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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혼돈에 말뚝박기 : 한문강독을 겸하여

by taeshik.kim 2018. 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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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존 《장자》(莊子)는 내편(內篇) 외편(外篇) 잡편(雜篇)의 모두 3개편으로 구성되어 있음은 널리 알려진 바라. 이런 分章은 진(晉)나라 때 문사인 곽상(郭象. AD 252?~312)라는 자가 그 전대부터 전하는 《장자》 텍스트에 주석을 가한 《장자주》(莊子注)에서 비롯됐다.

 

이 《장자주》 이전 《장자》는 어떤 외양을 띠고 있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따라서 우리에게 익숙한 《장자》란 모두 이 곽상이라는 사람에게 뿌리를 둔다. 따라서 일반 시중에 선보인 모든 《장자》 텍스트는 편의상 ‘현통용본’이라 할 수 있으니, 실상 현재의 통용본 《장자》는 말할 것도 없이 이 곽상이 손을 댄 《장자주》와 동일한 체제를 갖추고 있다.

 

이 《장자》는 도교가 국교가 된 당나라 때는 매우 존숭을 받게 된다. 왜 당나라가 도교를 중시했는가? 이것이야말로 쇼인데, 도교의 비조로 간주되는 노자(老子)는 본명이 이담(李聃)이라는 기록이 사마천의 《사기》(史記)에 전해지는 지라, 마침 성이 이씨인 당 황실이 그 뿌리를 노자에게 디립다 갖다 붙여, 노자야말로 우리 당 황실의 조상이 되나니 하는 사기행각을 벌이어니와, 이런 황실의 뿌리가 유구무원하고, 나아가 그 뿌리가 범상치 않은 노자에게 있음을 강변하는 이데올로기 획책화에 의해 도교가 일대 국교가 되다시피 했느니라.

 

이런 도교 추숭 풍습에 휘말려 도교 계열 저작들과 그 저자들이 대대적으로 현창되기에 이르노니, 당대에 가장 존숭된 3대 저작이 있으니 그것이 1, 노자 《도덕경》 2. 《장자》 3. 《문자》(文子)였으니, 이들은 모두 선진(先秦)시대 저작이라. 《장자》가 《남화진경》(南華眞經)으로 존숭되고, 그 저자 장주(莊周)는 남화진인(南華眞人)으로 존숭된데 반해 《문자》는 《통현진경》(通玄眞經)으로 격상되고, 그 저자 문자(文子)는 통현진인(通玄眞人)으로 봉작되나니,

 

애니웨이, 현행통용본 《장자》는 내편(內編)에 7개 편, 외편(外編)이 15개 편, 잡편(雜編)이 11개 편 총 33편으로 구성되거니와, 이 중 내편은 장자 본래의 사상에 가장 근접하다고 하거니와, 그리하여 이들 내편 7편은 장자 직접 저작으로 간주되고, 그에 반해 외편과 잡편은 장주를 따르는 莊周 학파의 저술로 평가된다. 실제로 내편이 대단히 정밀하게, 또, 조직적으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하나의 사상으로 일관하고 있는데 비해 외편 잡편은 잡탕을 방불한다. 이런 장자의 잡탕성은 현행통용본에도 실려 있지 않은 많은 글이 다른 책들에 인용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서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으니, 이 책이 권위를 발산하면서 장주에 가탁한 많은 작품이 쏟아져 나왔다고 추정된다.

 

오늘의 《장자》를 있게 한 곽상이란 자는 字를 자현(子玄)이라 했으니 여러 관직을 역임한 뒤 만년에 東海王에 책봉되어 있던 사마씨의 사마월(司馬越)에게 봉사하며 그의 대부주부(大傅主簿)로 있으면서 권세를 농단했다. 이 곽상이 살다가 위진(魏晉)의 시대는 사상사, 철학사적으로 이른바 위진현학(魏晉玄學)이라는 말이 있듯이 老莊철학의 전성시대였다. 유교경전조차 노장 철학에 끼워 맞춰 해석하는 경향이 농후했으니, 이 시대 학문을 왜 玄學이라 해서 검을 玄을 쓰는가 하면, 이 玄이라는 글자는 색깔로는 黑이요, 그 의미상으로는 微와 妙와 幽에 통하는 바라, 요즘 말로 심오하다 할 때의 深奧와 근본 궤를 같이 하는 말이니, 이런 玄과 도가철학의 긴밀한 연관성은 노자 도덕경 제1장에서 단적으로 확인하거니와 여기서 道를 일러 玄이라는 글자를 거듭하여 묘사하고 있는 데서 바로 玄과 도가철학의 긴밀한 연관성이 드러난다. 아예 玄이라는 글자를 활용하여 玄妙라는 말도 있으니, 최치원이 저 난랑비서에서 말했다는 玄妙之道는 말할 것도 없이 도가철학을 의미한다.

