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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붉은악마 태극기 포쇄, 2012년 10월 5일.


2014년 8월 25일이었다. 이제는 문화체육관광위로 분산한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한선교 새누리당 의원(용인병)이 기자들에게 보도자료 하나를 배포했으니, 다음과 같은 제목이 무척이나 자극적이었다. 

2002 한·일 월드컵 붉은악마 대형 태극기......어디에?

보도자료에 의하면, 2002년 대한민국을 열광의 도가니에 빠뜨린 한일 월드컵축구대회 당시, 경기장에서 붉은 악마가 사용한 대형 태극기가 현재는 어디에 있을까? 이를 이 의원실에서 최근 조사한 결과, 국립민속박물관 수장고 밖 복도 한편에 방치되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고 한다. 

한 의원실이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말까지 국립민속박물관 소장품은 13만3314점으로 15개 수장고에 나누어 수장됐지만 수장률이 125.27%로 수장고가 포화상태인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모빌랙 등을 설치해 공간 효율을 높였다지만 수장고가 포화상태인 까닭에 일부 소장품은 여전히 수장고 밖 복도에 보관 중이며, 2002년 월드컵에서 붉은악마가 사용한 태극기도 수장고 문제가 있어 복도 한켠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한 의원실에서는 그것이 나무상자에 담겨 수장고 복도에 보관 중인 사진을 첨부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한 의원은 "민속박물관 특성상 민예품, 근현대 생활용품, 농기구, 상여 등 대형 소장품 비중이 높으며 매년 소장유물이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어 대책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라고 하면서, 국립민속박물관 자료에 따르면 소장품은 연평균 7700점이 증가 추세라 이런 수장 환경이 지속된다면 유물의 안전과 보존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경고했다. 

나아가 한 의원은 "어보(御寶)나 숭례문 같은 국보도 중요하지만 2002년 한일 월드컵 붉은악마 대형 태극기처럼 우리네 생활문화 자료를 잘 보존하는 것도 우리의 임무라고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 보도자료 배포 당시 국립민속박물관은 보물 1318호(신구법천문도), 중요민속자료 230호(산청전주최씨고령댁상여) 등 127점, 등록문화재 1,154점을 비롯해 2002년 한·일 월드컵 관련 자료로 붉은악마 대형 태극기와 응원도구, 기념품 등 1162건 2628점 등을 보관 중이라고 한 의원실에 보고했다. 

이 보도자료는 전후맥락으로 볼 적에 당시 수장고 문제에 처한 국립민속박물관을 한선교 의원실이 돕겠다는 차원에서 배포한 것으로 보인다. 이만큼 수장고 문제가 처참하니, 이를 수용하기 위한 적극적인 수장고 확충보완이 필요하다는 의미에서, 마침 그런 사업을 추진 중인 박물관 측을 지원사격하겠다는 뜻에서 제기한 것으로 안다. 

한데 이 보도자료는 뜻하지 않은 역풍을 초래했으니, 다름 아닌 저 보도자료 제목이 저런 소중한 생활사 자료를 국립민속박물관이 제대로 보관 관리하지 못하고, 방치하는 듯이 비쳤기 때문이다. 실제 이 보도자료를 토대로 하는 관련 보도에 달린 댓글들을 보면 민속박물관을 성토하는 내용이 주류를 이루었다고 기억한다. 이에 박물관 역시 적지 않이 당황했다고 기억한다. 

하지만 이런 인식 혹은 보도 통용이 박물관으로서는 못내 억울하기 짝이 없었으니, 그것은 다름 아니라, 어느 누구도 박물관 수집 대상으로 삼지 않은 한일 월드컵 관련 자료를 민속박물관이 선제적으로 모으기 시작한 까닭이다. 이에서는 나에 얽힌 작은 사연도 있으니, 월드컵 개최 당시 문화부 소속 기자인 나는 한때 체육부 기자였다는 경력이 고려되어, 월드컵 기간 그 취재에 잠깐 차출되기도 했거니와, 그 과정에서 나한테 배정된 미디어 관련 자료 일체를 민속박물관에 기증한 것이다. 취재 비표며, 관람권이며, 믹스트존 인터뷰권 등등을 서재에서 찾아내고는 마침 민속박물관이 월드컵 관련 자료를 수집 중이라기에, 미디어 관련 자료도 필요할 법 해서, 그것들을 내놓은 것이다. 

