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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동댐은 1971년 박정희 정권이 입안하고, 이듬해 시행에 들어간 경주관광종합개발계획 일환으로 건설됐다. 경주를 古都 분위기에 어울리게 개발한다는 취지를 표방한 이 개발계획은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진행됐으니, 하나가 경주 분지 일대에 산재하는 신라시대 유적 환경을 정비하는 ‘사적지구 정비계획’이며, 다른 하나는 그것을 관광과 연계한다는 취지에서 그것을 뒷받침하는 배후 시설인 ‘관광시설 계획’이 그것이니, 보문관광단지 개발은 두 번째 계획의 핵심이었다. 물론 이 두 계획을 위한 도로와 상하수도 정비 등 ‘관광환경 및 기반시설조성’ 계획도 다른 주축을 이룬다. 

 

덕동댐은 이 중에서도 보문관광단지 개발과 직접 연동한다. 1971년 건설부가 작성한 《경주관광개발종합계획》을 보면 먼저 관광시설 계획 투자 방향으로는 “첫째, 보문지(普門池) 일대를 국제적인 관광지로 조성하며, 둘째, 감포 유원지는 해병 사장(沙場)과 송림(松林)을 활용하여 해수욕장 및 청소년 하계운동지구로 조성하고, 셋째, 남산과 토함산에는 관광호텔과 유스호스텔을 제외한 그밖의 숙박시설이나 유원시설의 건설을 허용하지는 않되, 다만, 관광이나 등산에 편의를 제공하는 전망대나 휴게소 등의 간략한 시설만 허용한다”(동계획 84쪽) 것이었다.결과로 보면, 이 중에서도 보문관광단지에만 투자가 집중되고, 감포 유원지는 실상 백지화나 다름 없이 흐지부지하고 만다. 

 

보문관광단지는 애초 이 개발계획서에서는 이름이 ‘보문유원지’였으니, 그 골자를 보면 1962년 저수지로 조성된 면적 480천평 보문지 주변 일대를 관광시설로 개발한다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100천평 규모의 종합관광센타를 위시하여 300천평 규모의 골프장, 100천평 규모의 어린이공원, 유스호스텔, 낚시터, 케불카, 전망대, 휴게서를 계획하는 동시에 유흥단지를 조성한다”는 것이었으며, 아울러 보문지를 준설해 그에서 나오는 토량으로 용지 75, 200평을 매립 조성하여 시설용지로 사용하기로 했다. 



보문지 동측에 위치할 종합관광센타에는 1,100실 규모의 관광호텔을 건설할 계획이며, 외국인 관광갱을 위한 쇼핑센타를 건설함으로써 관광수익 증대를 기획했다. 


한데 1971년 이 계획에는 덕동댐 건설계획이 보이지 않는다. 혹 내가 찾지 못했는지는 모르겠다. 사업을 추진하면서 그 필요성이 대두함에 따라 나중에 끼어든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준다. 


이 사업에는 17개 기관이 참여하고, 발주한 공사는 170여 건이며 120여 개 건설회사가 참여한 대규모 개발사업이었다. 그 효율적인 추진을 위해 각 기관에서는 임시기구를 설립했으니, 사업을 총괄한 건설부가 1972년 1월 5일 경주개발건설사무소를 개설하고, 1973년 3월에는 문화공보부에서 사적관리사무소 개소했으며, 그 외에도 농업진흥공사에서는 경주사업소를, 국제관광공사(훗날 한국관광공사)에서는 경주관광개발공사를 설치했다. 

 

이 사업 종료 시점은 좀 묘하다. 1981년까지 추진할 계획이었지만, 1979년 6월 30일 건설부 경주개발건설사무소가 폐지된 시점을 종료 시점으로 봐얄 듯하다. 그 과정에서 사업비는 눈덩이처럼 불어나 1978년까지 추진한 1단계 사업에는 760억 원을 토입해 13개 사적지구를 정비하고 도로 120킬로, 하천개수 38킬로미터를 건설했다. 이에는 199만명이 동원됐다. 



농업진흥공사가 이 사업에서 맡은 일은 덕동댐 건설과 경지정리였다. 덕동댐은 “농업용수와 관광이수(이수가 무슨 뜻인지 모르겠음-인용자주) 개발을 위한 다목적 댐으로 축조되었다. 특히 덕동댐은 보문호의 수위 조절기능을 갖는 한편 경주시가지와 보문지구 및 불국사 지역에 하루 3만톤의 생활용수를 공급하고, 불국사 주변의 농경지 1,140ha 관개용수를 공급하게 되는 바, 여기까지에는 2,160m의 터널을 뚫어 용수를 공급함으로써 농가소득증대에도 기여”함을 표방했다. 


경주개발은 당시 경제 여건 상 국내 자체 추진이 불가능했다. 그에 따라 1974년 1월 4일 세계은행과 체결한 경주관광종합개발 차관 협정에 따라 외자를 도입한다. 협정 체결 당시 1달러당 환율은 483원이었다. 대통령 공고 제52호로 공포된 차관 협정에 의하면 차관 총액은 25.000천불이었고, 이를 5년 거치 20년 분할 상환한다는 조건이었다. 이자율은 연 7.25%였고, 상환 기간은 1981~2000년이었다.  


기관별 차관 배정액 중 농진공은 총사업비 4.830천원 중 2.650천원을 배정받았다. 그 구체적인 사업 내역을 보면 길이 169미터, 높이 50미터인 덕동댐 건설과 경지정리 330ha, 그리고  용지매입 기타였다. 다른 자료에 보면 농업진흥공사에 배당된 총사업비는 총 4.918.7백만원이라는 수치도 있는데, 그 차이가 왜 빚어지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덕동댐 건설에는 댐을 만들고, 주민들을 이주하며, 토지를 보상하는 일만 포함된 것이 아니었다. 그 주변을 우회하는 도로가 필요했다. 이 도로 건설은 건설부 몫으로 돌아갔다. 그에 따라 총 4.7킬로미터(4.8킬로라는 기록도 있다)에 이르는 덕동이설로 신설에는 총사업비 1.271천원 중 외자 차관 1.441천원이 배정됐다. 


한데 덕동댐 이설도로는 건설 이후 절개지가 무너지기도 했다. 그 비탈면 보수는 내무부 예산으로 집행하되 경주시 산림과에서 직영보수토록 했다. 이 지방 토질이 자갈과 모래가 섞인 특수토질이므로 사방공법으로 처리했다. 


덕동댐은 현대건설이 시공했으며, 이설도로는 삼부토건이 맡았다. 이설도로 건을 보면 총구간 4.8킬로미터에 폭은 12미터였고 투자액은 866.0천원이었고 이 중 순공사비가 745.0천원이고 74년 10월에 시작해 77년 9월에 완공했다.  


덕동댐은 75년 2월 3일에 시작해 77년 12월 28일에 완공했다. 


덕동댐 건설에 따른 그 수몰 예정지 '고선사지 발굴조사보고서'는 아래 원문을 제공한다. 


http://www.cha.go.kr/cop/bbs/selectBoardArticle.do;jsessionid=jh0gFEa1DAjJmytyEcv0CVOh10Ayit014DipuYxgNWbBO2SUgEduUg2UbsRADaEj?nttId=18995&bbsId=BBSMSTR_1021&pageIndex=411&pageUnit=10&searchCnd=&searchWrd=&ctgryLrcls=&ctgryMdcls=&ctgrySmcls=&ntcStartDt=&ntcEndDt=&searchUseYn=&mn=NS_03_07_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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