 

현행 통용본 《장자》 내편(內編) 중 마지막이 응제왕편(應帝王篇)이라, 우화로 점철된 이 응제왕편 중에서도 가장 마즈막 대목이 저 유명한 혼돈이라는 몸통에다가 7개 말뚝박기라, 원문도 쉽고, 해석도 쉬우니 그것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나니,

 

南海之帝爲儵, 北海之帝爲忽, 中央之帝爲混沌. 儵與忽, 時相與遇於混沌之地, 混沌待之甚善. 儵與忽, 謀報混沌之德,, 曰, “人皆有七竅 以視聽食息, 此獨無有, 嘗試鑿之”. 日鑿一竅, 七日而混沌死.

 

남해의 우두머리를 숙이라 하고 북해의 우두머리를 홀이라 하며 중앙의 우두머리를 혼돈이라 한다. 숙과 홀이 마침 혼돈의 땅에서 만나니 혼돈이 그들을 대접함이 극진히 좋았다. 이에 숙과 홀이 혼돈이 베풀어준 덕을 갚고자 의논하기를 “사람에게는 일곱 개 구멍이 있어 그것으로써 보고 듣고 먹고 숨쉴 수 있으나 혼돈만은 오직 그것이 있지 아니하니, 시험삼아 그에게 구멍을 뚫어주자”라고 했다. 이리하여 하루에 구멍 하나씩 뚫어나가기 7일만에 혼돈은 죽고 말았다.

 

장자의 특장은 교묘한 이름을 맹글어 내고, 그 이름으로써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담으려 한다는데 있으니 여기서도 무위(無爲) 혹은 몰아일체(沒我一切) 그 자체로써 호오(好惡) 선악(善惡)을 초월한 절대적 경지라고 할 수 있는 존재를 상징하는 말로써 混沌을 만들어내는가 하면 그러한 경지를 파괴하는 주범으로써 숙(?)과 홀(忽)을 설정하니, 이들 두 글자가 갖는 기본적인 의미는 갑작스러움(ABRUPTNESS) 혹은 돌발성이다.

 

이제 이를 한문 문법이라는 측면에서 접근한다면

 

1. 南海之帝爲儵, 北海之帝爲忽, 中央之帝爲混沌.

 

이는 A is B라는 구조로 일관하고 있으니, 여기에서 爲는 영어 be에 해당한다. 한문에서 A는 B이다고 할 때 ‘이다’에 해당되는 말은 흔히 생략되기 일쑤이나, 이 문장에서 爲가 들어간 것은 말할 것도 없이 그것이 없다면 南海之帝儵이 되어 ‘남해의 제숙’이 되어 버릴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帝라는 글자는 흔히 나중에는 帝王을 의미하나, 장자라는 텍스트가 완성되는 전국시대 중기 무렵까지 이런 의미를 쓰이는 경우는 지극히 희귀하고 대부분은 上帝, 즉, 神을 의미했다. 따라서 남해라는 방위를 다스리는 신, 북해라는 방위를 다스리는 신, 중앙이라는 방위를 다스리는 신이라는 의미로 보아야 할 것이니, 이렇게 되면 이 문장에서 말하는 3방위 신은 결국 진시황제 시대 이후, 특히 前漢대에 접어들면서 五帝 신앙으로 급속히 포섭해 들어간다. 참고로 이 五帝 신앙에서 중앙은 黃帝, 남방은 赤帝, 북방은 黑帝라 했으며 동방은 靑帝, 서방은 白帝라 했다.

