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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놈들 글쓰기 양태를 보면, 주석(注釋 혹은 註釋·annotations)은 논문이나 책 말미로 모는 후주가 압도적이다. 이런 영향이 지대한 일본에서도 소위 학술적인 글쓰기에서는 이런 후주가 압도적이다. 그에 비해 우리도 이 방식을 더러 쓰기도 하나, 대세는 해당 쪽 밑에 본문 설명을 돕는 각주(footnotes)다. 


이 외에도 본문에서 괄호에다 밀어넣는 협주(夾注) 혹은 미주(微注)도 있다. 이는 실은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통용한 전통적인 주석 표출 방법이다. 나아가 이런 협주 혹은 미주가 피인용자 이름과 그의 해당 논문이나 저서 발간 연도만 간단히 적고 상세한 서지는 후주로 몰아넣는 서양식 표출 방법이 있으니, 이 역시 국내 학술계에서는 더러 쓰기도 한다. 하지만 같은 협주 혹은 미주라 해도 전통 동아시아 문화권의 그것과 서양놈들의 그것은 차이가 왕청나다.  


蘇輿 찬 <<춘추번로의증(春秋繁露義證>>..이는 협주 혹은 미주 도입해, 본문(본래 텍스트)은 큰 글자로 쓰고, 주석은 해당 대목 밑에 작은 글씨로 써서 주석임을 표시했다. 원래 판각을 보면 미주는 두 줄로 썼다.



우선, 이런 여러 양태의 주석을 보면, 양놈들 글을 읽으면 후주가 본문 읽기 흐름을 방해한다는 느낌은 거의 없다. 이것이야말로 후주건 각주건, 그 구실이 제대로 작동한다는 증거일 수 있다. 그렇지만 국산 글은 협주건 미주건 후주건 각주건 본문과 번갈아 보지 않으면 진도가 도통 나가지 않는다. 


그것을 두번째 특징 혹은 차이로 지적할 수 있으니, 주석이 배태한 문화 배경이 다른 까닭이다. 이 짧은 글에서 내가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감이 없지는 않으나, 서양에서 주석은 근대적인 의미에서는 무엇보다 표절 방지가 목적이었다. 내가 아이디어를 도움 받는 곳에서는 그런 사실을 적기하고자 했다. 물론 이런 기능이 동아시아 문화권이라 해서 다를 수는 없다. 이 표절 문제는 심각해서 벌써 《세설신어》에 표절을 비판하기도 하는 데서 그 깊은 연원을 본다.  그렇지만 동아시아 문화권의 주석은 그 근간이 본문에 대한 독해의 원활한 흐름 조성이라는 측면이 매우 강했다. 주석을 의미하는 말이 注였으니, 나중에 이 말과 함께 註라는 말이 병행되기도 했지만, 注는 그 근본 의미가 물을 댄다는 뜻이었으니, 이는 동아시아 문화권이 생각한 주석이 무엇인지를 결정적으로 내보인다. 


용재수필...교감기는 해당 권마다 그 말미에 일괄로 수록한 점에서 일종의 후주(後注)다.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후주는 원전 교감에서 흔히 쓴다.



'본문 물대기'를 위한 주석의 대표로 멀리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면 배송지 《삼국지주》와 유효표 《세설신어주》가 있으니, 이는 진수의 《삼국지》와 유의경의 《세설신어》를 외려 능가하는 위대한 업적으로 평가된다. 이들의 주석이 없으면, 그 원전 읽기는 얼마나 고생했을까를 생각하면, 동아시아 문화권이 생각한 주석이 서양의 그것과는 갈 길이 다름을 증명하고도 남음이 있다.  


이에서 더욱 발전해 주석은 새로운 사상을 배태한다. 성리학을 집대성했다는 주희의 성과란 실은 사서를 주석한  《사서집주》가 거대한 뿌리다. 주석만을 통해서도 새로운 시대를 연다는 사실을 주희는 여지없이 증명했다. 


하지만, 이런 전통이 있다 해서, 지금의 근대적 학술적 글쓰기까지 그래도 된다는 변명은 될 수 없다. 작금 국내 전업적 학문 종사자들의 전문성 깊은 글들을 보면 본문으로 가야 할 말들이 주석으로 너무나 많이 밀려남을 본다. 주석 없이는 본문을 읽을 수 없는 글이 난무하는 이유다. 이것이 세 번째 특징 혹은 차이다. 


*** 이 주석론은 나로서는 필생의 화두라, 개중에서도 몇 개 얼개만 간단히 적어둔다. 나아가 이것이 중간 지점에 지나지 않으며, 그 중간 지점이 표출한 생각들은 언제건 바뀔 가능성을 열어둔다. 

  1. yisabu 2018.09.25 20:46 신고

    후주란 일본사람이 만든 말로, 설명하고자 하는 단어에서 아주 멀리가지는 않고 한단락 쯤 뒤에 작은 글씨로 길게 설명다는 것 아닙니까? 그것과 서양에서 reference라 해서 맨 뒤에 참고문헌을 적는 것은 다를텐데요.

