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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도에서


한시, 계절의 노래(191)


추일 잡영 여덟 수(秋日雜詠八首) 중 넷째


[宋] 육유(陸游) / 김영문 選譯評 


잎 아래 고운 새는

불러도 오지 않고


바람 속 작은 나비

시든 잡초에 점을 찍네


집 남쪽 집 북쪽엔

가을빛이 하 좋아라


여기저기 모든 곳이

한 폭 그림이네


葉底珍禽不受呼, 弄風小蝶點殘蕪. 舍南舍北秋光好, 到處皆成一畫圖. 

 

드라마 《미스터션샤인》에서 김희성은 봄밤을 즐기며 이렇게 중얼거렸다. “오늘은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여기 다 있구려.... 난 이리 무용한 것들을 좋아하오.... 봄, 꽃, 달....” 무용(無用)한 것으로 말하자면 봄보다는 가을에 훨씬 많다. 맑은 하늘, 붉은 잎, 하얀 억새, 스산한 바람, 가녀린 코스모스 여기에다 하늘색 쑥부쟁이, 애절한 풀벌레, 황금빛 국화, 투명한 햇볕, 찬란한 노을 등등 이루 다 헤아릴 수 없다. 이 시에 묘사된 고운 새, 바람, 작은 나비, 시든 잡초, 가을 빛, 한 폭의 그림 등등도 마찬가지다. 이런 것들은 죄다 쓸모가 없다. 돈이 되는 것도 아니고, 밥이 되지도 않는다. 무기로 쓸 수도 없고, 군사로 부릴 수도 없다. 하지만 이 쓸모 없는 것들이 없는 세상을 생각해보라. 그런 세상을 상상할 수 있을까? 문학, 예술, 미(美)도 이와 같다. 이런 것들은 인간의 감정과 정서에 직접 작용할 뿐이다. 이 세상 모든 것이 문학예술의 제재와 매개가 될 수 있다. 이백이 좋다 해서 두보를 깎아내릴 필요는 없으며, 백거이가 마음에 든다고 이상은을 폄하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문학적 깊이와 수준에 도달했는가 여부다. 1920년대 중국 혁명문학론자들은 루쉰을 ‘낙오된 유한계급에 불과하다’고 하면서 그의 문학에 선전성이 부족하다고 매도했다. 그러자 루쉰은 이렇게 갈파했다. “모든 꽃은 색깔이 있지만, 모든 색깔이 꽃인 것은 아니다. 모든 문학은 선전이지만, 모든 선전이 문학인 것은 아니다.” 나는 가을이 좋다. 문학이 좋다. 문학예술의 극치에 이른 저 가을빛 선전선동이 좋다. 주위의 산천초목을 모두 미(美)의 경지로 이끄는 가을의 무용지용(無用之用)이 너무너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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