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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

인도 고고학 조사 이야기 (12): 보급품

by 초야잠필 2018. 12.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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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훈 (서울대 체질인류학 및 고병리연구실)


2차대전 노르망디 상륙작전 때 롬멜이 상륙전 중 사망한 미군 장비에서 초콜렛 케이크가 나온 것을 보고 "이 전쟁은 우리가 졌다"라고 한탄했다는 장면이 있다. 비단 전쟁만이 그럴까. 실제 전투보다 훨씬 중요한것은 결국 보급이다. 손에 들고 있는 것이 있어야 땅을 파건 연구를 하건 할 것이 아닌가. 


인도를 들어갈때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연구에 필요한 소모품과 도구를 현지에서 구할 수가 없다는 점이다. 돈이 있더라도 살 수 없는 일이 많고 비슷한 물품을 구하더라도 질이 아무래도 떨어져 제대로 사용하기가 쉽지 않다. 


내가 2012년 2월 18일, 인도 데칸대로 보낸 소포중 하나의 내용물을 보자. 뭐 이런 것까지 들고 가겠냐 하지만 이렇게 보내지 않으면 현장에서 작업이 이루어 질 수가 없다. 


These contents were imported to India, on Feb, 2012.


Sent by: Dr. D. H. Shin, Professor, Anthopology and Paleopathology Lab, Seoul National University College of Medicine, Seoul, Korea


Received by: Dr. Vasant Shinde, Professor, Joint Director, Deccan College Post Graduate and Research Institute, Pune, India


List of Contents in Boxes

(maintained in Deccan College, for setting up the archaeological science lab)


Box A


Head cap (intact)

Polyglove (1)

Sealing bag (small) (2)

Sealing bag (large) (4)

Clean (plastic) bag (2)

Scale bars (2)

Surgical gloves (intact)

Brushes (8)

Trowel (1)

Gown (5)


결국 처음 우리가 인도를 들어가 현지 상황을 살펴 본 후 내린 결론 중 하나는 연구에 이용할 물품 상당수를 한국에서 현지로 실어 나르지 않으면 작업이 쉽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이런 물품이 하나하나 인도로 실려 들어갔기 때문에 아래와 같은 모습의 작업이 가능해진다.  



2016년. 라키가리 발굴 현장. 발굴자가 입고 쓰고 있는 모든 도구와 방호복은 한국에서 공수된 것이다.




현지로 물품을 보내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우편으로 배송하는 방법과 직접 들고 들어가는 방법. 후자는 비행기 수하물로 싣고 들어가는 것이고, 전자는 한국에서 부치는 것인데 어느 쪽이라 할 것 도 없이 똑같이 신경 쓰이고 어렵고 그렇다. 


인도에 우편으로 물품을 배송하면 분실 우려도 있고 뚜렷한 이유 없이 통관을 막기도 한다. 한국에서 "통관이 되겠지요?" 하고 배송 회사에 물어봐야 소용없다. 한국 직원이 뭐라고 했건 정작 인도 도착해서 통관을 못하니, 이렇게 덜컥 걸려버리면 결국 직접 달려가서 풀어야 한다. 물론 문제가 한 번에 풀릴 리도 없고 여러 번 가서 통사정을 해야 한다. 우리는 한국에서 부친 물건이 델리에서 통관이 안 되서 공항을 서너 번 왕복한 적도 있다. 


인도에서는 이런 일이 왜 발생하는지 예측하기 어렵고 이유도 그때마다 제 각각이라 미리 대비하기 굉장히 어렵다는 것이 문제다.


 

인도로 배송되기 직전의 각종 소모품. 실험 도구는 전부 들고 들어가야 한다.

 


데칸대에 보관 중인 실험 소모품.




통관 직원과 싸움이 싫어서 택하는 방법은 인도를 들어갈 때 핸드 캐리를 해서 들어가는 것이다. 그게 과연 충분한 양의 물품을 실어 나를 수 있을까 싶지만 의외로 한 사람이 들고 들어갈 수 있는 물품 양은 많다. 우리 연구실은 처음에는 배송을 통해 인도로 관련 물품을 수송했지만 나중에는 인도를 들어갈 때 핸드 캐리만으로도 어느 정도 충분한 양을 실어 날라 작업을 지장 없이 수행할 수 있었다. 



라키가리 유적에서 수집 된 토양 시료를 수화 시키고 있다. 이 물품도 모두 한국에서 공수 된 것이다. 2012년.



2014년. 데칸대 실험실에서. 이 실험실은 우리가 작업할수 있도록 신데교수가 대학내 한 곳에 공간을 장만해 주어 만들 수 있었다. 한국에서 수송된 물품이 이곳에 보관되었고 기본적인 몇가지 작업은 여기서 가능하였다.


라키가리 유적 캠프에서 샘플 정리 중. 이 샘플들은 정리 후 데칸대로 보내져 저장된다.




인도에서 작업할때 "보급"되는 물품 중에는 이런 소모품들 외에 전자장비도 있다. 


라키가리 발굴이 결정되었을때 한참 한국에서는 "드론" 가격이 내려가 싼 제품 중에서도 쓸 만한 것이 꽤 많이 나오기 시작했다. 

너무 비싸지 않은 중저가 드론을 하나 구해서 라키가리 발굴 구역 항공사진을 촬영하고자 했다. 



한국에서 드론 연습 중 (2016)




이 드론을 인도를 들어갈때 핸드캐리로 들어가기로 했었는데 예상대로 한 번은 뭄바이 공항에서 반입금지-. 이것을 귀국 때 들고 한국에 다시 들어왔다가 다음 번 들어가는 사람 편에 다시 실어 보냈는데-. 이번에는 델리 공항으로 들어갔는데 여기서는 반입허가-. (왜 어디는 안되고 어디는 되는지 그 이유도 모르겠음) 


이렇게 어렵사리 들고 들어간 드론으로 촬영된 사진이 바로 아래 사진이다. 



라키가리 전역 사진. 드론을 고고학 발굴 현장에서 사용한 것은 사실상 데칸대-서울대 라키가리 발굴 조사가 인도에서는 처음이었다. 우리가 이 작업을 할때만 해도 드론 사용에 대한 규제가 인도에는 없었다. 요즘은 우리처럼 사전 허가가 필요 한 것으로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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