그러니 민속박물관으로서는 민속박물관이 그렇게도 소중한 월드컵 관련 유물을 제대로 돌보지도 않은 채 박물관 수장고 복도에 패대쳤다는 듯이 보이는 저런 보도에 못내 섭섭함을 금치 못했던 것이다. 하긴 박물관으로서는 꼭 해야한다는 규정도 없는 일, 어느 누구도 당시까지는 쳐다보지도 않던 월드컵 관련 자료를 수집했다가 이런 비난에 쳐하니, 얼마나 억울하겠는가? 

첨부사진은 2002년 붉은악마 태극기를 경복궁 경내 국립민속박물관 건물 지붕에서 포쇄하는 장면이다. 포쇄란 습기를 말리고, 병충해를 제거하는 작업으로 간단히 말해 이불을 햇볕에 말리는 작업과 같다. 박물관에 의하면 사진이 포착한 포쇄는 2012년 10월 5일 일이라 한다.  

수장고 복도에 방치? 수장고 복도에 있다 해서 방치라는 등식은 성립할 수 없다. 복도도 수장고 일부다. 다만, 민박 수장고를 확보해야 한다는 당위는 성립하니, 그런 점에서 한선교 의원실에서도 이 점에 방점을 두고 문제의 보도자료를 뿌린 것으로 안다. 하지만 그 진의가 무엇이건 이를 국가기관에서 방치했다는 관점이 두드러지게 드러난 점은 두고두고 아쉬움을 남긴다.

한일 월드컵 관련 자료를 국가기관인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수집하기 시작했다는 점은 중대한 의미를 지닌다. 이 아이디어를 제출한 사람과 민박은 훈포장을 받아야 마땅하다. 그럼에도 이를 방치했느니 하는 따위로 몰아부치거나 저런 식으로 일반에 통용된다면 누가 저런 일을 애써 하겠는가? 

민속박물관 수장고 문제는 그 이전 논란과 맞물려 추후 별도로 정리할 기회가 있으리라 본다. 


같은 사람인데도 기자가 보는 사람과 그 조직에서 보는 사람이 달라 곤혹스러울 때가 무척이나 많다. 비단 기자뿐이겠는가? 기자를 대하는 그쪽에서는 늘 기자를 기자로 대하기 마련이며, 그래서 무척이나 말 한 마디를 조심해야 하며, 반드시 해야 말도 한껏 정제해서 해야 한다. 그런 까닭에 소위 취재원으로 만나는 사람한테 기자가 안 좋은 인상을 지니기는 쉽지가 않다. 내가 기자인 줄 알고 나를 만나는 사람은 언제나 나한테는 예의 바르고, 공손하게 보이기 십상이다. 

오늘 우리 곁을 떠난 박호원 선생도 나한테 그리 박힌 인상인지 못내 저어함이 있기는 하지만, 이래저래 그가 생평 직장처럼 삼아 보낸 국립민속박물관 사람들한테도 수소문한 결과와 내가 생전에 그이한테 받은 인상은 무척이나 합치하는 면이 많아 적이 안심이 된다. 그는 어떤 사람인가? 

그는 시종 내성적이었다. 말수가 거의 없는 편이었고, 내가 민속박물관 담당 기자인 까닭에 부러 그러했는지는 모르지만, 이상하게도 수줍음을 유난히 많이 탄다는 인상을 시종일관 주었다. 숫기 없는 남자? 뭐 그런 느낌이 많은 형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잘 웃었다. 수줍음을 장착한 채 그 큰 눈망울을 뜨고 웃는 모습은 뭐랄까? 걸핏하면 거짓말을 일삼고는 눈치를 보는 어린아해들 같았다. 내가 아는 그는 이렇게 시종일관 선했다. 그런 까닭에 취재원으로서 좋은 사람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재미는 없었으니깐 말이다. 

정확한 시점을 당장 확인이 곤란하나, 1988년 학예연구사로 몸을 담기 시작한 국립민속박물관을 그는 2011년 어느 무렵 훌쩍 떠났다. 그 떠나는 과정을 나도 어느 정도 들어 알거니와, 지금은 공개하기 힘든 저간의 사정이 있어 혹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그때 말하기로 하고, 아무튼 그렇게 떠난 민속박물관을 뒤로하고 그는 민속 전문 출판사로 명망 있는 민속원에 둥지를 튼 것으로 안다. 

