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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화랑세기를 피해가는 한 방법

by taeshik.kim 2018. 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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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물건 감정과 전문가는 다르다고 본다. 미술사에서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니, 예컨대 도자기가 있다. 나는 도자기 감정을 잘 한다 해서 그 사람이 뛰어난 도자기 연구자로 보지는 않는다. 이 논리대로라면 가장 뛰어난 도자기 연구자는 그 진위를 감정하는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다. 

구체적으로 보면, 인사동 같은 데서 일하는 골동품 취급하는 사람들이다. 골동품 취급하는 일과 도자기를 연구하는 일은 다른 영역에 속한다고 본다. 하지만 연구자도 이를 피해갈 수는 없으니, 무엇인가 그것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단안해야 할 때는 서슴없이 해야 한다. 그것이 잘못된 감정일지라도 말이다.

"1989년 부산에서 발견된 이른바 화랑세기에는 김흠돌 모반의 전말이 확인된다. 그러나 아직도 그 진위 여부에 대해서는 논의가 진행 중이고, 또한 현재로서는 필자의 역량 부족으로 섣불리 그에 대해 견해를 제시하기는 어렵다. 좀더 논의 시간이 필요한 문제라 일단 이 글에서는 화랑세기의 내용은 배제하고 전개하고자 한다."

근자에 발간된 신라사 관련 연구자의 어떤 단행본에 보이는 구절이다. 그것이 발견되는 곳은 본문이 아닌, 각주다.

본문으로 올리기에는 몹시도 겁이 났나 보다. 각주의 기능이 이러한가? 각주는 도피처가 아니다. 화랑세기를 마주쳐야 하는 신라사 연구자들이 보이는 전형의 수법이 이것이다. "화랑세기에는 이렇게 나오는데, 나는 그 진위 여부를 판단할 수 없다. 능력이 없다."

말한다. 

능력이 없는 것이 자랑이 아니다. 도대체 신라사의 무엇을 어떻게 공부했기에 출현한지 이제는 30년이 다 되어가는 저 개뼉다귀 같은 필사본 감정 능력 하나 없다는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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