쇠나무처럼 크고 높게 자라지 않아 사람들의 눈길을 강하게 끌지 않는다. 우리나라 전라도나 제주도 등 남부 지역에서 잘 자라는 오구나무(조구나무)도 가을 빛이 붉고 예쁜 나무다. 오구나무의 수액은 양초와 비누 원료로 쓰인다. 물론 당단풍, 홍단풍, 꽃단풍, 신나무, 고로쇠나무 등 단풍나무가 붉은 가을 산을 대표하는 수목임을 부정할 수 없다. 이 시는 이런 다양한 가을나무 중에서도 오구나무와 어린 단풍나무를 불러왔다. 동시의 분위기가 매우 강하다. 시골에서 자란 분들은 아버지 심부름으로 술도가에서 술을 받아오다가 주전자 꼭지에 입을 대고 막걸리를 마셔본 경험들이 있으시리라. 처음 맛본 들쩍지근하면서도 씁쓸한 막걸리의 미묘한 맛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심지어 집에 와서 대접에 막걸리를 붓고 사까리(사카린)를 타서 마시기도 했다. 이 시의 어린 단풍나무도 하늘의 술을 훔쳐 마시고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고 했다. 지금 온 산천은 천주(天酒)를 마신 단풍나무의 술주정판이 벌어지는 현장인 셈이다. 얼마나 많이 마셨으면 날이 새도 깨지 않고 저 붉은 얼굴을 부끄럼 없이 자랑하고 있을까? 그 옆의 푸른 소나무는 그런 어린 단풍을 보듬어주고 쓰다듬어주는 우리 어릴 적 아버지와 같다. 아니 푸른 소나무조차 가을 산을 오색으로 물들이는 작은 구성원일 뿐이다. 천주(天酒)의 술기운이 온 거리의 가로수까지 물들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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