 

2. 儵與忽時相與遇於混沌之地,

 

A. 儵與忽은 A AND B 구조의 명사구로써, 주어 역할을 한다고 보기 쉬우나, 실은 A along with B에 가깝게 이해해야 한다.

 

B. 時相與遇에서 時는 ‘때마침’이라는 의미로 보아야 할 듯 싶다. 相與遇 또한 儵與忽와 같이 A along with B 구조이나, 여기서는 동사구라는 점이 다르다. 相이나 遇나 모두 만난다(TO MEET)는 뜻이다. '時相與遇'에는 만나기는 하되 우연성이라는 개념이 짙게 들어 있다. 따라서 이 구절은 MEET BY CHANCE로 영역이 가능하다. 相이라는 글자에 만난다는 뜻은 目이라는 글자가 들어가 있는데서 유추할 수 있다.

 

C. 於混沌之地. 於는 어조사인데, 이 어조사는 종결사로 쓰이는 경우를 나는 아직 보지 못했고 거의 대부분이 명사(구) 앞에 놓여(그러니 영어의 전치사와 똑같다) 장소를 의미한다. --에서(IN/ON/AT). 그러나 많은 경우에 ~보다라는 비교의 의미를 함유하는 경우도 있으니 문맥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

 

3. 混沌待之甚善. 混沌待之가 주어부(SP)이며 甚善이 술어부(VP)이다. 즉, 混沌待之가 甚善했다는 뜻이다. 여기서 주어부(SP)를 구성하는 混沌待之는 실은 ‘混沌之待之’, 혹은 ‘混沌之待之者’(혼돈이 그들을 대접한 것)가 되면 그 의미가 더욱 분명하겠으나, 이런 식으로 명사구를 형성할 때 之는 흔히 생략된다. 나아가 이 경우에는 之가 들어간다면 외려 곧이어 나오는 之와 연접되어 영 어색하게 된다. 之를 생략한 주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4. 儵與忽謀報混沌之德 : 儵與忽가 주어부, 謀報混沌之德가 술어부이다. 謀報混沌之德라는 술어부에서 동사는 謀이며 결코 謀報가 아니다. 즉, 꾀하는 객체는 ‘報混沌之德’(혼돈이 베풀어준 덕을 갚는 것)이 된다.

 

5. 人皆有七竅 以視聽食息 : 이 문장은 SP+VP+VP가 되어 있다. 두 개 술어부가 以로써 연결되어 있다. 이 以라는 글자는 한문에서 지질이도 지랄 맞은 글자인데 문장을 연결할 때는 앞이 원인이 되어서, 그럼으로써(以), ~~한다(할 수 있다)는 의미를 형성한다. 이 경우에는 사람에게는 모두 7개 구멍이 있으니, 그런 까닭에 보고 듣고,,,한다는 뜻이다.

 

A有B라는 한문 문장에서 주어는 B이다. A에게는 B가 있다는 뜻이다. 이는 A無B도 똑같다. 영어로 옮기면 THERE IS(ARE) B FOR A가 된다. 王侯將相 寧有種乎. 이를 흔히 왕후장상이 어찌 씨가 따로 있겠는가로 옮기고 있으나 엄밀히는 “왕후장상에게 어찌 씨가 따로 있겠는가”가 되어야 한다. 이 경우에는 왕후장상이나 왕후장상에게나 별 의미 차이를 느낄 수 없으나, 이런 식으로 안이하게 해석해서 곤란할 때도 있으니 유의해야 한다.

 

6. 此獨無有

앞에서 말하는 A無B 구조 문장이다. 따라서 이 문장에서 주어는 有이다. 此에게는 有(있음)이 없다라는 뜻이 된다. 此(THIS)는 말할 것도 없이 혼돈이다. 獨은 오직이니, 다른 사람들에게는 모두 7개 구멍이 있음에도 오직 이 혼돈만은 없다는 뜻이다. 여기서 有라는 글자는 “마땅히 있어야 할 것”이라고 의역할 수 있다.

 

7. 嘗試鑿之. 嘗試 시험삼아라는 부사구로써 鑿之를 한정한다. 鑿之에서 之는 대명사로써 앞에 나오는 혼돈을 가리킨다. 바로 앞에서는 此라고 해 놓고 뒤에서는 之라고 하고 있는데, 동사구에서 반복할 때는 대체로 之를 쓴다. 鑿이라는 이 복잡한 글자는 현재는 掘鑿機라는 기계 이름으로 잘 남아 있다.

 

8. 日鑿一竅, 七日而混沌死. (하략) 


이상은 나대로 한번 한문을 순전히 문법론으로 접근해 본 것이다. 많은 데서 무리 혹은 오류가 있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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