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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國志 권30 魏書 30 東夷傳 高句麗 : 백고(伯固)가 죽고 두 아들이 있었는데, 큰 아들은 발기(拔奇), 작은 아들은 이이모(伊夷模)였다. 拔奇는 어질지 못하여, 國人들이 함께 伊夷模를 옹립하여 王으로 삼았다. 伯固 때부터 자주 遼東을 노략질하였고, 또 流亡한 胡[族] 5백여 戶를 받아들였다. 建安 연간(196~219. 高句麗 故國川王 18~山上王 23)에 공손강(公孫康)이 군대를 보내어 고구려를 공격하여 격파하고 읍락을 불태웠다. 拔奇는 兄이면서도 왕이 되지 못한 것을 원망하여, 연노부(涓奴部)의 [大]加와 함께 각기 下戶 3만명을 이끌고 [公孫]康에게 투항하였다가 돌아와서 沸流水 유역에 옮겨 살았다. [지난 날] 항복했던 胡[族]도 伊夷模를 배반하므로 伊夷模는 새로 나라를 세웠는데 오늘날 [고구려가] 있는 곳이 이곳이다. 拔奇는 드디어 遼東으로 건너가고, 그 아들은 [高]句麗에 계속 머물렀는데, 지금 고추가(古雛加) 교위거(駮位居)가 바로 그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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