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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현장

애물단지 토기를 어찌 전시할 것인가? 그 돌파를 위한 몸부림

by taeshik.kim 2018. 1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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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구장창 밝혔듯이 나는 토기土器라는 말 자체를 경멸한다.

한국 고고학이나 한국미술사, 특히 도자사학계에 통용하는 토기는 그 명칭부터가 불합리하기 짝이 없거니와, 첫째, 이 용어가 그네들이 말하는 그릇만을 지칭할 수는 없고, 둘째, 그것이 거의 필연적으로 도기陶器에 대한 대칭으로 쓰는 불합리성 때문이다. 

토기란 흙으로 빚어만든 기물 일반이다. 이에서 그 기물을 그릇에만 한정한다면야 문제가 없겠지만, 器가 그에 국한하느냐 하면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깍지라, 저네들이 토기와 구별하고자 하는 유약 바름 기물 중 그릇류인 도자기 역시 토기 일종임이 분명하거니와, 이런 불합리가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기와는? 벽돌을 토기 아니란 말인가? 

국립경주박물관 황남대총 전시


용어 문제는 일단 이리 정리하고, 관건은 이 토기가 고고학도 미술사학도들한테는 신주단지이면서 애물단지라,  고고학은 실은 그릇 고고학 그릇 미술사(도자사)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중요한 위치를 점한다.

그릇없이 인간이 살 수는 없을 테니깐, 더불어 실제 발굴성과를 봐도 가장 분량도 많도, 이처럼 시대 변화를 민감히 반영하는 기물도 드문 까닭이다. 

토기가 중요한 것과 그것이 전부인가는 별개 문제다.

하지만, 저 두 학문에서 주로 출발선을 삼는 박물관계 혹은 전시업계가 저들 두 학문에서 분파하지 못하고, 시종으로 그에 종속되는 바람에 박물관 전시관이 온통 토기 천지인 개떡같은 공간, 그릇가게로 둔갑하는 일이 허다한 까닭이라, 이 둘이 착종해서, 고고학 혹은 도자사가 곧 박물관이라고 착각하는 자들이 주로 봉직하는 자들이 꾸리고 운영하는 대학박물관을 가 보면, 물론 곳에 따른 차이는 적지은 않으나, 고고학으로 큰 대학박물관은 박물관이 아니라 실은 그릇가게, 찬장 진열장에 지나지 않는다. 

그릇이 중요한 것과 그것만, 혹은 그것 중심으로 전시공간을 꾸며야 하는가는 전연 별개다. 

그것이 저들 학문에서 중요할지 모르나, 관람객들이 요구하는 것은 그릇가게가 아니다. 이 괴리를 소멸하고, 붕파해야 하는 시점이다.

박물관 전시관을 토기만 잔뜩 늘여놓은 그릇가게여서는 아니 되는 시대에 진입한 것이라, 이를 위함 몸부림이 적지 않게 일어나니, 앞서 말한 고고학 중심 대학박물관 중에서도 적지 않은 변화의 몸부림이 보인다. 

저 절대의 양을 자랑하는 저들 토기를 어찌 보여줄 것인가? 관람객들이 질려버리지 않게 그것을 때로는 미적 대상으로까지 감상할 만한 여지는 없느냐 하는 고통의 소산과 관련해, 나는 두 군데 지방 국립박물관을 소개하고자 한다. 

하나는 국립춘천박물관이요 다른 하나는 그제 소개한 국립진주박물관이다.

이들 국립지방박물관 사정 열악하기 짝이 없다. 모든 돈, 모든 인력 중앙집권이라, 서울에만 쏟아붓는다.

그런 가운데서도 저들 지방박물관이 근자 연차로 상설전시실을 개편 중이거니와, 그 일환으로 저 두 박물관 역시 근자 새로운 모습으로 단장했다. 

먼저 춘천박물관을 본다. 


춘천 일대를 관통하는 북한강 지류 일대는 토기 공화국이다. 특히 초기 철기시대 이래 수백년에 걸친 이른바 중도식 무문토기 본고장이라, 강변 충적대지만 팠다 하면 저런 토기가 무지막지 쏟아진다. 

그렇다면 이를 어찌할 것인가? 

때려붓기 전시를 도입했다. 


저 무수한 토기에 봉착한 춘천박물관이 그것을 타개하려 생각한 전시방식은 실로 간단해서 쏟아부어버렸다. 

무슨 씨잘데기 같은 말이 필요한가?

그 개별로는 전연 빛나지 않는 투박하기만 한 중도식 무문토기들이 떼창을 하니, 빛이 난다. 

춘천박물관보다 늦게 리모델링을 마친 진주박물관은 저에서 한 발 더 나갔다. 장점이 있다. 


여긴 춘천박물관은 한발 더 뛰어넘겠다 해서였는지, 바닥에서 벽면으로 치고 나갔다. 

토기란 무엇인가?

그릇이다.

그릇은 어디에 놓아야 하는가?

찬장이다. 

그래서 벽면 찬장에다가 잔뜩 갖다 넣었다. 아마 이 전시를 기획한 관장이나 담당 학예사는 집에서 마누라한테 설겆이 안한다고 쿠사리찐밥 단단히 먹은 모양이라, 그에서 착안했을 것이다. 

"그래, 마누라한테 오늘 아침에도 얻어터졌단 말이지?
그릇을 닦아만 놓으면 어캐?
찬장에 쟁여 넣어야 할 거 아냐?"

그 카랑카랑한 마누라 소리를 상기하고는 그래, 이 방식대로 하자 해서 그리 갔을 것이다. 


만들어 놓고 보니 그럴 듯했다. 마누라를 불렀다. 

"마누라, 보시오. 집에서도 못한 걸 내가 내 직장에서 했소."

토기 전시가 새로운 시대를 향해 달리는 중이다. 

혹 기회 닿으면, 이화여대박물관 도자기 전시기법도 소개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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