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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법정으로까지 간 이덕일-김현구 임나일본부 논쟁에서 이덕일을 편들고 싶은 생각이 추호도 없지만, 그렇다고 김현구가 말하는 임나일본부설을 찬동하고 싶은 생각이 하나도 없다는 말을 두어 번 했다. 김현구는 임나일본부를 백제가 가야를 통치 혹은 지배 혹은 조종하는 군사령부로 이해한다.(혹 내가 읽은지 오래라 오해가 있을 수 있으니 질정 바란다)

이 논쟁에서 김현구는 이런 자신의 전력을 내세우며, 그 자신을 임나일본부를 인정한 식민사학자로 이덕일이 부당하게 매도했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나는 '일본'이라는 주체를 '백제'로 치환했다 해서 그것이 식민사학 극복이라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말하면서, 그것은 또 다른 식민사학이라고 비판했다.

가야는 막 떼어내 일본에 주거나, 백제에 주거나, 신라에 주는 처치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김현구에게 가야는 시종 일관하여 가야 주체의 역사학이 아니라 왜 혹은 백제 중심 역사학의 전형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가야 주체의 역사는 어떠해야 하는가? 이것이 실로 나로서는 오랜 고민이었다. 

말로는 가야 주체, 가야 주체를 떠드는데 나 역시 그런 가야를 이야기하면서도 언제나 신라 중심으로 보고자 했다는 사실을 고백하고자 한다. 그런 점에서 나 역시 가야 식민사학의 전형이다. 가야 주체의 역사를 어떻게 기술할 수 있는가를 고민하는 나에게 근자에 받아든 이영식 저 <가야제국사연구>(생각과종이, 2016)는 내가 말로만 떠들면서고 그 방법을 몰라 고민하던 나에게 하나의 빛이다. 가야사를 이리도 서술할 수 있다는 배움을 일깨워줬다는 점에서 이 책을 만난 건 나로서는 행운이다. 

돌이켜 보면 언제나 가야 주체 역사를 외쳤지만, 가야사를 증언하는 기록이 태부족이라는 이유로, 그리고 그것들이 삼국사기 삼국유사에서 신라 혹은 백제사의 카메오로 남아 있을 뿐이며, 제법 그런 흔적이 많은 일본서기에서도 시종하여 일본 천황가의 부속물로 그려진다는 한계를 핑계로 언제나 우리는 가야를 신라 백제, 그리고 왜의 부속물로써 역사를 그린 것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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