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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sWho in Ancient Korea

을불(乙弗)

by taeshik.kim 2018. 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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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제16대 미천왕(美川王)의 이름. 우불(憂弗)이라 하기도 했다.

삼국사기 권 제17(고구려본기 제5) 봉상왕본기 : 2년 9월에 왕은 그 아우 돌고(咄固)가 배반할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하여 자살케 했다. 국인들은 돌고에게 죄가 없었으므로 애통해 했다. 돌고의 아들 을불(乙弗)은 들판으로 달아났다. …7년(298) 11월에 왕이 사람을 시켜 을불을 찾아 죽이려 하였으나 못했다. …9년(300) 봄 정월에 지진이 일어났다. 2월부터 가을 7월까지 비가 내리지 않아 흉년이 들자 백성들이 서로 잡아먹었다. 8월에 왕은 나라 안의 남녀 15살 이상인 자들을 징발해 궁실을 수리하니, 백성들이 먹을 것이 떨어지고 일에 지쳐서 그 때문에 도망쳐 흩어졌다. 창조리가 간했다. “재난이 거듭 닥쳐 곡식이 자라지 않아서 백성들은 살 곳을 잃어 버려, 장정들이 사방으로 흩어지고 노인과 어린 아이가 구덩이에서 뒹구니, 지금은 진실로 하늘을 두려워하고 백성을 염려하며, 삼가 두려워하고 수양하며 반성해야 할 때입니다. 대왕께서 일찍이 이것을 생각하지 않고 굶주린 백성들을 몰아 토목 일로 고달프게 하는 것은 백성들의 부모된 뜻에 매우 어긋나는 것입니다. 하물며 이웃에 강하고 굳센 적이 있는데, 만약 [그들이] 우리가 피폐한 틈을 타서 쳐들어 온다면 사직과 백성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원컨대 대왕께서는 깊이 헤아리십시오”. 왕은 화내며 말했. “임금이란 백성들이 우러러 보는 분이다. 궁실이 웅장하고 화려하지 않으면 위엄을 보일 수 없다. 지금 국상은 아마 과인을 비방하여 백성들의 칭찬을 가로채려고 하는구나.” 조리가 말했다. “임금이 백성을 사랑하지 않으면 어질지 못한 것이고, 신하가 임금에게 간하지 않으면 충성된 것이 아닙니다. 저는 국상의 자리를 잠시 채우고 있으니 감히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찌 감히 칭찬을 가로채겠습니까?” 왕은 웃으며 “국상은 백성을 위하여 죽겠느냐? 다시는 말하지 않기 바란다.”고 하였다. 창조리는 왕이 고치지 못할 것을 알고, 또 해가  미칠까 두려워, 물러나와서 여러 신하와 모의해 왕을 폐하고, 을불을 맞이해 왕으로 삼았다.

삼국사기 권 제17(고구려본기 제5) 미천왕본기 : 미천왕(美川王)<호양왕(好壤王)이라고도 한다>은 이름이 을불(乙弗)<우불(憂弗)이라고도 한다>이며 서천왕 아들인 고추가(古鄒加) 돌고(咄固) 아들이다. 앞서 봉상왕이 아우 돌고가 배반할 마음이 있다 의심해서 그를 죽이니, 아들 을불은 살해당할 것이 두려워 도망쳤다. 처음에는 수실촌(水室村) 사람 음모(陰牟)의 집에 가서 고용살이를 했는데, 음모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지 못하고 일을 매우 고되게 시켰다. 그 집 곁 늪에서 개구리가 울면, 을불에게 버밤에 기와조각과 돌을 던져 그 소리를 못내게 하는가 하면, 낮에는 나무를 해오라 독촉함으로써 잠시도 쉬지 못하게 했다. 괴로움을 이기지 못하고 일년만에 그 집을 떠나 동촌(東村) 사람 재모(再牟)와 함께 소금장사를 했다. 배를 타고 압록에 이르러 소금을 내려 놓고 강 동쪽 사수촌(思收村) 사람 집에서 기숙했다. 그 집의 할멈이 소금을 청하므로 한 말쯤 주고, 다시 청하자 주지 않았더니, 그 할멈이 원망하며 성을 내며 소금 속에 몰래 신을 넣어 두었다. 을불이 알지 못하고 짐을 지고 길을 떠났는데, 할멈이 쫓아와 신을 찾아내어서 을불이 신을 숨겼다고 꾸며 압록재(鴨-宰)에게 고소했다. 압록재는 신 값으로 소금을 빼앗아 할멈에게 주고 볼기를 때린 다음 놓아 주었다. 이리하여 얼굴이 야위고 옷이 남루해 사람들이 보고도 그가 왕손인 줄 알지 못했다. 이 때 국상 창조리가 장차 왕을 폐하려 먼저 북부의 조불(祖弗)과 동부의 소우(蕭友) 등을 보내 산과 들로 을불을 찾게 하니 비류하 가에 이르렀을 때 한 장부가 배 위에 있음을 발견했다. 용모 비록 초췌하나 몸가짐이 보통사람과 달랐다. 소우 등은 이 사람이 을불이라 짐작하고 나아가 절하며 말했다. “지금 국왕이 무도하니 국상이 여러 신하와 함께 왕을 폐할 것을 몰래 꾀하고 있습니다. 왕손께서는 행실이 검소하고 인자하시며 사람들을 사랑하셨으므로 선왕의 업을 이을 수 있다 해서 저희들을 보내 맞이하게 했습니다”. 을불이 믿지 못하고 “나는 야인이지 왕손이 아닙니다. 다시 찾아보십시오”라고 했다. 소우 등이 말했다. “지금 임금은 인심을 잃은 지 오래라 나라의 주인이 될 수 없으므로, 여러 신하가 왕손을 매우 간절히 바라고 있으니 청컨대 의심하지 마십시오”. 마침내 받들어 모시고 돌아왔다. 조리가 기뻐하며 조맥(鳥陌) 남쪽 집에 모셔두고 사람들이 알지 못하게 했다.

삼국유사 권 제1 왕력 : 제16대 미천왕(美川王)은 호양(好攘)이라고도 한다. 이름은 을불(乙弗)인데 우불(憂弗)이라고도 한다. 경신년에 즉위해 31년을 다스렸다.

☞미천왕(美川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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