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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sWho in Ancient Korea

칠숙柒宿

by taeshik.kim 2018. 3.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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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진평왕 53년(631), 아마도 왕권을 노렸을 반란 주모자로, 당시 벼슬은 이찬으로서, 아찬 석품石品과 더불어 난을 도모했지만, 모의 단계에서 적발되어 목베임을 당했다. 화랑세기 자매편으로 그 등장인물들의 족도族圖인 상장돈장上狀敦牂》에 의하면 그는 진흥왕 서자다. 즉, 미진부未珍夫와 묘도妙道 사이에서 난 자식들로 미실美室과 미생美生 외에도 아들인 미경美京과 딸들인 미질美質과 미옥美玉이 있어, 이 중 미질이 진흥왕한테서 씨를 받아 낳은 아들이 칠숙이다.


삼국사기 권 제4 신라본기4 진평왕 : 53년(631)…여름 5월에 이찬 칠숙柒宿과 아찬 석품石品이 반란을 꾀하였다. 왕이 그것을 알아차리고 칠숙을 붙잡아 동시東市에서 목 베고 아울러 구족九族을 멸하였다. 


화랑세기 17세 렴장공廉長公 전 : (렴장공은) 선덕공주를 몰래 도와 칠숙柒宿의 난을 다스리고, 그 공으로 발탁됐다. 선덕이 즉위하자 들어가 조부調府의 영令이 되어 유신과 춘추에게 재물을 공급하여 주었고 또한 사적으로도 치부했다. 그때 사람들이 공의 집을 가리켜 수망택水望卷이라 했으니 금이 들어가는 모습이 홍수와 같음을 말한 것이다. 세상에서는 공을 미생공과 비교하기도 했는데, 미생은 극도로 사치했지만 공은 검약을 몸소 실천했으니, 그 부유함은 미생공보다 훌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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