당시 민속원은 선대 회장 업적을 계승한 홍종화 사장 시대가 막 개막한 상태였으니, 이런 민속원과 의기투합해 이 출판사로 부정기로 출근하면서 민속학 관련 출판을 기획했으니, 이것이 바로 그가 편집주간이라는 타이틀로 선보이기 시작한 '아르케북스 시리즈'다. 오늘 현재 총서 105종을 헤아리는 아르케북스는 민속학은 물론 역사학, 인류학 등 다양한 학문 연구 성과를 소개하는 총서로 그 참신성과 디자인 등에서 학계의 호평을 산다. 이 시리즈는 박호원 선생이 없었으면 있을 수 없는 기획이다. 이 시리즈를 볼 때면 언제나 그를 생각하게 될 것이다. 

퇴직 이후 나는 아마 한 번도 그를 만나지는 못했다고 기억한다. 혹 모르겠다. 이런저런 자리에 한 두번 스쳤을지는. 그렇게 민박을 훌쩍 떠난 그가 7년 만에 들고온 소식이 타계였다. 그것도 본인이 타계했다는 청천벽력이었다. 

정치인 노회찬이 실로 어처구니 없는 투신자살로 생을 마감한 데 이어 소설가 최인훈 선생까지 타계한 소식이 전해진 어제, 민속학계 지인이 "박호원 선생도 쓰러져서 뇌사 상태"라는 말을 전했다. 그렇게 쓰러진 선생이 이틀만인 오늘 낮에 갔다. 영원히 갔다. 아르케북스 총서를 남기고는 표표히 이 세상을 하직하고 말았다. 

듣자니 그는 지난 22일 오후 4시 조금 넘어 집안에서 쓰러졌다고 한다. 그날이 집안 제삿날이었는데, 제사 준비를 하는 와중에 집안 욕실에서 샤워를 하다가 그만 쓰러져 불과 20분만에 병원에 후송되었지만, 이미 뇌사 판정을 받고는 영원히 일어나지 못했다 한다. 선생은 생전에 이미 장기기증을 약속했다고 한다. 부질없는 연명치료는 거부한 셈이다. 이런 고인 의견을 반영해 산소 마스크를 떼어냈다고 한다. 그가 산화함으로써 남긴 장기들은 아마도 다른 생명을 살리는 데 쓰일 것이다. 수줍음 많은 그야말로 의인이지 않을까? 

그는 일찍이 형을 불의의 교통사고로 잃었다. 형이 30대였을 때라고 한다. 형이 죽자 그 형수와 조카들을 돌보았다고 한다. 그는 민속박물관 사내 커플이다. 이종철 관장 시절 그 비서와 연애를 해서 가정을 꾸렸다. 먼저 박물관을 떠난 부인은 나중에 남편이 박물관을 명예퇴직한다 하자, 군말없이 그 뜻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그의 간단한 생애를 다음 부고 기사로 정리했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마을신앙 연구한 민속학자 박호원 박사 별세

<국립민속박물관>


어제 문화체육관광부 인사 중 국장급 전보를 보면 박물관 학예직 인사 이동이 있었으니, 이에 따르면 고위공무원단인 국립전주박물관 김승희 관장이 같은 고공단인 국립광주박물관장으로 가고, 문체부 산하 다른 문화기관인 국립민속박물관 천진기 관장이 국립중앙박물관 산하 고공단 자리인 국립전주박물관장으로 이동했다. 이번 학예직 고공단 인사는 송의정 국립광주박물관장이 퇴임함에 따른 후속조치라는 성격과 더불어 다른 측면도 있으니, 다름 아닌 민속박물관 인사 적체 문제가 도사린다는 점이 그것이다.


직제로 보면 국립민속박물관은 비록 그 직급이 차관급인 국립중앙박물관에 견주어 낮기는 하지만, 엄연히 같은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소속기관으로, 서로에 대해서는 엄격한 독립성을 지닌다. 문체부 산하에 이런 유사 기관으로 이명박 정부 시절에 만든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있고, 나아가 국립현대미술관도 있다. 


하지만 이들 박물관˙미술관은 규모 차이에 따른 인사 적체 문제가 기관별로 그 심각성이 현격해, 국립중앙박물관은 차관급(대통령령에 따른 차관급이라 다른 정무직 청급 청장과는 위상이 다르다) 관장 산하에 학예직급으로는 학예연구실장과 경주박물관장, 광주박물관장, 전주박물관장이 고공단이라 이들끼리 호상간 수평이동이 가능하다. 다른 박물관 미술관에 견주어 중앙박물관은 그나마 고공단 인사 적체를 해소할 여지가 많다는 뜻이다. 


