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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 권 제20(고구려본기 제8) 영양왕본기 : 23년(612) 6월 기미(己未)[11일]…처음 (수나라) 9군이 요하를 건넜을 때는 무릇 30만 5천 명이었는데, 요동성으로 돌아가 다달았을 때는 겨우 2천7백 명이었으며, 쌓아둔 기계가 억만을 헤아렸으나 모두 잃어버려 없어졌다. 황제가 크게 노하여 [우문]술 등을 쇠사슬로 묶고 계묘일[25일]에 [군대를] 이끌고 돌아갔다. 이전에 백제왕 장(璋)이 사신을 보내 고구려를 칠 것을 청하니, 황제가 시켜 우리 나라 동정을 엿보게 했으나, 장은 안으로 우리나라와 몰래 통하였다. 수나라 군대가 장차 출동하려 하자, 장은 그 신하 국지모(國智牟)를 수나라에 들여보내 출병할 시기를 알려달라 청하니, 황제가 크게 기뻐하며 후하게 상을 주고, 상서기부랑(尙書起部郞) 석률(席律)을 백제에 보내 모일 시기를 알렸다. 수나라 군대가 요하를 건너자, 백제도 역시 국경에 군사를 엄히 배치하고 말로는 수나라를 돕는다고 하면서 실은 양다리를 걸쳤다. 이 정벌에서 [수나라는] 다만 요수 서쪽에서 우리 무려라(武厲邏)를 함락하고, 요동군과 통정진(通定鎭)을 두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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