  2. 한량 taeshik.kim 2018.09.25 20:53 신고

    서양사람들 거의 다 후줍니다. 맨 마지막에 챕터별로 정리합니다

  3. 한량 taeshik.kim 2018.09.25 20:53 신고

    후주란 글자 그대로 뒤에다가 몰아넣는 주석을 말합니다. 레퍼런스와는 별갭니다

  4. 무명 2018.09.26 02:29 신고

    선생님 말씀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연구서 읽다가 주석 보느라 정신없을 때가 여러번입니다. 후주 일때는 특히... 그렇다고 주석을 안 보자니 밍밍하고...
    요새 정사 삼국지를 읽는데, 배송지의 주석이 없으면 이 시대를 이해하는데 참 한계가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우연히 검색하다 들어왔는데 귀한글이 많습니다. 많이 배우고 갑니다.

나는 언제나 말하기를 좋은 논문 쓰고 싶거덜랑 논문을 읽지 말라고 한다. 논문 쓰기를 직업으로 삼는 사람들이 항용 말하기를 남들 논문 읽고 그것을 내 것으로 소화하라 하며, 실제 무수한 교육현장, 특히 석·박사를 배출하는 대학원에서는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져 그 교육 내용을 볼짝시면, 남들이 써제낀 논문 읽기와 그것을 토대로 삼은 논문 발표가 무한반복한다.  




말하거니와, 그것을 내 것으로 소화한다 해서 좋은 논문 나오는 법 결코 없다. 내 열 손가락 다 지져도 좋다. 이런 공부 혹은 교육 방법을 탈피하지 못하니 매양 논문이라는 것들을 보면, 남들 무슨 얘기했다 잔뜩 나열 정리하고는 그에 대한 비판이랍시며, 자기 말 한두 마디 보태고는 그걸 논문이랍시며 제출하곤 한다. 논문이 논문을 쓴다는 말은 이렇게 해서 언제나 적어도 국내 학계에서는 정당하다. 그런 까닭에 그리 제출된 논문을 볼짝시면 제아무리 뛰어난 논문이라 해도, 그 전체 중 음미할 만한 곳은 10%도 되지 않는다. 걸러내고 나면 남은 대목이 없다.


좋은 글, 좋은 논문은 어느 것 하나 버릴 것이 없어야 한다. 그 첫마디부터 마지막말까지 단 한 마디도 버릴 것이 없어야 한다. 하지만 언제나 내가 목이 아프도록 지적했듯이, 지금 우리네 글쓰기 논문쓰기를 보면 같은 영화를 무한 반복하는 영화전문채널 OCN이다. 언제나 성탄절을 장식하는 《나홀로 집에》다. 그것도 같은 말 무한 반복이라, 국문초록과 영문초록이 같은 말이요, 국문초록과 서문이 같은 말이요, 국문초록과 서문과 결론이 같은 말이요, 국문초록과 서문과 결론과 요약이 같은 말이다. 


내가 생각하는 잘쓴 글이란 이 네 가지가 모두 달라야 한다. 그 요지는 같다 해도, 그 표현이 달라야 하고, 그 전거가 달라야 하고, 그 문체가 달라야 한다. 논리 전개도 달라야 한다. A라는 주제에 대해 이전 어떤 선행 연구자가 B라고 말하고, C가 D라고 말하고, E가 F라고 말했는데 나는 G라고 생각한다는 논리 전개 구조를 언제까지 고집할 것인가? 


논문을 읽지 말아야 하는 까닭은 그에 얽매여서는 결코 좋은 글이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언론계 속어를 빌리건대 우라까이에 지나지 않는다. 선행연구성과를 제대로 검토한 다음에, 그것을 비판적으로 계승한 토대 위에서 새로운 문제의식을 표출해야 한다는 주입은 제 아무리 그 글이 훌륭해도 언제나 선행 연구자 따라지를 양산하는데 지나지 않는다. 


선생이라는 자들도 개중 소위 열린 자들이 매양 하는 말이 "나를 밟고 지나가라"고 하지만, 이 말이 언뜻 보면 훌륭하기 짝이 없는 듯하지만, 그 속내를 따져보고, 실제로 요구하는 글쓰기 스타일은 물론이요, 그 논리 전개 구조도 자기 연구를 토대로 해서 그 한계를 뛰어넘으라는 데 지나지 않는다. 물론 그 한계를 그 선생이 인정하느냐 하면, 나는 이렇게 해서 받아들이는 선생을 태어나서 단 한 마리도 보지 못했다. 언제나 선행연구성과를 제대로 음미해야 자기 목소리가 나온다 하지만, 이리 해서는 결코 새로운 목소리는 나올 수 없고 가지치기만 있을 뿐이다. 그렇게 선생은 학생을 구속하고 차꼬에 가둘 뿐이다.  이는 화이트헤드가 서양 철학사를 갈파한 말을 빌린다면 영원한 플라톤 각주달기에 지나지 않는다. 각주를 쓸 것인가 새로운 원전을 쓸 것인가, 이제 그것을 글 쓰는 이는 결단해야 한다. 


내가 할 일이 없어 각주나 쓰겠는가? 

  1. yisabu 2018.09.19 13:36 신고

    이 글은 에세이 꼭지 아래 두어야 하지 않을까요?

  2. 한량 taeshik.kim 2018.09.19 19:31 신고

    그래야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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