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漢詩 & 漢文&漢文法

파초 이파리 때리는 밤비

by taeshik.kim 2018. 8. 25.
반응형

경주 월암재


한시, 계절의 노래(148)


밤비(夜雨)


 당 백거이 / 김영문 選譯評 


때 이른 귀뚜라미

울다 또 쉬고


가물가물 등불은

꺼질 듯 탄다


창밖엔 밤비가

내리는구나


파초 잎에서 먼저 들리는

후두둑 소리


早蛩啼復歇, 殘燈滅又明. 隔窓知夜雨, 芭蕉先有聲.


하루 이틀 사이에 기온이 거의 10도 가량 떨어졌다. 입추 말복 지났다고 가을이 이처럼 성급하게 달려와도 되는 것인가? 한밤중 아파트 베란다에 나가보면 사방에서 들려오는 풀벌레 소리가 천지를 가득 채운다. 아파트 8층에 살면서 가장 아쉬운 점은 벽 속에서 우는 귀뚜라미 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점이다. 시골집에서 살 때는 입추를 전후한 시절부터 귀뚜라미 소리가 멀리서 들리다가 점차 가까이로 다가와 벽 속 혹은 책상 밑에서도 들리곤 했다. 귀뚜라미 소리에 귀 기울여보면 조금은 투박하면서도 맑은 음색이 가을날 스산한 가슴 속에 깊이 스미는 느낌을 받는다. 중국 근대 여성해방 선구자 추진(秋瑾)은 가을날의 그런 심정을 “가을바람에 가을비 내릴 때 애수가 사람을 죽이네(秋風秋雨愁煞人)"라고 읊었다. 『회남자(淮南子)』 「무칭훈(繆稱訓)」에서는 "봄엔 여자가 그리움에 젖고, 가을엔 남자가 슬픔에 젖는다(春女思, 秋士悲)”라고 했다. ‘봄은 여성의 계절이고 가을은 남성의 계절’이라는 말의 가장 오랜 버전인 셈이다. 하지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추진 같은 가을 여인(秋女)도 매우 흔했으므로 고전에 나오는 구절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만도 없는 노릇이다. 적막한 풀벌레소리가 스산한 가을바람에 실려올 때 문득 후두득 가을비까지 떨어지면 구양수(歐陽修)가 「추성부(秋聲賦)」에서 읊은 것처럼 “이것이 가을소리다(此秋聲也)”라는 탄성이 절로 터져 나온다. 진실로 “그 기운은 서늘하여 사람의 피부와 뼛속까지 스미고, 그 뜻은 쓸쓸하여 산천까지 적막하다(其氣慄冽, 砭人肌骨, 其意蕭條, 山川寂寥)” 긴 여름이 가고 마침내 가을이 왔다.

반응형

'漢詩 & 漢文&漢文法'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을 문턱에서  (0) 2018.08.25
향수에 젖어  (0) 2018.08.25
칠석, 하늘이 허락한 딱 하루  (0) 2018.08.23
말복, 얼음 받아 돌아가는 날  (0) 2018.08.23
낚싯대 드리우며  (0) 2018.08.16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