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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 계절의 노래(88)


주씨 전원(周氏园居)


  송 미불(米芾) / 김영문 選譯評


높이 핀 꽃 치렁치렁

마루 밝게 비추고


연못 물 찰랑찰랑

섬돌 둘러 소리 내네


정적 속 향기 들으며

권태에서 깨어나고


빗속에 일 없으니

한가한 마음 보이네


高花落落照軒明, 沼水涓涓繞砌聲. 靜裏聞香醒倦思, 雨中無事見閒情.


“분수처럼 흩어지는 푸른 종소리” 고등학교 때 이 구절을 두고 이미지즘의 공감각적 표현이라고 배웠다. “푸른”은 시각이고 “종소리”는 청각인데 그것이 엇섞여 인식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 시 해설을 통해 이미지즘이니 모더니즘이니 하는 문학 용어를 들으며 매우 현대적인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공감각은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 녹아 있는 매우 오래된 감각이다. “달콤한 목소리”, “쓴 소리”, “시린 하늘”을 상기해보라. 중국에서도 ‘聞香(향기를 듣다)’이나 ‘觀樂(음악을 보다)’, '看話(말.화두를 보다)'란 표현이 흔히 쓰였다. 이 시에도 시각, 청각, 후각이 교묘하게 엇섞여 있다. 꽃가지가 치렁치렁 늘어져 마루를 환하게 비추는 시각적 이미지는 섬돌 가까이서 찰랑대는 청각적 이미지와 융화되고, 그것에 다시 꽃향기가 어우러진 후각적 이미지로 전환된다. 찰랑대는 연못 물소리가 은은한 꽃향기를 전달하므로 물소리를 듣는 건 꽃향기를 듣는 것과 같다. 더욱이 이 모든 감각은 나의 한가한 마음과 분간할 수 없다. 이에 한가한 마음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향기 속에서 보는 것이다. 한시에서 무병신음(無病呻吟)하는 ‘축축한(damp)’ 경향만 떼낸다면 그것이 이미지즘 시와 떨어진 거리가 그리 멀지 않은 듯하다. 송시는 더욱 그렇다. 이미지즘 시는 ‘명료하고 견고한(dry and hard)’ 한시일 수 있기 때문이다.



*** 중문학도 홍승직 선생 페이스북 포스팅이다. 아주 찔끔 내가 손댔다. 


만약... 혹시...그럴 리가 없겠지만, 그래서는 안되지만, 그래도 만약...혹시...아내가, 남편이, 애인이, 친구가, 옆사람이...싫증이 난다면, 싫증이 나기 시작한다면...어쩌면 좋을까? 잠시 눈을 감고, 그 사람을 처음 만나던 때를 떠올려보자. 그 순간의 설레임, 황홀함, 경탄, 환희 등이 아직도 생생히 떠오를테니, 그때의 그 마음으로 남은 시간을 함께 하자.


인생이 만약 늘 첫만남같다면[人生若只如初見] 


     나란성덕(納蘭性德·1655~1685)


인생이 만약 늘 첫만남같다면 

가을 바람에 화선(畵扇)이 슬퍼할 일 어찌 있겠어요 

얼마 못가 변해버린 내 님 마음 

연인 마음은 본디 쉽게 변하곤 했다며 핑계를 대네요 

여산(驪山)에서의 굳은 맹세 허사되고 밤은 깊어만 가건만 

밤비 방울 소리에 마음 애절해도 끝내 원망은 없어요

멋지게 차려 입은 매정한 그대 

당현종과 양귀비의 그날 언약 어찌할까 


人生若只如初見(인생약지여초견)

何事秋風悲畵扇(하사추풍비화선)

等閑變却故人心(등한변각고인심)

却道故人心易變(각도고인심이변)

驪山語罷清宵半(여산어파청소반)

夜雨霖鈴終不怨(야우림령종불원)

何如薄幸錦衣郎(하여박행금의랑)

比翼連枝當日願(비익연지당일원)


청(淸)나라 때 만주 귀족 관리이자 문인으로, 31세로 불꽃같은 생을 마감한 나란성덕(納蘭性德)의 사(詞)다. 제목을 따로 정하지 않고 첫구절을 제목 삼던 사(詞) 관례에 따라 첫구절이자 제목 역할을 하는 “인생이 만약 늘 첫만남같다면”, 이 말은 그 안에 담긴 애수, 비애, 한탄, 감개 등이 너무 실감나고 적절하여, 이후 300여년 동안 무수히 애송되었다. 


이 사는 고금을 뒤흔든 두 가지 사랑 이야기를 소재로 삼았다. 하나는 한(漢)나라 황제 성제(成帝)와 반첩여(班婕妤)의 사랑이요, 또 하나는 당(唐)나라 황제 현종과 양귀비의 사랑이다.


명문가 출신으로서 미모와 덕망과 재주를 겸비한 반첩여는 한 성제 초년에 입궁하여 성제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성제가 반첩여를 너무나 사랑하여, 어느 날 함께 마차를 타고 드라이브를 하자고 제의했을 때, 반첩여는 “옛부터 성군은 훌륭한 신하를 마차에 태웠고, 나라를 망친 말세의 왕은 자기가 총애하는 여인을 마차에 태웠다”며 거부했고, 이마저 훌륭한 부덕으로 칭송되었다. 그러나, 그토록 영원할 줄 알았던 반첩여에 대한 성제의 사랑은 오래 가지 못했다. 그녀와 함께 입궁한 동생 합덕(合德) 그리고 날씬한 미녀의 대명사 조비연(趙飛燕)의 모함으로 성제는 반첩여를 멀리 했다. 


그 억울함을 노래한 반첩여의 시 원가행(怨歌行)이 전해진다. 여기서 반첩여는 아리따운 그림을 그린 ‘화선(畵扇)’에 자신을 비유하여, 여름 한창 더울 때는 부채를 손에서 놓지 않듯 자기를 찾더니, 가을 바람 불어오자 부채를 찾지 않듯 자기를 버렸다고 노래했다. 


그로부터 700여년 뒤, 또 하나 희대의 사랑이 천하를 뒤흔들었다. 당나라 황제 현종은 휴양차 여산 온천에 들렀다가 자기 아들 수왕의 아내, 즉 며느리를 마음에 품게 되었으니, 그녀가 바로 양귀비다. 비록 황제라지만 애정에서는 패륜아인 황제는 결국 며느리 양귀비를 자기가 차지하는 희대의 애정 행각을 벌인다. 


둘의 사랑만을 놓고 보면 깊고 뜨거웠던 듯, 둘은 여산 화청궁에서 앞으로 영원히 헤어지지 말자면서, ‘비익조’와 ‘연리지’가 되리라고 맹세한다. 그러나 안사의 난으로 피난을 하게 되어, 주변의 강압에 못이겨 현종은 결국 양귀비에게 자결을 명하게 된다. 죽어가는 양귀비는 “우리 비록 ‘비익조’와 ‘연리지’가 되자고 서로 맹세해놓고 이렇게 사랑이 깨지게 되었지만, 당신을 원망하지는 않겠어요”라며 죽어갔다. 이후에도 현종은 밤에 비만 오면 양귀비가 그리워서 눈물을 흘리며 노래를 불렀다 하다.


처음에는 자신을 그토록 사랑하여 영원토록 함께 하자 맹세했던 남자로부터 버림받은 반첩여와 양귀비의 심정은 어땠을까?


“인생이 만약 늘 첫만남같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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