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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 계절의 노래(87)


향로봉(香爐峰) 


 송 황정견(黃庭堅) / 김영문 選譯評 


쇠로 향로 만들지 않고

바위로 구워내니


코로 향기 못 맡아도

눈으로 연기 보이네


향로봉 위에 선

문수사리 보탑이


한 가닥 향불처럼

향로 속에서 타오르네


香爐不鑄石陶甄, 鼻不聞香眼見煙. 上有文殊師利塔, 好將一瓣此中燃. 


한시(漢詩)는 당대(唐代)에 극성했다. 당을 대신한 송나라 시인들은 시를 지을 때마다 고심해야 했다. 이미 당나라 시인들이 거의 모든 표현을 선점한 까닭이다. 북송 황정견(黃庭堅)에서 비롯된 강서시파(江西詩派)는 아예 기존 시의 내용이나 표현을 모방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대로 베끼지는 않고 아니고 나름대로 새로운 시어로 포장했다. 이처럼 기존 시의 뜻은 그대로 빌려오면서 새로운 시어로 포장하는 일을 환골법(換骨法)이라 했는데 바로 이 시와 같은 사례가 여기에 해당한다. 이 시를 읽으면 금방 이백의 「여산폭포를 바라보며(望廬山瀑布)」 첫째 구절이 떠오른다. “태양이 향로봉 비춰 보랏빛 연기 일고(日照香爐生紫煙)”. 이백은 여산 향로봉을 거대한 향로로 비유하고 향로봉에서 피어나는 운무를 향불 연기로 시화했다. 이 시는 이 구절 의도를 그대로 빌려와서 표현만 더 세밀하게 다듬었고, 향로봉 위 문수사리 탑을 향 연기 피워내는 한 가닥 향불로 간주했다. 황정견이 이백 시구를 자기 시로 재창조했다고는 하지만 시의(詩意)를 모방했다는 혐의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다. 금(金)나라 문인 왕약허(王若虛)는 강서시파의 이런 작법을 아예 ‘표절’이라고 힐난했다.(『호남시화(滹南詩話)』) 이미 송나라 시인들도 저러했거늘 그보다 거의 1천 년 뒤 지금 시인들은 어떠할까? 끝없이 새로운 시를 창조하는 시인들을 우리는 존경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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