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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먼 시대 이야기이긴 하나, 1996년 9월 한국마사회가 당시 과천 서울경마장 주로를 달리던 경주마 1천300여 마리를 대상으로 계절별 체중 변화에 대한 조사 결과를 발표한 적이 있다. 그 결과 더러브렛종 경주마가 매년 9~11월 중 평균 체중이 6.3kg가량 더 늘어난 것을 비롯해 전체 경주마가 가을철 체중 증가세가 뚜렷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국산 경주마는 가을철에 살찌는 경향이 더욱 뚜렷해 호주, 뉴질랜드산보다  평균 0.3kg가량 더 몸무게가 불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비단 경주마뿐만 아니라 말을 비롯한 동물이 가을에 살이 더 찌는 현상은 본능적으로 겨울철에 건초 부족 등으로 먹이를 구하기 힘든 상황에서 미리 체내에 에너지를 비축하고자 하는 데다 특히 가을철에 성장호르몬 분비가 촉진되는 점이 주된 원인으로 분석됐다. 흔히 가을을 하늘이 높고 말이 살찐다 해서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이라  하거니와 하늘이 더 높아지는 지는 모르겠으나 말이 살찐다는 속설은 참말인 셈이다. 


몽골고원



술만 마시면 시가 절로 나왔다던 중국 최대 시인 이태백(706~762). 그를 흔히  남이야 굶어죽든 얼어죽든 저 혼자만 부어라 마셔라 흥청대던 이기주의 시인의 대표쯤으로 알지만 사실 이태백만큼 서민들의 애환을 잘 읊은 시인은 드물다. 태백은 특히 그칠 줄 모르는 전쟁에 따라 민중이 겪는 고통을 잘 알았다. 그의 4편 연작시인 자야오가(子夜吳歌) 중 제3편을 보자.


長安一片月

萬戶擣衣聲

秋風吹不盡

總是玉關情

何日平胡虜

良人罷遠征


장안(長安)에 조각달 걸렸는데  

집집마다 다듬이질 하는 소리 

가을바람 불어 그치지 않으니 

이는 모두 옥관(玉關)의 시름

언제나 저  오랑캐 쳐부수고

님께선 먼 원정 마치실꼬  


장안은 당나라 서울이고 옥관은 감숙성에서 신장성으로 가는 군사 관문. 이태백은 이 시를 통해 전쟁에 나간 남편을 기다리며 밤늦도록 다듬잇소리를 내는 여인네 입을 빌어 그들의 고통을 노래하고 있다. 계절적 배경이 가을이다. 그의 다른 시 중에 새하곡(塞下曲)이 있는데 새(塞)란 말할 것도 없이 변방이다.  연작시 5편 중 제2편 역시 계절 배경이 가을인데 이렇다. 


天兵下北荒

胡馬欲南飮

橫戈從百戰

直爲銜恩心

握雪海上飡

拂沙隴頭寢

何當破月氏

然後方高枕


천명 받은 군대는 북쪽 벌판으로 치달리는데 

오랑캐 말은 남쪽으로 달려 물 마시려 하네 

창을 비껴 들고 온갖 전투에 임하는 까닭은 

바로 성은(聖恩)을 머금었기 때문이라네 

눈을 움켜쥐곤 청해에서 밥해 먹고 

모래 툴툴 털고 농산에서 잠을 자네

언제쯤 월지 맞아 깨뜨리고

그런 다음 높은 베개 베고 자려나 


천자가 이끄는 당나라 군사는 북쪽으로 말을 몰아 유목민들을 몰아내고자  하는데 북쪽 오랑캐 말들은 남쪽, 즉 중국으로 내달리고자 한다는 이태백의 바로 이  시에 우리가 낭만적으로 알고 있는 천고마비 그 본래의 뜻이 숨어 있다. 천고마비는 그 뜻이 글자 그대로지만 원래 이 말은 음산하고 피비린내가 난다. 


몽골고원을 중심으로 한 중국 변방은 고도가 높기 때문에 가을과 겨울이 일찍 온다. 그러면 초목이 말라 버려 말이나 사람 할 것 없이 먹을 것이 없어진다. 이때 말은 본능적으로 겨울을 나기 위해 가을철 초목을 닥치는대로 먹으려 한다. 하지만 초목은 이미 매말라 버렸다. 이렇게 되면 목축을 생업으로 하는  유목민들은 살아남기 위한 마지막 몸부림을 친다. 바로 약탈이다. 그래서 가을 하늘이 높아지고 말이 살찌는 기운이 느껴지기 시작하면 중국은 언제 북방 유목민족들이 밀려내려와 닥치는대로 약탈을 일삼을 지 바짝 긴장했다.


북방 유목민족 혹은 국가 중에서도 한나라 때 강성함을 자랑한 흉노와 오환은 특히 중국에게 두려운 존재였다. 이 중에 고구려도 가끔 끼어든다. 중국은 고구려 왕 중에서도 걸핏하면 북경 근처까지 쳐든 태조왕과  동천왕을 특히나 두려워 했다. 그래서인지 중국역사에는 태조왕과 동천왕은 마치 괴물처럼 그린다.


이런 유목민족들의 약탈을 막아내고 때로는 원천봉쇄하기 위해 중국은 끊임없이 전쟁을 일으켰고 백성들을 군대로 강제징발해 변방으로 내몰았다. 천고마비가  중국민중들에게는 고통일 수밖에 없었다. 이런 천고마비 고통을 가장 잘 노래한 시인 중 한 명이 이태백이었다. 


** 이는 2000년 10월 17일 연합뉴스를 통해 송고한 내 기사 '<천고마비(天高馬肥)와 이태백>'을 약간 손질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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