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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詩 & 漢文&漢文法

어둠에 기대어 목숨 부지하는 박쥐

by taeshik.kim 2018. 5.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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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 계절의 노래(33)


산중 절구 다섯 수[山中五絶句] 중 동굴 속 박쥐[洞中蝙蝠] 


[당(唐)] 백거이(白居易) / 김영문 選譯評 


천 살 먹은 쥐가

흰 박쥐로 변하여


어두운 굴에 깊이 숨어

그물망을 피하네


해침 피해 몸 지킴은

실로 계책 얻었으나


한 평생 캄캄한 삶

또 어떻게 하려는지


千年鼠化白蝙蝠, 黑洞深藏避網羅. 遠害全身誠得計, 一生幽暗又如何. 


(2018.05.17.)



중국에서 박쥐는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첫째, 쌍관어(雙關語)와 관련된 의미다. 고대 중국 민요나 시문에서는 발음이 같거나 비슷한 글자로 특정 의미를 담았는데 이를 쌍관어라 한다. 예를 들면 ‘비(碑)’로 ‘비(悲, 슬퍼하다)’를, ‘사(絲)’로 ‘사(思, 생각하다)’를, ‘연(蓮)’으로 ‘연(戀, 그리워하다)’을 의미하는 사례가 그것이다. 박쥐의 한자 발음 ‘편복(蝙蝠, bianfu)’도 ‘편복(遍福, bianfu)’과 같으므로 여기에 근거하여 “두루 복을 받는다”는 의미와 연관시킨다. 중국 뿐 아니라 우리나라와 일본에서까지 박쥐 문양을 복(福)의 길상 도안으로 널리 쓰는 건 바로 여기서 유래했다. 


둘째,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박쥐의 이중성이다. 날짐승과 길짐승 사이에서 교활하게 기회주의적 삶을 산다는 인식이다. 명나라 풍몽룡(馮夢龍)의 『소부(笑府)』에 실린 「불수불금(不獸不禽)」 우화가 이런 인식을 잘 보여준다. 봉황의 생일잔치에는 길짐승이라 핑계 대고, 기린의 생일잔치에는 날짐승이라 핑계 대며 참가하지 않은 박쥐의 이중성에 대한 묘사가 그것이다.


이 시도 외면 상 위의 두 번째 인식을 시로 써낸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는 길짐승인 쥐가 날짐승인 박쥐로 변해 어두운 동굴을 서식지로 삼고 있으므로, 박쥐의 교활하고 기회주의적인 행동이 결국 캄캄하고 음습한 삶을 초래할 것이란 인식이 깔렸다. 


그러나 좀 더 주의 깊게 시를 관찰해보면 또 다른 울림이 감지된다. 우선 첫째 구 ‘백(白)’ 자가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보통 박쥐의 색깔은 검은색이나 회색이지만 여기서는 ‘백(白)’ 자를 썼다. 눈치 빠른 독자라면 이 ‘백(白)’ 자에서 바로 이 시의 작자 ‘백거이(白居易)’를 떠올릴 것이다. 


그러고 보면 둘째 구 “그물망을 피한다(避網羅)”라든가, 셋째 구 “해침을 멀리 피해 몸을 온전히 한다(遠害全身)”는 표현은 중앙 조정의 당파 싸움에서 벗어나 지방관을 전전하던 백거이의 행적을 연상하게 한다. 당시 백거이는 이처럼 조정의 아귀다툼에서는 벗어나 보신책은 마련했지만 다시 돌아갈 기약은 막막하게 느꼈을 터이다. 따라서 마지막 구절의 “한 평생 캄캄한 삶(一生幽暗)”이란 표현도 당시 백거이의 암담한 현실인식이라 할 만하다. 


어떤 것이 정확한 시 읽기냐는 무의미한 질문이다. 모든 시는 다양한 층위를 포함한다. 독자의 역량이 뛰어나면 그 다양한 층위의 의미망을 모두 섭렵하고 음미한다. 물론 하나의 의미망에 만족해도 좋다. 하지만 나의 의미망이 유일한 의미망이라고 고집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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