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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안동 원이 엄마가 미라로 출현한 그때를 증언하는 보도

인도고고학 조사 경험담을 이곳에서 연재 중인 서울대 의대 신동훈 교수가 내 요청에 따라 그 스핀오프로 안동 원이 엄마 미라에 얽힌 일화 하나는 엮었으니, 신 교수 역시 그랬듯이 나 역시 이 유명한 미라가 출현한 시점에서는 그와 직접 인연은 없었다. 


안동 원이 엄마 관련 문성이씨 미라. 연합DB



내가 우리 공장 문화부로 배치되어, 그에서 문화재를 전담하기 시작한 시점은 1998년 12월 1일이었으니, 아쉽게도 원이 엄마 미라는 그보다 불과 8달 먼저 발견되었던 것이다. 이 미라는 발굴 당시보다는 발굴 이후 전개된 일련의 사태 전개 과정에서 더욱 유명세를 타게 되었으니, 그때마다 어찌된 셈인지, 나랑은 이렇다 할 인연이 없어 흘러가고 말았다. 


그렇다면 이 미라는 어떻게 출현했던가? 우리 공장 DB를 검색해 봤더니 아래 관련 기사가 걸린다. 


4백50년전 조선중기 여자 미라 발견 

1998.04.08 00:26:54

(안동=연합) 林尙炫기자= 경북 안동시 택지개발조성지역에서 4백50여년전 조선중기시대 여자의 시신과 의류 30여점이 원형 그대로 발굴돼 학계의 관심을 모으고있다.

7일 오후 3시께 경북 안동시 정상동 택지개발지구내 야산에서 고성 李씨 종손인 李도형씨(57)가 조선 선조 때 의료기관인 전의감에서 벼슬을 지낸 李命正과 부인인 일산 文씨 묘를 이장하는 과정에서 文씨의 시신이 썩지 않고 원형 그대로 나왔다.


안동 원이 엄마 짚신과 먼저 죽은 남편한테 쓴 한글편지. 남편 무덤에서 발견됐다.


文씨 부인은 1백45㎝가량의 키에 피부가 전혀 부패되지 않은 채 머리카락과 속눈썹, 손톱, 발톱이 그대로 있고 복장은 위에 저고리를 비롯한 상의 8점과 치마등 하의 8점 등 16점을 입고 있었으며 관안에 염주알과 접부채, 옷가지 10여점도 함께 들어 있었다.

그러나 文씨의 관과 6㎝ 떨어져 합장된 李命正의 시신은 유골 일부만 남고 관도 완전히 부패됐다.

자손들은 이날 관속에서 나온 옷과 유물을 안동대 박물관에 기증하고 시신은 8일 이장하기 위해 염을 한 채 모시고 있다.

李命正은 조선시대 의료행정과 의학교육을 관장하던 관청인 전의감(典醫監)에서 벼슬을 지낸 사람으로 안동지역 고성 李씨 입향조로 조선조 때 개성유수를 지낸 李宏의 손자로 알려져 있다.

안동대 박물관 權斗奎 학예연구사(40)는 "시신에서 소독약 냄새가 나고 주머니에 향료가 들어있는 등 시신의 방부처리가 비교적 잘돼 있어 조선시대 의학수준을연구하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이며 수습된 옷들도 조선중기 여성들의 복식사를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고 말했다. 

(끝)


안동 원이 엄마가 먼저 죽은 남편한테 쓴 한글편지 언간彦簡. 남편 무덤에서 발견됐다. 그 내용이 절절하기 짝이 없어 로미오와 줄리엣 판으로 격상하기도 한다.



이 무렵 안동 지역 미라 출현은 이뿐이다. 한데 이 미라가 그 유명한 '원이 엄마'는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관하지도 않다. 이에서 말하는 일선문씨는 원이 엄마가 아니고, 원이 엄마 남편의 할머니인 까닭이다.  아무래도 원이 엄마 미라 출현은 언론에서는 놓친 듯하다. 적어도 우리 공장에서는 그런 듯하다. 



문화상품으로 다시 태어나는 원이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