그에 견주어 민속박물관은 단일 조직이라, 산하에 지방박물관이 없고 고공단은 오직 관장 한 자리뿐이라 인사적체가 극심할 수밖에 없다. 이런 적체는 다른 무엇보다 그 관장 재임 기간이 대체로 다른 기관의 그것에 견주어서는 유난히 긴 특징을 지니는 일로 발전한다. 이번에 물러난 천진기 관장만 해도, 1962년생이라, 만 49세이던 2011년 5월에 관장에 취임해 물경 7년 1개월을 재직하다가 이번에 중앙박물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천진기 관장 이동은 장기 집권에 따른 기관 피로감을 해소하자는 뜻에서 문체부가 그리한 것으로 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런 수평 이동 자체가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같은 고공단이라 해도 민속박물관과 전주박물관은 격이 현격히 다르다. 내가 정확한 자료가 없어 자신은 없으나, 예산과 조직 규모가 비교가 되지 않아, 민속박물관이 수퍼마켓 혹은 백화점이라면 전주박물관은 말만 고공단 기관이지 구멍가게, 포장마차에 지나지 않는다. 더불어 기관 성격 차이도 문제로 지적된다. 


중앙박물관과 민속박물관은 성격이 판이하다. 중앙박물관은 언뜻 그것이 커버하는 영역이 백화점을 방불하는 듯하나, 그 근간은 말할 것도 없이 고고학과 미술사학이 양대 산맥이거니와, 그에 곁들여 요즘은 보존과학이니 역사학이니 하는 인접 학문을 끌어들이는 형국이기는 하나, 그것이 차지하는 위치는 새발의 피에 지나지 않는다. 더구나 민속학 영역은 그것을 전담하는 민속박물관이 따로 있는 마당에, 민속과는 눈꼽만큼도 관련이 없다고 봐도 대과가 없다. 


그럼에도 유독 산하 지방박물관 중에서는 전주박물관이 민속학과 그나마 인연이 깊은 편이었으니, 이 박물관이 애초에 민속학으로 출발해서가 아니라, 어찌하다 보니 그리된 것일 뿐이니, 이에는 지금의 국립민속박물관을 논할 때 빠질 수 없는 이종철이라는 인물의 이력에서 기인한다. 서울대 고고인류학과 2회 출신인 이종철은 이상하게도 대학 졸업 후 문화재관리국 학예사 입사와 더불어 민속학에 투신했으니, 그런 그가 나중에 연구관 진급과 더불어 국박으로 가서는 광주박물관을 거쳐 전주박물관장을 역임하게 되거니와, 이런 기관 이력에서 전주박물관은 유독 민속학과 연관이 깊은 곳으로 인식되기에 이른다. 이번 천진기 관장의 전주박물관장 이동에 대해서도 배기동 중앙박물관장이 그제 사석에서 하는 말을 듣자니 "전주는 양반문화와 관련이 깊어 민속학 전공자와도 어울리는 곳"이라고 하거니와, 어쨌거나 그 인사이동을 정당화하고자 하는 억지 논리임은 말할 나위가 없다. 전주박물관이 무슨 민속학과 연관이 있다는 말인가?  


하지만 이번 인사 이동이 지닌 가장 큰 문제점은 중앙박물관에 견주어 엄연히 독립개체로서 전공 역시 다르고, 따라서 기관 성격도 판이한 민속박물관이 그 대표인 관장을 중앙박물관 산하 일개 지방박물관장으로 갔으니, 비록 직급은 같은 고공단이라 해도, 이는 민속박물관으로서는 치욕 중의 상치욕에 다름 아니다. 이번 인사는 가뜩이나 중앙박물관이 바라보는 민속박물관은 언제나 작은집이었고, 언제나 아래라는 인식을 더욱 강화하는 꼴을 빚고 말았다. 


이제 관심은 자연 후임 민속박물관장 인선에 쏠린다. 한데 이번 인사에서는 이상하게도 민속박물관장은 쏙 빼내갔으면서도 그 후임은 발령내지 아니했다. 내가 알기로 민속박물관장은 공모직이었다. 옛날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고, 천진기 관장이 2011년 임명될 당시 그렇게 공모직으로 개방됐다. 그런 까닭에 나는 당연히 이번에도 그런 공모 방식을 통해 민속박물관 내부, 혹은 외부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하는 공모를 실시할 줄로 알았다. 한데 알아 보니, 공모가 아니란다. 공모였다가 일방적 임명직으로 도로아미타불 시켰다고 한다. 대체 언제, 무슨 일로 이리 옛날로 돌아갔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한데 이번 인사에서 일단 공석으로 비워둔 민속박물관장 자리에 중앙박물관 출신자를 앉힌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중앙박물관 혹은 그 상급기관인 문체부로서는 중박 고공단 한 자리를 민속박물관에 내어주었으니, 그 반대급부로써 당연히 중박 출신자가 그 자리로 가야 한다고 주장 혹은 생각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과연 그런가? 


