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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현장

돌아간 삼각지 탐방(1) 붕괴한 해태왕국을 추모하며

by taeshik.kim 2018. 1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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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어김없이 이 영감 남영동 나타나선 바람 쐬자 꼬득인다. 독거노인이라 할 일 없으니 내 바지가랑이 붙잡는 재미가 쏠쏠한가 보다. 요새 골목길 답사로 재미 붙인 김란기 박사다. 오늘은 삼각지서 용산역 방면으로 근대의 흔적들을 뒤지자 한다. 이미 지난주인가 김 박사는 이 일대를 훑어 자신감 충만한 상태였다. 그래, 그렇다면 삼각지로터리서 시작하자 도원결의하면서 남영역 내 집에서 왼편으로 미군부대 담벼락을 끼고 걸어 출발하니, 이내 무너진 해태제과 본사 건물을 지난다. 


박건배 회장 시절 해태는 그런대로 잘 나갔다. 그 해태 왕국은 껌이 아니라 실은 타이거즈라는 프로야구가 구축한 왕국이었다. 감독 김응룡을 필두로 김봉연 김성한 김준환 김일권으로 시작해 선동열 이종범으로 이어진 이 야구왕국은 그 기반이 강고한 프랜차이즈 시스템에 있었으니, 해당 지역 출신 고교 기준으로 다른 구단에는 취직도 하지 못하게 한 저 제도가 실은 해태왕국을 갉아먹는 좀이라는 사실을 그들이 그때는 몰랐다. 저런 위대한 스타들을 헐값에 영입하고, 딴 구단으로는 가지 못하게 한 채 부려 먹으니, 그 전성이 곧 망조의 지름길인 줄은 알 턱이 없었다. 그렇게 해태는 한때 잘 나갔다. 

하지만 그런 해태 왕국도 동열이도 가고 종범이도 가면서 서서히 몰락하더니, 마침내 모기업도 무너져 같은 제과 업계 크라운에 넘어가는 신세 되어, 그 상징 해태 두 마리는 여전히 정문을 지키나 간판은 바뀌어 크라운해태가 되고 말았다. 못내 씁쓸하기만 하다. 


그 한강대로 건너편으로는 미군부대 시설이 있으니 경부선 철로와 경인선 전철을 한 쪽으로 낀 채 길쭉한 저 부지는 요새 살피니 거의 빈 상태라, 미군부대가 평택으로 이전하면서 같이 옮겨간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을 준다. 경복궁에서 짐을 빼야 하는 국립민속박물관이 한때 저곳을 이전 대상 후보지로 삼아 치열한 로비전을 펼쳤지만 역부족이었다. 나는 지금도 이 활용안을 찬성한다. 다만 그 꼴을 국방부나 서울시가 용납할 리는 없다고 본다.


미군부대 담벼락 끼고 대략 십분 정도 걸어 나타나는 삼각지 방면으로 가다 보면 그 인터체인지 직전 왼편으로 미군부대 출입구와 전쟁기념관 예식장 입구가 나타난다. 기념관과 삼각지 도로 사이엔 작은 섬과도 같은 저개발 지역이 있으니, 이 일대엔 간판 그림을 제작 판매하는 구멍가게 밀집한다. 대부분 퇴락을 거듭해 지금은 낙후할 대로 낙후한 상태라 이곳이 언덕이었다면 달동네라 해도 진배없다. 이곳에 언뜻 보아 이질적인 풍모가 잔뜩한 고식 건물 한 채가 을씨년한 모습으로 우뚝하다. 식민지시대 관사 같은 기능으로 사용한 건물이다. 재개발을 추진 중인지, 아니면 리모델링을 예정한 상태인지 속은 텅텅 비고 창문은 다 깨졌다. 


배가 고팠다. 왼편으로 국방부 바라보며 도로를 건너니 마침 그 전면에 순댓집 보여 각중에 들렸더니 전북 고창 모양성 아랫동네 출신이라는 장년의 여사장님 마구잡이로 오뎅이며 떡복이며 순대며 귀때기며 내놓는데 거절할 수 없어 우거적우거적 먹어대다 보니 배가 터질 지경이다.

이젠 거북한 배를 꺼지게 해야 했다. 워밍업 끝냈으니 본격 탐방 나설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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