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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 계절의 노래(47)


아내에게[贈內] 


  당(唐) 이백(李白) / 김영문 選譯評 


일 년

삼백육십일을


날마다 취해

곤죽이 되니


그대 비록

이백의 부인이나


태상의 아내와

무엇이 다르겠소


三百六十日 

日日醉如泥 

雖爲李白婦 

何異太常妻


두보는 이백을 “주중선(酒中仙)”이라고 했다. 오죽하면 주태백(酒太白)이라는 말이 나왔을까? 이백의 「장진주(將進酒)」나 「월하독작(月下獨酌)」 같은 시는 술과 시가 어우러진 지극한 경지를 보여준다. 그러나 고주망태 이백의 아내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나도 젊은 시절 두주불사의 세월을 보낸 적이 있다. 만취해서 다음날 일어나지 못하고 누워 있으면 집안에 찬바람이 분다. 후한(後漢) 사람 주택(周澤)은 종묘제사를 관장하는 태상(太常) 벼슬을 맡아본 적이 있다. 사람이 고지식해서 1년 360일 중 359일 동안 목욕재계하고 종묘의 제례를 관장했다. 따라서 그의 아내는 명목상 남편은 있으나 실제로 남편이 없는 과부로 살아야 했다. 술을 좋아하는 세상의 고주망태들이여! 자신의 아내를 태상의 아내로 만들려 하는가?


중국 송나라 유행가 작 류영(柳永)은 '우림령(雨霖鈴)' 곡조인 《한선처절(寒蟬淒切)》로 시작하는 작품에서 "친구는 가다가 새벽 어디 쯤에서 술이 깰까?"라고 노래했습니다. 헤어짐이 아쉬워 끝없는 음주로 전송하다가, 친구가 드디어 저녁 출발하는 배로 떠나게 됩니다. "이렇게 마시고 출발하니, 내일 새벽 저 친구 술 깰 때 쯤이면 어디쯤 가고 있을까?"라는 뜻이 담긴 말이 주성하처(酒醒何處)다. 


우림령(雨霖鈴) ≪한선처절(寒蟬淒切)≫ 


  류영(柳永)


초가을 매미가 슬프게도 운다

객사에 저녁이 찾아오고

소나기는 막 그쳤네 

포장마차에서 끝없이 마시며 출발 않고 미적대니

빨리 출발하자 사공이 재촉하네 

두 손 잡고 마주보니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말없이 흐느끼기만 하네 

이렇게 떠나면

안개 낀 천리 물길을 따라

머나먼 강남 땅으로 어둑어둑 사라지리

예나 지금이나 이별은 마음 아프기 마련

게다가 초목 시들어 떨어지는 가을엔 더하다네

친구는 가다가 새벽 어디 쯤에서 술이 깰까?

버드나무 늘어진 강 언덕에서

새벽 바람 불고 달이 거의 사라질 무렵이리라

이렇게 떠나 내년 되면

좋은 시절 좋은 경치 헛되이 다가오리라

설령 좋은 시절 좋은 경치 온다 한들 누구와 즐길까?


寒蟬淒切, 對長亭晩, 驟雨初歇. 都車帳飮無緖, 留戀處、蘭舟催發. 執手相看淚眼, 竟無語凝噎. 念去去、千里煙波, 暮靄沈沈楚天闊. 多情自古傷離別. 更那堪、冷落淸秋節. 今宵酒醒何處, 楊柳岸、 曉風殘月. 此去經年, 應是良辰、好景虛設. 便縱有、千種風情, 更與何人說.


<주성하처 : 홍승직 作>


주당 홍승직 옹 페이스북 포스팅을 OEM식으로 재가공했다.  


  1. 연건동거사 2018.04.23 14:56 신고

    오 장서인인가요.

    하지만 도장 글귀로 봐서 용도가...

    술병 봉인용일듯.

  2. 한량 taeshik.kim 2018.04.23 19:29 신고

    술병이지요 ㅋㅋ

중국 북송(北宋)시대를 살다간 광세(曠世)의 박학이요, 절세(絶世)의 천재로 심괄(沈括·1031~1095)이란 괴짜가 있었으니, 왕안석(王安石)이란 사람이 일으킨 일대 국가개혁 프로젝트인 변법(變法) 운동에 적극적으로 동조하고 참여한 그가 저술한 문헌으로 지금도 전하면서 널리 읽히고 있는 명저로 《몽계필담》(夢溪筆談)이 있을 지니라.

