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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흠운10

[마질차] (6) 김유신의 조카이자 사위 김흠돌 신라가 일통삼한을 달성하던 무렵 7세기 중후반 신라사에는 흠欽이라는 글자를 선호하는 이름이 유행한다. 김유신 동생 김흠순金欽純(흠춘欽春이라고도 한다)이 있고, 역시 군사 분야에서 뚜렷한 족적을 내다가 신문왕 즉위 원년 반란 혐의로 처단된 김흠돌金欽突이 있으며, 또 655년 백제와의 조천성 전투에서 8등 사찬이면서 낭당대감으로 출전해 장렬히 전사한 김흠운金欽運이 있다. 이들 관계를 결론으로 앞서 말한다면 김흠돌은 김흠순의 조카이며, 그런 흠돌과 흠운은 아버지가 같고 엄마가 다른 동부이모同父異母 형제다. 물론 이런 내용, 곧 저들의 관계는 기존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서는 보이지 아니하며, 화랑세기와 그 족도族圖인 상장돈장上章敦牂에서 드러난다. 김흠순이야 그의 친형이 김유신이니, 그 계보에 대해서는 볼짝이 없지.. 2024. 3. 10.
[마질차] (4) 형수가 되었을 여인을 노리는 시동생 그때 태손太孫 소명전군昭明殿君이 이미 태어난 상태였고, 무열제는 (며느리인) 자의慈儀의 현숙함을 매우 아꼈다. (27세 흠돌欽突 전) 그때란 26세 풍월주인 진공이 흠돌한테 풍월주 자리를 물려준 때다. 이때가 656년 태종무열왕 재위 3년째다. 따라서 이로 보면 문무왕 김법민과 그의 정비 자의 사이의 맏이인 소명태자는 656년 혹은 그 직전에 태어났다. 소명을 전군이라 부르는 까닭은 아직 정식 왕자 혹은 태손으로 임명되기 전이었기 때문이다. 전군은 정식 왕자보다는 한 등급 낮은 왕의 아들을 지칭하는 호칭이다. 이 두 가지 증언과 삼국사기 김흠운 열전을 종합할 때, 여기서 일어나는 일대 의문이 있다. 앞서 보았듯이 김흠운은 655년 백제와의 조천성 전투에 출전했다가 장렬히 전사했고, 그때 관위가 어느 정도.. 2024. 3. 8.
[마질차] (3) 청상과부 싱글맘이 된 김춘추의 딸 앞서 우리는 신라 제38대 원성왕元聖王 김경신金敬信(재위 785~798) 선대 계보를 추적하면서 그 5대조가 마질차摩叱次 혹은 마차摩次임을 보면서, 그런 마질차가 조선시대에 발간된 경주김씨계 족보에서는 655년, 신라 태종무열왕 2년 조천성助川城 전투에 낭당대감郎幢大監으로 출전해 백제군과 싸우다가 장렬히 전사한 김흠운金欽運의 아들로 등장함을 보았다. 조선시대 족보는 그 역사성을 의심하는 시각이 적지 않거니와, 무엇보다 그에서 보이는 계보들이 추리면 첫째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를 토대로 삼아 후대에 만든 듯하거나 그에서는 보이지 않는 대목들이 보이는 까닭이라, 간단히 말해 선대 기록을 토대로 억지로 그런 계보를 만들어냈다는 생각이 아주 강하게 작동하는 까닭이다. 하지만 경주김씨와 그 분파에서 나타는 신라시대 .. 2024. 3. 7.
[마질차摩叱次] (2) 안동김씨 족보가 말하는 김흠운의 아들 태보공 김알지에서 경순왕까지 11 (14세 마차, 15세 법선, 16세 의관, 17세 위문)태보공 김알지에서 경순왕까지 11 (14세 마차, 15세 법선, 16세 의관, 17세 위문) 우리 범신라김씨의 鼻祖---시조 이전의 先系祖上중 가장 높은 사람---이신 태보공 김알지로부터 신라의 마지막 임금 andongkimc.kr 이는 경주김씨에서 분파한 안동김씨 선대 계보다. 한데 이에서 앞서 본 마질차摩叱次가 마차摩次라는 이름으로 보이며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서 말한 원성왕 선대 계보가 거의 그대로 보인다. 이 계보는 12대 진종眞宗과 13대 흠운欽運 사이에 1대가 탈락했으니, 그런 사실은 저 계보도에도 그대로 보이고 있다. 곧 삼국사기에서도 이름을 드러내는 흠운은 그에 의하면 태종무열왕 김춘추의 반자半子, 곧.. 2024. 3. 6.
화랑세기가 아니었으면 영영 묻혔을 문노文弩 화랑세기를 통해 부쩍 친숙한 이름이 된 신라 중고기 인물 문노는 표기가 두 가지라, 삼국사기와 같은 기존 문헌에서는 文努라 하지만, 화랑세기는 文弩라 해서 세심한 차이가 보인다. 둘 중 어느 쪽이 실상에 가깝냐 단언하면 단연 후자라, 이는 그가 걸은 길 때문이다. 대가야 왕실 계통이라는 혈통을 지녔다지만 사통해서 낳은 아들로 그 혈통이 확실치 아니한 그는 대가야 멸망과 더불어 신라사회에 편입되기는 했지만, 이렇다 할 배경이 없어 무직武職을 전전할 뿐이었다. 이렇게 해서 간난을 뚫고서 마침내 출세한 그는 군사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업적을 냈으니, 이런 족적을 볼 적에 그것이 비록 태어나서 얻은 이름이 아니라 훗날 바꾼 이름일 가능성이 많기는 하지만 당연히 그에 더 어울리는 이름은 文弩다. 글자 그대로는 이.. 2024. 1. 10.
사위, 피 한 방울 섞이지 아니하는 사이비 아들 반자[半子] 사위는 내 딸의 남편이다. 그런 까닭에 항렬로는 아들뻘이다. 하지만 아들과 딸은 내 피를 물려받았지만 사위는 생물학적으로는 그 어떤 관계도 없다. 아들과 같은 처지이면서도 아들은 아닌 이런 사위를 일컬어 흔히 반자半子라 했으니, 글자 그대로 반쪽짜리 아들이라는 뜻이다. 사위와 장인장모, 혹은 사위와 딸을 이어지는 고리는 놀랍게도 종잇쪼가리 한 장이다. 둘은 부부라는 증명서 꼴랑 한 장이다. 따라서 반자는 계약에 의한 아들에 지나지 않는다. 이 종잇쪼가리 찢어지는 순간 원수로 돌변하곤 한다. 나아가 그런 까닭에 반자는 돌싱이 되면서 싱겁게 끝나고 만다. 이 半子라는 말이 내 기억에는 삼국사기에서는 딱 한 군데인가 보일 터인데, 김흠운 열전이 아닌가 한다. 이 김흠운이가 655년인지 태종무열왕 때 백제와의 .. 2022. 6.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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