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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철이다. 그런 대명사로 내장산을 으뜸으로 꼽는다. 그 내장산에 백양사가 있다. 


조선초기 사가정 서거정의 다음 증언은 현재의 내장산 백양사 내력 중 고려말~조선초 일단을 증언하거니와, 이에 의하면, 당시에는 백암사라 일컬은 백양사가 실은 행촌 이암 집안 고성이씨 원찰이라는 사실이 그것이다. 그런 성격이 언제까지 지속했는지 알 수는 없으나, 사가정 당대까지 100년이나 이어졌다는 사실을 소홀히 보아넘길 수는 없다. 이는 당대 불교사를 고찰할 때도 여러 문제의식을 고취하거니와, 불교가 일방적인 탄압대상이었다는 데 대한 반론 역시 요즘 만만치 않거니와, 불교가 그리 호락호락하니 당하지는 아니했다. 강고한 유교사회에서도 불교는 여전히 효용이 있었으며, 특히나 가정 주도권을 장악한 이는 남자가 아니라 여성들이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정승 판서도 바깥에서나 정승 판서였지, 집안에서는 종에 지나지 않았다. "애비는 종이었다"? 모든 남자는 종이었다. 




서거정(徐居正, 1420~1488), 〈백암사로 돌아가는 도암 상인(道庵上人)을 보내다[送道庵上人還白奄寺]〉


백암사는 고려(高麗) 시중(侍中) 행촌(杏村) 이 문정공(李文貞公·이암(李嵒))의 원찰(願刹)인데, 그의 아들 평재(平齋) 문경공(文敬公 이강(李岡, 1333~1380))과 손자 용헌(容軒 이원(李原, 1368~1429)) 국로(國老)가 각기 선인(先人)의 뜻을 이어서, 출가한 자손 중에 조행(操行)이 있는 자를 가리거나 혹은 승려 중에 명망이 있는 자를 간택하여 이 절을 주관하게 함으로써 서로 전하여 수호해 온 지가 이미 100여 년이다. 지난번에는 행촌의 외증손(外曾孫)인 판선종사(判禪宗事) 송은(松隱) 몽대사(蒙大師)가 이 절을 주관하였고, 그의 고제(高弟)가 바로 도암(道庵) 성 상인(成上人)인데 송은이 도암에게 이 절을 전하였으니, 도암 또한 산문(山門)에서 숙망(宿望)이 있는 사람이다. 그가 이 절에 머무른 지 지금 거의 30여 년에 이르는 동안, 도풍(道風)을 크게 선양함으로써 명성 높은 고승(高僧)이 마치 비린내를 좋아하여 달려드는 개미처럼 도암을 흠앙(歆仰)하여 서로 다투어 달려왔다. 거듭 생각하건대 거정(居正)이 예전에 흥천사(興天寺)로 송은을 찾아뵈었더니, 송은이 거정을 족질(族姪)이라 하여 정성껏 대우해 주고 이어 송은에 대한 설(說)을 지어 달라고 부탁하였는데, 송은이 다시 백암사로 가게 되었다. 그 후 거정이 설을 지어 도암을 통해 부쳐 드렸더니, 뒤에 송은이 거정에게 이르기를 “그대의 설이 노승(老僧)의 기본 취지에 잘 부합한다.” 하고는 도암을 돌아보고 이르기를 “반드시 기록해 놓아야 한다.”고 하였다. 그 후 얼마 안 되어 송은이 시적(示寂)하였으므로 지금은 송은을 생각만 할 뿐 만날 수가 없었는데, 도암을 만나니 애오라지 스스로 위로가 된다. 

도암은 본디 양주(楊州) 불암리(佛巖里) 사람인데, 거정의 별업(別業) 또한 그 이웃에 있었다. 도암은 나이 나보다 다섯 살이 아래인데, 왕래하며 서로 종유한 지가 거의 50년이 되었다. 상인은 항상 백암사에 머무르다가 혹 경사(京師)에 오거든 반드시 먼저 나를 방문하곤 했는데, 금년 봄에는 흥천사에 와서 결하(結夏)를 하고 가을 기후가 점차 서늘해지자 또다시 산으로 돌아가려 하면서 재차 찾아와서 나에게 이별을 고하였다. 그리고 말하기를 “백암사는 철성부원군(鐵城府院君 이원(李原)의 자손들이 대대로 수호하는 원찰인데 공(公) 또한 행촌의 외현손(外玄孫)이니, 공의 한마디 말씀을 얻어서 길이 산문의 광영으로 삼고 싶습니다.” 하므로 거정이 말하기를 “행촌의 내외 자손으로 지금 조정에서 벼슬한 이는 수천 수백 인이요, 심지어는 왕실의 외척이 된 이도 있으니, 거정 같은 하찮은 외손(外孫)이 아니라도 반드시 그 일을 크게 빛내 줄 이가 있을 터인데 다시 무슨 말을 하겠는가.” 하였다. 그리고는 우선 절구(絶句) 5수를 써서 보내 드리고 겸하여 지주(地主) 조 사문(曺斯文)에게 부치는 바이다.