 

내 오늘은 이 땅의 주당(酒黨)들에게 이 책 한 구절에 수록된 어떤 고주망태 일화를 소개하고자 하노라. 본론에 들어가기 전, 내 주위로 아래에서 말하는 주당과 비슷한 부류가 많으니, 폭탄주에 찌들어 사는 원시인들이 아직 내가 다니는 회사에도 더러 포진하고 있을 지니,

 

이 자리에서 내가 선배가 대부분인 그들에게 이제부턴 인생 똑바로 살라고 훈계는 더 이상 못하겠노라. 대신 나는 그들 주당, 나아가 때로는 고주망태를 방불하는 그들 선배에게 이렇게 외치노라.

 

부디 부디 계속 계속 줄곧 줄곧 맨날 맨말

술만 퍼 마시옵소서.

 

《몽계필담》은 전 26권으로 구성돼 있을 지니, 권(卷)이란 요즘 출판계 용어를 빌리건대 챕터(chapter), or 장章이라 하는 것이니 이 책 卷 第九는 제목이 인사(人事. 개중 하나다)이니, 인사야 말할 나위 없이 사람들에 얽힌 일화를 말할 지니라.

 

일생이 소개된 사람 중 하나가 석만경(石曼卿)이라, 이에 실린 그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을 지니, 이 땅의 주당들이여 이 석만경의 일생이 주는 교훈을 부디 부디 새기면서 오늘 밤도 폭탄주와 함께 할 지니라.

 

석만경(石曼卿)이란 사람은 폭음하기를 즐겼다. 그래서 포의(布衣)인 유잠(劉潛)이란 사람과는 친구가 되었다. 일찍이 석만경이 해주(海州)란 곳에서 통판(通判)을 하고 있었는데 유잠이 그를 찾아왔다. 만경이 석언(石堰)이란 곳에서 그를 맞이하고는 유잠과 함께 고주망태가 되도록 퍼 마셨다.

 

그러다가 밤이 되도록 마시다가 한밤중이 되어 술이 바닥나려 하자 배에 실려 있는 한 말 남짓한 식초(醋)를 발견하고는 이내 그것을 가져다가 술에다가 부어 마셨다. 다음날이 되자 술과 식초까지 모조리 바닥이 났다.

 

석만경은 손님과 어울릴 때마다 통음(痛?)을 하고는 머리를 산발하고 신발을 벗어 놓고는 목가(木枷)를 뒤집어쓰고 앉아버린곤 했는데 그것을 일러 ‘수인’(囚?)이라 했다. 또 나뭇가지 위에서 마시기도 했는데 그것을 일러 ‘소음’(巢?)이라 했다. 또한 곡물 뿌리로 그 자신을 묶어버리고는 머리르 빼어서 술을 마시고 다 마신 뒤에는 다시 목을 목을 넣곤 했는데 이를 ‘별음’(鱉?)이라 했다. 술 쳐 마시고 함부로 놀아대는 꼴이 이와 같았다.

 

또 어떤 때는 구석에 숨었다가 나와서 마시고는 다시 그 구석에 숨곤 했는데 이것은 ‘문슬암’이라 했다.

 

석만경은 하루라도 취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

 

인종(仁宗) 황제가 그의 재주를 몹시도 아껴서 일찍이 대신을 불러 말하기를 석만경에게 술을 끊도록 했다. 연년(延年)이 이 말을 듣고는 술을 마시지 않았는데 그러다가 결국 병을 얻어 죽고 말았다. 

 

石曼卿喜豪飲,與布衣劉潛為友。嘗通判海州,劉潛來訪之,曼卿迎之於石闥堰,與潛劇飲。中夜酒欲竭,顧船中有醋鬥余,乃傾入酒中並飲之。至明日,酒醋俱盡。每與客痛飲,露發跣足,着械而坐。謂之「囚飲 」。飲于木杪,謂之「巢飲」。以束之 ,引首出飲,復就束,謂之「鱉飲 」。其狂縱大率如此。廨後為一庵,常臥其間,名之日「捫虱庵 」。未嘗一日不醉。仁宗愛其才,嘗對輔臣言,欲其戒酒,延年聞之。因不飲,遂成疾而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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