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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詩 & 漢文&漢文法

청옥 쟁반에 쏟아지는 수은

by taeshik.kim 2018. 7.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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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 계절의 노래(105)


여름비 내린 후 청하 절집에 쓰다(夏雨後題靑荷蘭若)


 당 시견오(施肩吾) / 김영문 選譯評


절집은 청량하고

대나무 산뜻해라


한 줄기 비 지난 후

온갖 티끌 다 씻겼네


산들바람 문득 일어

연잎을 스쳐가니


청옥 쟁반 속에서

수은이 쏟아지네


僧舍淸涼竹樹新, 初經一雨洗諸塵. 微風忽起吹蓮葉, 靑玉盤中瀉水銀.


옛날 문인들은 아름다운 풍경을 마주하거나 인생의 주요 대목에 처할 때마다 시를 썼다. 특히 한자 문화권에서 오언시와 칠언시는 문인들의 교양필수 도구였다. 시를 좋아하는 선비들은 늘 지필묵과 시 주머니를 가지고 다녔다. 또 종종 산 좋고 물 좋은 정자에 모여 시회(詩會)를 열곤 했다. 요즘은 어떤가? 시인들 이외의 지식인 사이에서 시를 주고받는 전통은 거의 사라진 듯하다. 그럼 옛 사람들처럼 시를 써야 할 대목에서 어떤 행동을 하는가? 거의 모든 사람이 자신의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린다. 소위 ‘인증샷’이다. 풍경 뿐 아니라 자신이 지금 존재하는 모든 곳에서 ‘인증샷’을 남긴다. 게다가 ‘자투리 이미지’를 뜻하는 ‘짤’도 있다. ‘플짤’, ‘표정짤’, ‘혐짤’, ‘인생짤’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짤’이 넘쳐난다. 이렇게 보면 ‘인증샷’이나 ‘짤’이야말로 옛 시인들의 오언시와 칠언시에 해당하고, 그걸 쓴 옛 시인들은 요즘의 ‘짤쟁이’나 ‘샷쟁이’에 해당하는 셈이다. 게다가 그들의 묘사력은 사진의 생동감에 전혀 뒤지지 않는다. 이 시의 마지막 구절을 보라. “청옥 쟁반 속에서 수은이 쏟아지네.” 수묵화라기보다는 수채화 같은 풍경 속에서 옥구슬 구르는 소리가 들릴 정도다. 뛰어난 시인의 묘사력은 평범한 ‘샷쟁이’의 ‘인증샷’을 훨씬 넘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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