白奄寺, 高麗侍中杏村李文貞公願刹也。子平齋文敬公, 孫容軒國老, 承先志, 擇子孫之出家有操行者, 或選緇徒之有聲望者, 主寺, 相傳護守, 百有餘年。頃者。杏村外曾孫判禪宗事松隱蒙大師, 住是寺。其高弟曰‘道庵成上人’, 松隱傳之道庵, 道庵亦山門之有宿望者。駐是寺, 今幾三十餘年, 宣揚道風, 高禪韻釋, 歆仰爭趍, 如蟻慕羶。仍念居正昔謁松隱興天寺, 松隱以居正爲族姪, 待遇欵至, 仍索松隱說, 松隱還向白庵。居正作說, 因道庵奉寄。後松隱語居正曰:“子之說, 深得老僧本趣。” 顧語道庵曰:“當誌之。” 未幾, 松隱示寂, 今思松隱不得見, 見道庵, 聊復自慰。道庵本楊州佛巖里人, 居正別業, 亦在其鄰。道庵, 弟於我五歲, 往復相從, 幾五十年。上人常駐錫白庵, 或來京師, 必先訪我, 今春, 來興天寺結夏, 秋序漸凉, 亦復還山, 再來留別。且曰:“白庵, 鐵城子孫世守之願刹, 公亦杏村之外玄孫, 願得一語, 永爲山門之榮。” 居正曰:“杏村內外子孫, 今簪紱立朝者幾千百人, 至有貴接椒房戚里者, 雖非眇末外孫如居正者, 亦必有張皇者, 復何言哉?” 姑書絶句五首奉送, 兼寄地主曹斯文云。

 

 

남쪽에 이름난 가람이 이곳 백암이거늘   南國名藍是白庵,

누대엔 조금쯤 옅푸른 이내 서리었겠지   樓臺多少間晴嵐。

언제나 짚신 버선 차림으로 스님을 찾아  何時鞋襪尋師去,

밝은 달밤 쌍계에서 상냥한 얘기 나눌까  明月雙溪共軟談?* 

* 이 절에 쌍계루(雙溪樓)가 있는데, 이 목은(李牧隱) 선생이 그 기문을 썼다.   

 

가을바람 잦아들어 호수는 잔잔하거늘     秋風欲落湖水澄

머나먼 길 행장은 등나무 지팡이 하나      去去行藏一瘦藤。

온 산에 원학이야 당연히 창망할 테고      猿鶴滿山應悵望

청산은 전과같이 흰 구름 겹겹이겠지       靑山依舊白雲層。

 

천하에 명성 드날렸던 행촌 이 선생의      天下聲名李杏村

원찰을 지켜 길이 보존해야 당연하지       宜教願刹鎮長存。

자손들 나라 가득 얼기설기 하 많지만      子孫滿國多於織

묻노니 어떤 이가 성실하게 수호하리       且問何人衛守勤。

 

송풍과 나월이 이 산문 보호하여주거늘    松風蘿月護山門,

더구나 지주의 깊은 은혜까지 받았어라    何況深蒙地主恩。

사문 조 태수에게 한마디 알려드리노니    為報斯文曹太守,

나 역시 행촌 선생의 외현손이 된답니다   杏村吾亦外玄孫。

 

목은의 힘찬 문장 절 누각 잘 표현했고    牧老雄文賁寺樓,

삼봉의 뛰어난 필치도 풍치있고 멋지네   三峯妙筆亦風流。 

내 졸렬한 시구 소리높여 읽지마오         莫將拙句高聲讀,

산신령이 고개 끄덕이지 않을 줄 안다오  知有山靈不點頭。

 

《사가집(四佳集)》 권45 〈백암사로 돌아가는 도암 상인(道庵上人)을 보내다[送道庵上人還白奄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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