들리는 말로는 민속박물관장에 고공단 진급이 예정된 현재의 중앙박물관 본부 부장급 인사 두 명이 후보자로 내정되었다 한다. 이들은 고공단 시험에는 합격하고, 그에 맞은 직급 배당을 기다리는 사람들이다. 연구관 경력으로 보면, 이들은 현재의 민속박물관 과장들과 민박 출신으로 다른 기관에 나가 있는 다른 과장급들에 견주어 한참이나 후배다. 민속박물관에는 학예직 과장이 세 명인가 네 명이 있고, 문화재청 산하 몇 곳에 민박 출신 과장이 포진한다. 나아가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같은 데도 민박 출신자들이 나가 있다. 


이처럼 다른 유사 기관들에 견주어 유독 민박은 내부 출신자들을 곳곳에 내보냈다. 보내고 싶어서 보냈겠는가? 내부 인사 적체가 극심해 보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고공단이라야 꼴랑 관장 한 자리 뿐이니 그럴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이런 고참 과장들이 민박 자체와 외부에 제법 있다. 그런 판국에 이들을 모조리 제끼고 전연 성격도 다르고 전공도 다른 고고학 혹은 미술사 전공자들을 민박관장에 내려 꽃아야 하는가? 이리 되면 민속학 전공자들의 자존심은 대체 어디로 간다는 말인가?  


정리하건대 민속관장이 중박 산하 지방박물관장으로 갔다 해서, 그에 대한 반대급부로, 중박 출신자를 민속박물관장으로 내려꽂아서는 안 된다. 이건 치욕이며 능멸이다. 민속박물관도 인사 숨통을 트야 한다. 관장 자리 하나가 비어야 그 숨통이 트인다는 역설을 문체부나 중앙박물관도 인식해야 한다.


문체부 산하에는 앞서 말한 대로 유사 박물관 미술관이 더러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인사 교류 차원을 제외하고 중앙박물관 출신이 미술관을 간 적이 없고, 그 반대도 없으며, 나아가 신생급에 속하는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는 그 관장 자리를 중앙박물관 출신이 언감생심 꿈도 못 꾼다. 그 역사가 일천하기 짝이 없는 역사박물관에 대해 이럴진댄, 그 역사가 환갑 진갑을 이미 다 지난 민속박물관을 중앙박물관이 어찌 접수한단 말인가? 


나는 민속박물관이라 해서 반드시 민속학 전공자이거나, 혹은 민속박물관 내부 혹은 그 출신 외부인이 되어야 한다고는 주장하고픈 생각이 가을 터럭만큼도 없다. 민속학 전공자가 아닌 사람도, 예컨대 행정가 출신이나 정치인이라 해서 민속박물관을 운영하지 말아야 한다는 법도 없을 뿐더러, 그래야 한다고도 주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민속박물관을 이끌 관련 내·외부 인사가 널려있는 마당에, 더구나 중앙박물관 인사 적체 해소 차원 혹은 그 반대 급부 인사교유라는 차원에서 민속박물관 사람을 받았으니, 민속박물관도 한 자리를 내어놓아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워 중앙박물관 출신 민박 관장이 임명될 수는 없는 법이다. 민박 사람이 당연히 민박관장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이 작은 기관을 지킨 사람들에 대한 자존심을 지켜주는 한 조치다. 나아가 이 참에 민박을 중박 산하기관처럼 여기는 인식 자체도 박멸해야 한다. 


나아가 이것이 인사교유 차원인가? 중박이 한 자리 내어주었으니 민박도 하나 줘야 한다? 웃기는 소리다. 중박에 난 고공단 자리 하나는 광주박물관장이라는 고공단 자리가 정년 퇴직으로 비어서 생긴 자리다. 나아가 내년에는 경주박물관장도 퇴임한다. 고공단 자리 하나가 더 비게 되어 있다. 중박이나 문체부 논리는 어불성설이다. 


중박과 민박은 반딧불과 번개불만큼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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