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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관계. 이거 참말로 묘하다. 세계제국 당에 신라는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숙적 고구려를 정벌하려다가 망신을 당한 당은 호시탐탐 그 정벌을 기회를 노리다가 신라와 접근했다. 배후에서 신라가 고구려를 견제하고, 여차하면 군사적으로도 호응해야 했다. 그래야 고구려를 망가뜨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신라 역시 숙적 백제를 견제하기 위해서는 당에 접근했다. 이런 이해 관계가 맞아 떨어져 신라와 당은 밀약을 한다. 백제는 신라가 갖고, 고구려는 당이 갖는다. 당은 고구려 서울 평양을 갖는다. 평양 이남 고구려 땅은 신라가 갖는다.


하지만 신라도 당을 결코 믿은 적 없으며, 당 역시 신라를 믿은 적이 없다. 언젠가는 칼끝을 겨눌 상대라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았으며 실제로도 그리되었다. 신라와 합세해 백제를 멸한 당의 야욕은 그 직후 벌써 마각을 드러냈다. 


당군 총사령관 소정방은 유신(庾信)ㆍ인문(仁問)ㆍ양도(良圖) 세 사람을 불러 은밀히 이렇게 제안한다. 김유신 열전(중)에 보인다.


“내가 재량껏 일을 처리하라는 황제의 명을 받았소. 지금 싸워 얻은 백제 땅을 공들에게 식읍으로 나누어 주어 여러 공께 보답코자 하는데 어떻겠소?”


이이제이以夷制夷. 당은 옛 백제 땅을 김유신과 김인문과 김양도 세 장군에게 분봉하여 각기 왕으로 책봉함으로써 김춘추가 이끄는 신라를 견제하고자 했다. 힘을 분산시킴으로써 신라로 힘이 집중되는 것을 막고자 했다. 그리하여 그들끼리 각기 당에 충성 경쟁을 벌이도록 하고자 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제안은 거절당한다. 


간접통치의 이 교훈을 가장 잘 체득한 이가 실은 제국주의 일본이었다. 중앙집권제야말로 고대 국가 성립의 징표로 삼은 근대 역사학은 실은 근대 국가정치 이데올로기를 뒷받침한 어용 역사학이다. 이들은 봉건제가 중앙권력을 약화하며 그것을 곧 국가권력의 붕괴 분산으로 이해하면서 지금도 일선 교육현장에서는 그리 가르친다. 봉건제를 거부한 이들에게 군현제야말로 강력한 중앙집권제 국가 성립의 제도적 장치였다. 이를 체득한 그들은 마침내 조선을 식민화하고 그 직접 통치를 꾀했으니, 그것이 바로 조선총독부다.


하지만 역사는 그린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놀랍게도 직할 통치기구 조선총독부 자체가 본국 일본정부를 향해 총칼을 빼어들기도 했으니 말이다. 조선총독과 조선총독부는 일본 내지 내각과 분리해야 한다. 이 분리를 역사학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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