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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장산3

2016년 내장산의 가을 2020. 11. 8.
비자나무 숲 뚫고 백양사 약사암에 오르며 부부 탄생을 축하하는 풍악 뒤로하고는 비자나무 숲을 지나 약사암 향해 산길 오른다. 저 비자나무 숲은 천연기념물이라, 현지서 만난 장성군 담당 공무원이 이르기를, 저 나무는 죽어도 베어내지 못한단다. 썩은 시체 용케 얻어걸리면 바둑판 몇개라도 만들려 했더니 예선 걸러먹었으니, 지정되지 않는 구역에서 찾아봐야겠다. 저 나무 주된 용처가 바둑판이다. 오후 세시가 넘었으므로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며 선사하는 끝물단풍은 홍등가요 갓잡은 소에서 썰어낸 살코기 빛이다. 붉음 노랑 교집합 화려하다. 문득문득 돌아보며 저를 찬탄한다. 땀 많은 체질 탓이기도 하려니와, 금새 온몸은 땀 범벅이라, 찌린내 몸에 밸까 약사암 올라 훌러덩 잠바때기 벗어제끼니 이파리 향기 머금은 계곡 바람 쏴 하니 피부를 훝는다. 이 약사암은 저.. 2018. 11. 12.
서거정이 말하는 내장산 백양사 단풍철이다. 그런 대명사로 내장산을 으뜸으로 꼽는다. 그 내장산에 백양사가 있다. 조선초기 사가정 서거정의 다음 증언은 현재의 내장산 백양사 내력 중 고려말~조선초 일단을 증언하거니와, 이에 의하면, 당시에는 백암사라 일컬은 백양사가 실은 행촌 이암 집안 고성이씨 원찰이라는 사실이 그것이다. 그런 성격이 언제까지 지속했는지 알 수는 없으나, 사가정 당대까지 100년이나 이어졌다는 사실을 소홀히 보아넘길 수는 없다. 이는 당대 불교사를 고찰할 때도 여러 문제의식을 고취하거니와, 불교가 일방적인 탄압대상이었다는 데 대한 반론 역시 요즘 만만치 않거니와, 불교가 그리 호락호락하니 당하지는 아니했다. 강고한 유교사회에서도 불교는 여전히 효용이 있었으며, 특히나 가정 주도권을 장악한 이는 남자가 아니라 여성들이었.. 2018. 10.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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