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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sWho in Ancient Korea

연신(燕信)

by taeshik.kim 2018. 3.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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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년 미상. 백제인. 삼근왕 때 은솔로 있다가 동왕 2년(478)에 좌평 해구와 함께 대두성을 근거지로 모반을 일으켰다가 토벌되고 그 자신은 고구려로 도망쳤다.


삼국사기 권 제26(백제본기 제4) 삼근왕본기 : 2년(478) 봄에 좌평 해구가 은솔 연신(燕信)과 더불어 무리를 모아 대두성(大豆城)을 근거로 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왕은 좌평 진남(眞男)에게 명령하여 군사 2천 명으로 토벌하게 하였으나 이기지 못하였다. [왕은] 다시 덕솔(德率) 진로(眞老)에게 명령하여 정예 군사 500명을 거느리고 해구를 공격하여 죽였다. 연신이 고구려로 달아나자 그 처자를 잡아다가 웅진 저자[市]에서 목을 베었다. 논한다. 춘추(春秋)의 법에 임금이 시해(弑害)를 당하였는데도 역적을 토벌하지 아니하면 이를 깊이 책망하여 신하[臣子]된 사람이 없다고 하였다. 해구가 문주를 시해하자 그 아들 삼근(三斤)이 왕위를 이었는데도 그를 능히 죽이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또 그에게 나라의 정사를 맡겼다가 한 성에 근거하여 반란을 일으킴에 이른 연후에야 두 번이나 큰 군사를 일으켜서 이겼다. 이른바 『서리를 밟으면서도 경계하지 않으면 굳은 얼음을 만들게 되고, 반짝거리는 불똥을 끄지 않으면 활활 타오르는 불꽃이 되는 것』이니 그 말미암는 바는 점차적인 것이다. 당나라 헌종(憲宗)이 시해되었으나 3세(世) 뒤에야 겨우 그 역적을 죽였다. 하물며 바다 모퉁이의 궁벽한 곳에 있는 삼근과 같은 어린아이야 또한 어찌 족히 말할 나위가 있으랴! 3월 초하루 기유에 일식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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