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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묘지6

집단반발에 한 발 물러난 총독부, 묘지규칙 개정 개설 새로운 당국자가 새로운 시정을 통해 얼마나 민정民情에 적절하게 시세의 정곡을 파 고드는 데 힘썼는가는 앞서 살펴본 관제 관련 외에 민의 창달에 얼마나 신경을 썼는가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아래에 두세 가지 사항을 싣기로 한다. 1. ‘묘지규칙’의 개정 예로부터 조선의 존족尊族 분묘 존중 사상은 그 뿌리가 자못 깊다. 전통적으로 내려 온 선조를 숭배하는 관념과 [322] 유학에서 전래된 웃어른을 존경하는 관습과 풍수지리설의 관념 세 가지가 결합해, 분묘의 위치와 형상은 현세에서 인륜의 표준이자 미래의 가문의 번영을 지배한다고 여겨 온 것이다. 이로 인해 분묘지를 선정하는 데에 최대의 노력을 기울이고 몰래 묻거나暗葬 무덤을 훔치는偸塚 일이 성행해, 국토가 황폐해지고 소송이 끊이지 않았으며 공공의 .. 2024. 3. 6.
영산강 유역의 벌집형 고분과 토지이용률 나는 앞서 여러 번 경제적인 이유, 특히 토지 이용률 문제로 신라 적석목곽분이 퇴출되었다고 말했으니, 그에서 비롯되어 봉분 하나에 여러 사람, 특히 부부를 살처분하는 석실분이 등장했다는 말을 했거니와, 이런 문제에 봉착하기는 영산강 유역도 마찬가지라. 실로 희한하게도 저 머나먼 경주 땅에서 경제성 제로인 적석목곽분이 퇴출되던 6세기 무렵, 영산강 유역에서도 똑같은 문제에 봉착했으니, 이들은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이 문제를 타개해나가니 그것이 바로 벌집형 고분(아파트형 고분이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이다. 이 벌집형 고분은 그 자체가 씨족, 혹은 가족공동체라. 봉분 하나에다가 매장주체시설을 많게는 수십 개를 조성한 공동묘지를 말한다. 동시대 다른 곳 공동묘지가 구역으로 중심으로 발달했다면, 이곳은 봉분 하나.. 2024. 1. 24.
교하교성交河故城 인근에서 찾은 조씨趙氏 묘표墓表 석 장 묘표墓表는 무덤 주인이 누구인지 글을 써서 묻어 놓은 것이다. 중국 고고학자 황문필은 서북과학고사단 일원으로 1928년 봄과 1930년 봄 두 차례에 걸쳐 투루판 교하고성交河故城 인근 구서溝西·구북溝北·구남溝南의 무덤을 발굴했다. 구북에서 발견한 몇 기를 제외하면 대부분은 6~7세기 이 지역에 거주한 한인漢人 무덤이었다. 동同 시기 투루판 한인들(또는 중국어 사용자들)은 가문 단위로 무덤을 만들었다. 각기 돌로 낮은 담장을 쌓아 영역을 구분하고 이 안에 하나씩 무덤을 조성했다. 이 일족 공동묘지를 영塋이라 부른다. 황문필이 구서에서 발견한 17개 영瑩 중에서 조씨趙氏 가문 공동묘지인 조영趙塋에는 7개 무덤이 있다. 그중 두 번째 무덤에서는 묘표 석 장이 나왔다. 1. 가장 이른 시기 것은 부인 한씨韓氏 .. 2020. 12. 28.
17th Cemetery Found in Japan Archaeologists have been found the remains of more than 1,500 people at a cemetery site in Osaka, which is located on the south-central coast of the island of Honshu, Japan. https://www.google.com/maps/@34.7023236,135.4941055,15.75z Google Maps Find local businesses, view maps and get driving directions in Google Maps. www.google.com Founded in the early seventeenth century during the Edo period.. 2020. 8. 27.
인더스문명은 평화로왔던 지상천국인가 (5) 신동훈 (申東勳·서울대 체질인류학 및 고병리연구실) 앞에서 말했듯이 인더스 문명 도시 유적에서는 공공적인 성격이 강한 citadel 구역과 사람들이 거주한 lower town이 있으며 후자는 매우 균일한 크기의 거주 지역으로 분할되어 있어 일견해서는 개인간 정치경제적 우위를 확인하기가 어렵다고 하였다. 나중에 이 부분에 대해 다시 쓸 기회가 또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지금까지 인더스 문명권에서 "아마도 정치적 권력자"였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묘사했을것이라고 판단하는 유물이 몇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아래의 흉상이다. 인더스 문명에서 유명한 "Priest-King". 이름에서 볼 수 있듯이 제사장과 왕의 성격을 한몸에 가지고 있는 존재였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당시 인더스 문명 도시의 권력 정점에 있.. 2019. 4. 26.
King Muryeong's 'Big Tomb', or the Graveyard of his Clan? King Muryeong's 'Big Tomb', or the Graveyard of his Clan?Kim, Tae-shik The discovery and excavation of King Muryeong's tomb in 1971 has been great help to solve many questions or mysteries concerning the history of Baekje, but at the same time it has brought on many problems. In that respect its discovery was not only a great blessing, especially to historians, but it also remains to a huge agon.. 2018. 4.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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